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는 혁신적 브랜드일까? 미래투자로 살펴본 현주소

2018-12-24     김태영
현대자동차가 미래 위해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있다는 건

[김태영의 테크 드라이빙] “우리는 지난 수십 년간 현대차가 콜센터 대기 음악보다 지루하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한국인들이 우리의 생각을 철저하게 바꿔놓았다. 현대차는 이제 다른 선두 자동차 회사들을 질투를 느낄 만큼 다양한 차들을 만든다.” 영국 BBC <톱기어> 매거진이 ‘2018 어워드’를 진행하며 올해의 자동차 메이커 부문에 현대자동차를 선정했다. 고성능 자동차인 i30 N부터 친환경 차 아이오닉, 코나 일렉트릭까지 다양하고 도전적인 제품 라인업을 선보이면서 지난 수년간 빠르게 성장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독일 아우토자이퉁(Auto Zeitung)도 2018년의 ‘가장 혁신적인 브랜드’로 현대자동차를 선정했다. “미래 모빌리티 사회의 선두 주자가 되려는 브랜드의 포부와 다양한 친환경차 라인업을 갖췄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영국 그린플릿(Green Fleet)도 그린플릿 어워즈 ‘올해의 전기자동차 제조사’ 부문에서 현대자동차를 뽑았다. 아이오닉, 코나 일렉트릭에 담긴 기술력이 우수하고, 동시에 전기차 시장에서 소비자의 접근성을 확장했다는 점을 높게 샀다.

‘현대자동차가 혁신적인 브랜드라고?’ 나를 포함해서 많은 한국 소비자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현대자동차의 현주소다. 그리고 이런 평가가 앞으로 보여줄 변화의 징조이기도 하다. 자동차를 비롯해 첨단 제품을 만드는 기업은 연구·개발(R&D)이 핵심이다. R&D 투자 규모와 장기적인 계획이 결국 제품으로 고스란히 나타난다. 쉽게 말해 연구와 개발을 줄이는 회사는 뒤처지기 마련이고, 반대로 미래 먹을거리를 발견하고 꾸준히 투자하는 회사는 지속가능성이 커진다. 이런 관점에서 현대자동차는 다가올 미래를 위해 다양한 방면에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올해 하반기에 진행된 협업과 투자만 보더라도 그 범위와 규모가 상당하다.



#1 현대자동차는 이스라엘의 자동차 통신 반도체 설계 업체인 오토톡스에 투자하고 커넥티드 카 프로젝트 협업을 시작했다. 오토톡스와 협업은 커넥티드 카의 두뇌 역할을 맡는 반도체 집적회로(칩셋)를 개발하기 위함이다. 자동차가 대용량 데이터를 초고속으로 송수신해야 하는 5G 이동통신 제어기술 확보가 커넥티드 카의 기술의 핵심. 따라서 각종 유무선 네트워크 보안 솔루션 제공할 뿐 아니라 국가마다 다른 V2X(vehicle to everything) 통신 표준에도 대응 가능한 기술을 미리부터 보유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 과정에서 현대모비스, 현대오트론 같은 계열사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커넥티드 카뿐 아니라 스마트시티 조성 기술 개발에도 나선다.



#2 미국의 인공지능(AI) 전문 스타트업 퍼셉티브 오토마타(Perceptive Automata)와는 전략적인 투자를 통해 인간 행동 예측 기술을 확보한다. 2014년 설립된 P 오토마타는 비전 센서와 정신물리학을 기반으로 한다. 그리고 인간 행동을 예측하는 인공지능 기술을 전문적으로 연구한다. 보통의 인공지능은 수집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여러 케이스에서 훈련하며 결과를 검출한다. 반면 P 오토마타의 기술은 인간 관점에서 판단하는 주관적 학습도 포함한다. 따라서 단순 기계적 사고뿐 아니라 인간이 자동차 주변에서 어떻게 행동할지를 인공지능이 미리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된다.

#3 수소 에너지에 대한 투자도 계속해서 확대하고 있다. 실제로 현대차그룹은 수소 및 수소전기차 로드맵인 ‘FCEV 비전 2030’을 바탕으로 2030년 국내에서 연 50만대 규모 수소전기차 생산체제를 구축할 것이라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를 위해 중국 칭화대학 베이징칭화공업개발연구원(산하 전문 투자기관 일드캐피탈)과 공동으로 수소에너지 펀드를 설립하고 관련 분야의 공격적 투자 준비에 나선다. 펀트 규모는 총 1억 달러(약 1134억원). 이들이 앞으로 협업 및 투자하게 될 대상은 한국과 중국 등의 수소산업 관련 제반 인프라와 수소 부문 핵심 기술 리더십을 보유한 스타트업이다.



