에쿠스→EQ900→G90, 이름 바꾸면 더 잘 팔릴까?
2018-10-31 임유신
“이름 변경은 중대한 문제다. 더 잘되기 위해 바꾸는 데 이의를 달 수 없지만, 이왕에 바꾸려면 멀리 보고 신중해야 한다.”
[임유신의 업 앤 다운] 이름은 한번 지으면 바꾸기가 쉽지 않은데 해마다 개명 사례는 꾸준히 나온다. 평생 같은 이름으로 살아야 하는데 이름이 이상하면 사회생활이 쉽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이름을 바꾸기도 한다. 본인이 지었으면 책임도 본인이 져야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갓 난 아기 때 부모가 이름을 지었으니 원망의 화살은 부모로 향한다. 개명 사례에 나온 이름을 보면 상상을 초월한다. ‘아니 어떻게 이름을 저렇게 지을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상하고 희한한 이름이 많다. 한자 뜻은 기가 막히게 좋은데 우리말 발음이 사회 통념에 맞지 않는 이름이 대다수다. 놀림 받기 딱 좋다. 개명한 나이대도 제각각인데 의외로 40대~60대도 많다. 바로 바꿔도 시원찮을 판에 수십 년을 그런 이름을 유지했다니 놀라우면서도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그만큼 이름 바꾸는 일은 쉽게 결단을 내릴 문제가 아니다.
자동차 이름도 쉽게 바꾸기 힘들다. 이름이 곧 인지도이기 때문에 여간해서는 바꾸지 않는 게 낫다. 수십 년 동안 같은 이름을 쓰며 쌓아 올린 명성은 무엇보다 중요한 자산이다. 이름값만으로도 절반은 먹고 들어간다. 이름이 중요한 만큼 한 번 잘못 지으면 피해도 크다. 발음이 이상하다거나, 수출용 이름을 현지에서 나쁘게 쓰는 말로 지었거나, 유사한 단어가 이상한 뜻이거나 등등 잘못 지은 자동차 이름 사례도 사람의 개명 사례처럼 종종 소개되곤 한다. 이름을 바꾸는 일은 위험성이 크지만 잘못 지은 이름은 빨리 바꾸는 게 낫다.
잘못 지은 이름이 아닌데도 이름을 바꾸기도 한다. 주된 이유는 이미지 개선이다. 연예인들은 활동을 시작할 때 촌스러운 원래 이름을 버리고 세련된 이름으로 바꾼다. 뜻과 발음 다 괜찮은데 좋지 않은 의미로 통용된다고 바꾼 사례도 있다. 누군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을 때 이름이 같은 사람들이 개명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이미지 세탁용이다.
자동차도 이름이 아닌 자동차 자체에 문제가 있을 때 이미지 쇄신을 위해 이름을 바꾼다. 결함이나 리콜 등 큰 문제를 일으킨 차가 부정적 이미지를 걷어내기 위해 다음 세대 때 이름을 바꾼다. 판매가 시원찮을 때 다음 세대는 완전 신차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새 이름을 쓰기도 한다.
전략적으로 이름을 바꾸기도 한다. 판매와 상관없이 으레 세대교체 때 이름을 바꾸는 경우도 있다. 준중형차를 보면 현대자동차는 엘란트라에서 아반떼로 바뀐 이후 지금까지 오랜 기간 같은 이름을 유지한다. 기아자동차는 캐피탈에서 시작해 세피아, 스펙트라, 쎄라토, 포르테, K3로 이어졌다. 지금은 K3를 계속해서 사용한다. 쉐보레는 누비라, 라세티, 크루즈로 이름이 바뀌었다. 르노삼성은 SM3 한 이름만 계속해서 쓴다. 어떤 전략이 유리한지는 상황에 따라 다르다.
세대교체 때마다 이름을 바꾸는 게 전략이 아니라면, 멀쩡한 차 이름을 바꾸는 일은 모험이다. 쌓아 올린 인지도가 흔들릴지 몰라서다. 그런데 요즘은 곳곳에서 이름 바꾸기가 한창이다. 멀쩡한 이름을 갈아치운다. 더 잘되기 위해서 또는 브랜드 안에서 통일성을 기하기 위해서다. 치열한 경쟁 시대에 이름까지 바꾸는 각오로 더 열심히 뛰어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내부에서 판단하기는 어떨지 몰라도, 전에 쓰던 이름도 사람들이 보기에는 꽤 인지도가 높았는데 어느 순간 바꿔 버린다. A 학점 받은 학생이 A+ 받기 위해 재수강도 마다하지 않는 경우라고 할까.
조만간 선보일 제네시스 EQ900 부분변경 모델은 이름을 G90으로 바꾼다. 제네시스 브랜드의 명명법이 ‘G+숫자’인데 EQ900만 다른 방식이라 이번에 통일한 이름으로 나온다. 해외에서는 제네시스 브랜드가 시작할 때부터 G90으로 이름을 바꿨다. 국내에서는 이전 세대 모델 이름인 에쿠스가 인지도가 높았기 때문에 급작스러운 변화를 피하고자 EQ900으로 중간단계를 거쳤다고 한다.
이미 있던 차가 제네시스 브랜드로 편입되니 정책에 맞게 이름을 바꾸는 게 당연하지만, 에쿠스→EQ900→G90으로 짧은 시간에 바뀌니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혼란스럽다. 더군다나 EQ900은 수입차 공세로 위상이 예전만 못하다. 인지도 높은 에쿠스라는 이름을 버린 이유 중에는 낡은 이미지 개선도 있다. 국내에서야 에쿠스든 EQ900이든 G90이든 알 사람은 다 아는 차라 이름이 판매에 큰 변수로 작용하지는 않으리라고 본다. 그런데 기함이라면 전통과 위신도 중요하다. 잦은 이름 변경이 좋은 이미지를 심어줄 리 없다. 에쿠스에서 바로 G90으로 넘어갔다면 신차라는 사실과 제네시스 브랜드의 기함 이미지를 더욱 확고하게 심어줬을 터다.
아이 이름 지어본 사람은 알 텐데 검색하다 보면 연도별 유행하는 이름 순위가 뜬다. 남자아이, 여자아이로 구분한 이름 트렌드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름 하나하나는 예쁘지만 그 이름으로 했다가는 비슷한 이름이 많아지는 게 문제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누구 이름 부르면 서너명이 쳐다볼 지도 모른다.
자동차 이름도 유행을 탄다. 요즘 대세는 알파뉴메릭이다. 알파벳과 숫자를 조합한 형식인데 통일성을 살리는 데 유리하고 차급 표현이 수월하다. 이전에는 정체성을 중시하는 럭셔리 브랜드들이 주로 썼는데 이제는 널리 퍼졌다. 심지어는 알파뉴메릭을 쓰는 브랜드가 또 다른 알파뉴메릭으로 바꾸기도 한다. 여러 브랜드가 쓰다 보니 신선함도 떨어지고, 알파뉴메릭 중에서도 인지도가 높은 이름만 기억된다. 아마 얼마 지나지 않으면 알파뉴메릭에서 벗어난 새로운 유행이 찾아오지 않을까 싶다.
이름 변경은 자유지만 유행을 따르기 보다는 오래 갈 고유한 이름을 계속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더 잘되기 위한 노력은 필요하지만 인지도에 영향을 미치는 큰 작업이므로 신중해야 한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임유신(<탑기어> 한국판 편집장)
임유신 칼럼니스트 : 자동차 전문지 <카비전>, <모터 트렌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