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풀 극적 타결, 승차거부에 시달리는 국민이 빠져 있다

2019-03-10     김진석


카풀 합의안, 대타협 아닌 미봉책인 이유

[김진석의 라스트 마일] 지난 7일 마침내 택시-카풀 대타협기구가 합의안을 도출해냈다는 발표가 있었습니다. 본격적으로 갈등이 시작된 것이 2017년부터인 것을 고려하면 2년여를 끌어온 갈등에 어떤 형태로든 “합의”를 도출했다는 것은 분명한 성과입니다. 이를 끌어내기 위해 중재에 나선 정부 여당과 국토부에서도 고민과 고생이 많았을 것은 충분히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합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아쉽게도 이는 “대타협”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는 한계가 많은 미봉책으로 보입니다.



◆ 합의문의 주요 내용

구체적으로 합의문 내용을 살펴보면 카풀은 오전 7시부터 9시까지, 오후 6시부터 8시까지 각 2시간 동안에 허용(주말, 공휴일 제외)한다는 내용과 플랫폼 기술을 자가용이 아닌 택시와 결합하여 택시 서비스를 개선한다는 내용이 핵심 내용입니다. 이외에 부가적으로는 택시 업계는 초고령 운전자 개인택시의 감차, 근로 시간에 부합하는 월급제를 받아드리겠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내용을 쉽게 해석하면 택시 업계는 정부가 원하는 초고령 운전자 “개인"택시의 감차와 법인 택시의 월급제 시행을 수용하는 대신에 카풀 서비스의 운신 폭을 줄이는 데 성공한 것입니다. 거기다 합의문 1번 조항을 자세히 읽어보면 플랫폼 기술을 “우선” 택시에 적용한다는 것이 아닌 단순히 ‘플랫폼 기술을 자가용이 아닌 택시와 결합한다’는 내용도 의미심장합니다. 이 조항 덕분에 택시 업계에서는 향후 라이드 셰어링/IT 업계의 움직임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영역까지 확보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 합의의 한계

얼핏 보면 합의를 이뤄냈다는 점에서 문제가 해결된 것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해당합의문은 결국 협의기구에 참석한 각자의 이해관계를 최대한 지켜내는 데 성공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1)합의 주체의 대표성 측면

이번 합의의 주체는 크게 택시 업계 4단체, 국토부(교통물류실), 여당(더불어 민주당 택시-카풀 TF 전현희 의원) 그리고 카카오모빌리티입니다. 이중 카카오모빌리티가 단독으로 카풀 업계를 대표할 수 있는 이해당사자인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현재 카카오모빌리티가 운영 중인 서비스 카카오T의 핵심은 카풀이 아닌 택시입니다. 택시를 통해 본격적인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면 아직 본격적으로 시장이 열리지 않은 카풀보다는 택시가 훨씬 중요한 시장입니다. 택시 어플리케이션의 1일 콜 횟수는 200만 건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카풀 시장의 경우 아직까지 이의 0.5% 수준도 못 미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2018년 말 기준)

실제로 1번 조항의 플랫폼 기술을 자가용이 아닌 택시와 결합한다는 내용은 택시 어플리케이션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카카오모빌리티 입장에서도 이익이 되는 조항이며 특히 2번 조항의 규제혁신형 플랫폼 택시를 올해 상반기 중에 출시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은 카카오모빌리티가 현재 관여하고 있는 택시운송가맹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카풀을 양보하더라도 택시를 통해 이득을 볼 수 있느 카카오모빌리티가 단독으로 카풀 업계를 대표했다는 것에 기존 카풀 업체들은 인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물론 풀러스가 지난해 6월 갑작스러운 구조조정 이후 스마트모빌리티포럼에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아 카카오모빌리티 입장에서도 별 수가 없었을 것이지만요.