#4 동남아시아 최대 자동차 호출 서비스 기업 ‘그랩(Grab)’에 대규모 투자를 결정하고, 내년부터 순수 전기차(EV) 기반의 모빌리티 서비스도 시작한다. 올해 1월 현대차가 투자한 2500만 달러(284억원)를 포함, 올해 11월까지 현대·기아차가 그랩에 투자한 총액은 2억7500만 달러(3120억원)에 달한다. 그랩의 미래 성장 가능성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그만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뜻이다. 그랩에 대규모 투자는 앞으로 현대·기아차의 전기차를 활용한 신규 모빌리티 프로젝트를 확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이는 동남아 전기차 시장에 효과적으로 진입해 판매 확대(지속적 수익 창출)가 가능하다는 것 외에도 다가올 공유 모빌리티 시대에 대비하는 방법이다.

현대차는 그랩 외에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아이오닉 EV를 활용한 카셰어링 사업을 추진 중이다. 또한 인도 카셰어링 업체 레브(Revv), 국내 라스트 마일 배송 서비스 전문 업체 메쉬코리아(Mesh Korea), 호주의 P2P 카셰어링 업체 카넥스트도어(Car Next Door), 미국 모빌리티 서비스 전문업체 미고(Migo) 같은 기업에 전략적 투자를 통해 공유경제 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5 미래엔 자동차가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새로운 형태의 모빌리티로 발전하고 결합할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현대차는 미래 혁신 분야로 꼽히는 드론 기술이 바탕인 새로운 비즈니스 플랫폼을 발굴하는데도 관심을 쏟는다. 실제로 지난 11월 초엔 미국 톱 플라이트 테크놀러지스(Top Flight Technologies)에 전략적 투자를 발표했다. 톱 플라이트는 2014년 설립된 회사로 무인 항공 드론을 전문적으로 개발한다. 이들이 보유한 하이브리드형 드론 기술은 기본 배터리 외에 소규모 가솔린 엔진을 탑재, 비행 중 엔진을 가동해 배터리를 충전하며 주행거리를 비약적으로 확대할 수 있다. 이런 기술을 활용하면 자동차 접근이 제한된 지역으로 부품 운송이 가능하고, 자동차 공장에서 부품을 운송하는 데도 업무 효율성을 크게 높일 수 있다. 더불어 고성능 드론 기술이 모빌리티 서비스, 3D 정밀지도 제작, 현장 안전관리, 스마트시티 통합 운영 같은 분야에서도 활용될 것으로 예상한다.



#6 세계 최초로 자동차 전장집중 검사 시스템 개발도 이뤄냈다. 현대·기아차는 2015년 생산개발본부 내 생산기술 연구 전문 조직인 생산기술개발센터를 신설하고 스마트 팩토리, 자율주행, 인공지능, 로봇 및 전동화 관련 제조 신기술을 지속해서 개발해왔다. 여기서 최근에 선보인 신기술 중 눈에 띄는 것은 전장 집중검사 시스템이다. 지금까지는 대부분의 완성차 업체가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ADAS)을 검사할 때 기능별로 여러 공정으로 나누는 방식을 썼다. 다시 말해 종합적인 최종 작동 테스트가 어려웠다.

반면 이번에 현대∙기아차가 개발한 전장집중 검사는 단일 공정에서 전방 충돌방지 보조, 차로 이탈방지 보조, 후측방 충돌방지 보조,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 서라운드 뷰 모니터 등 여섯 가지 주행 안전 관련 장치를 검사한다. 모든 과정은 85초 이내에 끝난다. 이것은 단순한 효율성 강화를 넘어서 첨단 제조기술 개발에 투자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향후 본격적인 자율주행 자동차 시대를 대비하기 위함이다.



그동안 현대차는 ‘쇳물에서 자동차까지’라는 기치 아래 소위 수직계열화를 강조해 왔다. 하지만 이 같은 수직계열화가 오히려 현대차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이 시장의 평가였다. 요즘 성공한 기업의 특징은 적극적 인수와 합병(M&A)으로 시장의 확장을 이뤄내면서 기업을 성장시키는 것이다. 2006년 구글이 유튜브를 16억 5000만 달러에 인수할 때만 해도 비싸게 샀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하지만 지금은 최고의 M&A 사례로 손꼽힌다. 반면 그동안 현대차가 보여준 신기술 개발이란 해당 분야의 내부 조직을 만들거나 하청업체 관리가 전부였다. 따라서 최근 일련의 투자 활동을 통해 현대차가 미래를 향해 적극적으로 변화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연결성과 확장의 시대에 대해서 완전히 이해했다는 생각이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김태영

김태영 칼럼니스트 : 중앙일보 온라인 자동차 섹션을 거쳐 자동차 전문지 <카비전>, <자동차생활>, <모터 트렌드>에서 일했다. 현재는 남성지 <에스콰이어>에서 남자들이 좋아하는 소재를 주로 다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