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프 랭글러를 최첨단 기술 자동차로 정의하는 이유

2018-11-25     김태영
지프 랭글러 통해 본 최첨단 자동차란 의미의 재해석

[김태영의 테크 드라이빙] “저는 지프 올 뉴 랭글러처럼 구식의 기계식 기술을 유지한 자동차가 좋아요.” 자동차를 잘 알고 좋아하는 누군가 말했다. 무슨 의미로 한 말인지 알 수 있었지만, 중요한 사실을 정확하게 해석하지 못한 것 같았다.

“지프 올 뉴 랭글러는 최첨단 기술의 자동차잖아요.” 내 말을 듣고 그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라는 얼굴을 했다.

사전적인 의미로 ‘최첨단’이란 ‘시대나 유행의 가장 앞’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최첨단 기술이란 가장 발전한 기술이라는 뜻이고, 이것은 특정 분야나 부분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21세기에는 최첨단 기술의 의미가 ‘전자제어 및 통신 기술’에 큰 비중을 둔다. 실제로 자동차 분야에서도 비슷한 의미로 쓰이고 있다. 한층 정교한 센서와 향상된 ECU, 진화한 소프트웨어로 더 많은 안전·편의 장비가 자동차에서 구현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자동차는 약 3만여 개의 부품으로 만들어진 결과이고, 그중 전자제어 기술과 관련된 것은 일부분이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최첨단 기술이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쓰는 의미와는 좀 다르다. 누구나 쉽게 실현하지 못하는 ‘고유의 신기술’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지프 올 뉴 랭글러(코드명 JL)를 타보고 느낀 것도 비슷한 것이었다. 지난 8월, 한국에 지프 올 뉴 랭글러가 출시되기 직전. 나는 양산차가 갈 수 있는 오프로드 코스 중 가장 어렵다고 알려진 ‘루비콘 트레일’ 한가운데에 있었다. 캘리포니아 타호 호수 근처, 네바다산맥의 거친 화강암 산맥이 만든 오지였다. 눈치 챘겠지만 랭글러 루비콘은 오프로드 주행에 최적화된 자동차고, 이름에 붙은 ‘루비콘’이 바로 이곳을 의미한다.



지프 브랜드 역사는 루비콘 트레일과 60여 년을 함께했다. 루비콘 트레일은 지프에게 도전이자 일종의 시험 장소였다. 세계 최고의 서킷에서 고성능 스포츠카가 만들어지듯, 지프는 이곳에서 다양한 오프로드 기술을 만들고 꾸준히 개선했다. 네바퀴굴림, 로 기어, 강화 디퍼런셜과 분리형 스웨이 바 같은 독자적 기술이 대표적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지프 랭글러는 도심 주행만을 위해 만들어진 차가 아니다. 이 차의 핵심 가치는 험로를 주파하는 능력에 있다. 그래서 물리적으로 주행 한계를 높일 수 있는 기계 장치가 꾸준히 주를 이뤘다.



물론 11년 만에 완전히 새롭게 바뀐 올 뉴 랭글러는 이전 모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진보한 전자제어 기술을 쓴다. 헤드램프는 최신형 LED 타입으로 바뀌었다. 실내 중앙엔 8.4인치 터치스크린을, 계기반에 LCD 정보 창을 달아서 다양한 정보를 일목요연하게 전달한다. 차의 전체 분위기는 지난 70여 년간의 헤리티지를 바탕으로 하지만, 소재와 마무리 같은 전반적인 품질이 분명 21세기의 기준에 어울린다. 한눈에도 이전보다 세련되고 고급스럽다.



하지만 랭글러를 ‘최첨단 기술’의 자동차라고 정의할 수 있는 것은 개선된 전자제어 장비가 아니다. 독보적인 수준의 오프로드 주행 관련 기술 때문이다. 루비콘 트레일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곧 자동차만한 바위 여러 개가 길을 막아섰다. 주행이 불가능해 보이는 험로를 마치 곡예 운전하듯 지났다. 반면 랭글러는 자신감이 넘쳤다. 한쪽 앞바퀴가 커다란 바위를 비스듬하게 타고 올랐다. 그러자 뒷바퀴도 동시에 지면에서 30cm가량 떠올랐다. 차가 한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졌다. 게다가 앞 창문 너머로 보이는 건 푸른 하늘이 전부였다. 이렇게 좌우 고저 차가 큰 장애물을 만났을 때 전자식 스웨이 바가 빛을 발한다. 센터페시아 하단에 마련된 버튼을 누르면 좌우 앞바퀴를 연결하는 스트럿이 해제되고 양쪽 바퀴가 각자 따로 놀며 고저 차가 커진다. 쉽게 말해 한쪽 바퀴가 구덩이로 내려가고 다른 한쪽 바퀴가 바위로 올라가는 상황에서도 차가 뒤집어지지 않고 최대한 수평을 이룬다.



험로를 통과할 때는 특정 바퀴가 구동력을 잃고 미끄러지거나 차체가 기울어지며 대각선 방향 두 바퀴가 공중에 뜨는 상황도 발생한다. 이때 전자제어 잠금 디퍼런셜을 적절한 모드로 세팅하는 게 중요하다. 네 바퀴 동력을 4로(4-low) 기어로 고정한 상태에서 디퍼렌셜 잠금을 설정한다. 그러면 앞뒤 50%, 혹은 뒷바퀴 양쪽으로 25%나 모든 바퀴로 25%씩 엔진 동력이 고정된다. 이런 특화된 기술을 통해 랭글러는 세 바퀴(타이어)에 접지력이 없는 상태에서도 차가 멈추지 않고 움직일 수 있다.



험로에서는 차의 속력이 중요하지 않다. 깔끔하게, 차에 무리를 주지 않고 장애물을 넘는 게 목표다. 그래서 장애물을 넘는 순간순간 랭글러의 다양한 기능을 적절히 사용하며 대처할 수 있다. 루비콘 트레일에서 가장 어려운 코스는 절벽 옆으로 이어진 좁고 비탈진 코스를 거슬러 올라갈 때다. 여기선 가파른 기울기도 문제지만 바위 사이에 골이 심하게 파이고 폭도 좁다. 타이어가 쉽게 미끄러지는 환경이라 운전하기가 매우 어렵다. 하지만 랭글러는 불가능해 보이는 험로를 척척 통과했다.

이곳에서 느낀 것을 문장으로 모두 표현하기란 어렵다. 실제로 그곳은 최첨단 전자제어로 무장한 그 어떤 SUV로도 통과하지 못할 곳이다. 오직 랭글러이기에 주파가 가능했다. 구식 기술처럼 보이는 투박한 기계 장치는 본격적인 험로에서 그 어떤 첨단 전자제어보다 확실하게 작동했다. 이런 관점에서 랭글러는 오프로드와 험로 주행의 영역에서 ‘최첨단 기술’을 가진 자동차였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김태영

김태영 칼럼니스트 : 중앙일보 온라인 자동차 섹션을 거쳐 자동차 전문지 <카비전>, <자동차생활>, <모터 트렌드>에서 일했다. 현재는 남성지 <에스콰이어>에서 남자들이 좋아하는 소재를 주로 다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