2) 법적 실효성 측면

이번 합의문은 카풀을 출퇴근 시간(오전 7시부터 9시까지, 오후 6시부터 8시까지)에 허용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는 마치 원래 안 되던 것을 되게 한다는 뉘앙스가 포함되어 있는데, 원래 법규상에는 출퇴근 시 카풀을 허용하고 있으며 출퇴근 시간에 대해 구체적으로 정의하고 있지 않습니다. 때문에 해당 법규에 명시된 출퇴근에 대한 해석을 시간대로 보기보다는 상황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목소리가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출퇴근 시간을 국가가 일률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으며, 현실적으로 유연근무제나 야간 근무가 필수적인 다양한 직업을 고려하면 이를 규정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때문에 카풀 업계에서는 플랫폼에 참여하는 드라이버가 스스로의 출퇴근 시간을 등록하게끔 하자고 주장했으나 이번 합의는 출퇴근 시간을 일률적으로 오전 7시부터 9시까지와 오후 6시부터 8시까지로 해석했으며 이를 현행법상 본래 취지에 맞다고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현행법의 본래 입법 취지가 교통 체증 감소라면 상시 교통 체증 상태인 서울의 상황을 봤을 때 해당 시간만을 허용하는 것이 적합한 지는 의문이며, 이에 대해 사법부에서 최종적으로 판단한 것이 아니므로 해당 시간대가 현행법상의 본래 취지라고 하는 데는 무리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번 합의는 어디까지는 ‘합의’입니다. 이번 합의에서 정한 출퇴근 시간을 입법을 통해 법률에 명시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봅니다. 만약 법규에 출퇴근 시간대를 특정 시간대로 정의하려면 유연근무제 등 현재 시행되고 있는 제도와 노동법상 세부 조항들에 미칠 영향을 진단해야 하며, 출퇴근 시간에 프리랜서 등에 대한 고려는 없으므로 문제가 복잡해집니다.

결국, 이는 이해관계자 간 ‘합의’인데, 합의에 참여하지 않은 또 다른 이해관계자가 해당 합의를 무시하고 사업을 전개해도 이를 법적으로 규제할 명분은 없는 것입니다. 물론 국토부와 여당이 참여한 합의를 정면으로 무시할 수 있는 업체는 없을 것이지만 말입니다.



3) 서비스 효용 (시간대)

이번 합의에는 택시를 잡기 가장 어려운 시간대인 오후 10시 이후부터 새벽 2시까지의 시간이 빠졌다는 한계도 있습니다. 택시 승객 대부분이 택시가 안 잡혀서, 승차 거부를 당해서 화가 나는 시간대는 대중교통이 끊긴 이 시간대인데 이 시간대의 수요-공급 불균형 문제는 해결할 수 없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오전 7시~9시는 드라이버들도 출근 시간에 쫓기기 때문에 카풀에 참여하는 드라이버의 숫자도 적고, 매칭률도 떨어집니다. 이는 어쩔 수 없는 현상임을 감안하더라도 오후 6~8시는 택시 승객 수요가 집으로 향하는 수요가 아닌 도심 내 이동인 경우도 많은 것을 감안하면 카풀로 공급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에도 적합하지 않습니다.

합의대로 해당 시간대에만 카풀 서비스를 운영할 경우 매칭률은 굉장히 떨어질 것이고, 이에 따라 드라이버-라이더 풀이 좁아져 서비스의 효용이 매우 떨어질 것입니다. 플랫폼은 참여하는 수요, 공급자가 증가할수록 가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데 이러한 제한적인 운영으로는 눈덩이 효과를 만들어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4) 어떤 택시 규제를 풀 것인가?

이번 합의와 관련된 관계자들의 설명을 살펴보면 택시에 대한 규제를 대폭 풀겠다고 하는데 어떤 규제를 풀어서 어떤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제시된 것은 아직 없습니다.

해당 합의를 주도한 전현희 의원 의인터뷰를 살펴보면 “택시를 사실상 우버형 택시로 만들어서 스마트 플랫폼을 깔아서 실질적으로 국민의 교통 편익을 더 향상해주자"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우버형 택시가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이고 어떤 편익을 만들 수 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인터뷰 내용 중 우버형 택시는 회사가 배차를 하므로 승차 거부가 없을 거라는 내용이 있는데 이는 앱 택시 시행을 하게 되면서 카카오택시, T맵 택시 등 모빌리티 플랫폼이 진정으로 바라는 공급 측면에서의 통제권입니다. 하지만 승차거부 문제의 본질이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임을 고려하면 플랫폼이 AI 기술을 활용해 배차하면 운영 효율성은 올라갈 수 있겠지만, 그렇다 하여도 수요-공급 간 불일치로 인한 본질적인 택시 승차난 문제의 해결은 어렵습니다. 승차 거부는 없어져도 배차 실패는 존재하는 것이죠.

또다른 방안으로 제시된 요금제의 탄력 운영이나 새로운 형태의 서비스 등장은 다양한 소비자 층이 원하는 것을 만족하기 위해 앞으로 지향해야할 방향임에는 동의하지만 이는 같은 인터뷰에서 언급한 택시 산업을 새로운 ‘대중교통’의 핵심축으로 만들겠다는 말과는 모순되기도 합니다.



◆ 우리는 다시 한 번 기시감을 느끼지 않을까?

이번 합의문을 곱씹어볼수록 소비자의 편익이나 앞으로의 미래를 위한 최적의 결과라기보다는 합의에 참여한 각자의 이익을 최대화한 합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여당과 행정부는 오랜 시간 지속된 사회적 문제에 “합의”를 끌어냈다는 업적을 얻었으며, 카카오모빌리티는 비록 공들여 준비한 카풀에서 많이 양보한 것이 씁쓸할 수는 있으나, 합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여당과 국토부의 체면을 세워주면서 앞으로의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여지를 확보했습니다. 특히 카카오택시를 활용한 수익화가 구체화되기 시작한다는 점에서 고무적입니다. 택시 업계 역시 카풀을 반대하면서 국민에게 비판받는 상황에서 계속 버티기는 어려웠는데 카풀을 특정 시간대에 묶어두는 데도 성공하고 택시 규제 혁파에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명분을 얻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이번 합의는 합의에 참여한 이해관계자들의 행복의 합을 최대화하는 최적의 결과로 보입니다. 택시 승차거부와 승차난에 시달리는 국민을 제외하면 말이죠.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요? 벌써 해당 합의를 인정할 수 없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합의문 발표 바로 다음 날인 3월 8일 금요일 서울 개인택시 기사들은 이 합의를 졸속합의라며 거부한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어쩌면 고령 개인택시의 감차를 추진하겠다는 항목이 심기를 거슬렀을지도 모릅니다.

런칭이 임박한 신규 카풀 서비스 ‘어디고’는 신중하게 상황을 관망하고 있으며, 카풀 모델은 아니지만 역시나 택시 업계에서는 카풀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밥그릇"을 침해하는 서비스로 간주하는 타다는 계속해서 서비스를 운영 중입니다. 아마 택시 업계의 다음 타겟은 타다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렇듯 카풀 관련 합의가 됐다고는 하지만 당분간은 계속해서 잡음들이 발생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몇 년이 지나서 이 합의를 인정하지도 않으며, 기존 규제로도 막을 수 없는 혁신적인 모빌리티 서비스가 등장하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는 아마 지독한 기시감에 시달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김진석

김진석 칼럼니스트 : 국내 자동차 제조사에서 마케팅을 담당했으며, 승차 공유 스타트업에서 사업 기획을 담당했다. 자동차 컨텐츠 채널 <카레시피>를 운영하며 칼럼을 기고하는 등 전통적인 자동차 산업과 모빌리티 영역을 폭넓게 아우르며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