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최고의 스쿠터> : 베스파 GTS300
배달용 스쿠터 틈에서 빛난 독보적인 승용 스쿠터



◆ 다음 자동차 칼럼니스트들이 뽑은 2019년 올해의 자동차

(5) 올해의 스쿠터 - 베스파 GTS300

2019년 한 해 동안 단일 기종으로 가장 많이 팔린 스쿠터는 혼다의 PCX125이다. 1년 10만 대 시장의 대한민국에서 단일 기종으로 1만 4천 대의 판매고는 엄청난 숫자이다. PCX는 올해에도 경쟁 모델들에 비해 두 배 이상 높은 판매고를 올렸다. 출시 이후 높은 인기를 구사하던 이 스쿠터는 이제는 125클래스 스쿠터의 표준이 되어버렸다.

경쟁 모델도 많고, 전기 스쿠터나 더 낮은 배기량에 저렴한 모델도 많이 있는 125스쿠터 중에 PCX에 정면으로 맞설 수 있는 스쿠터는 없었다. 그렇게 PCX는 맨 앞에 있었다. 배달 시장이 커가면서 PCX의 인기는 더욱 높아졌다. 신뢰성과 편의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기 때문이다. 상용 시장이 커질수록 PCX의 인기는 높아졌지만 반면 승용으로 타는 사용자는 줄어들었다. 배달용이라는 이미지를 승용 사용자들이 반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쿠터 중에서 승용으로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몇 안 된다. 스쿠터 시장은 국내 브랜드의 자체 생산 모델이 사라지면서 125cc 미만 스쿠터를 이용하는 사람 자체도 줄어들었다. 결국 125 스쿠터는 근거리 배달 대행용, 300cc 미만 스쿠터들은 중거리를 다닐 수 있는 퀵서비스 시장의 주요 운송수단이 되고 말았다. 500cc 이상의 맥시 스쿠터들은 커뮤터와 레저용 두 가지를 모두 할 수 있어 다양한 모델이 판매되었지만, 판매 대수 자체는 125에 비해 미미하다. BMW가 C 400 GT 등을 출시하기도 했지만 시장을 움직이기에는 부족한 판매 대수를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스쿠터 시장에서 승용 모델로 독보적인 행보를 한 모델은 무엇일까, 바로 베스파의 GTS 시리즈였다.



베스파는 우리나라에서도 익숙한 스쿠터다. 1946년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베스파라는 이름은 전쟁의 폐허에서 이탈리아를 일으켜 세웠다. 성능뿐만 아니라 부드러운 곡선과 유니크한 디자인으로 각종 매체에 이름과 얼굴이 오르내리며 유명세를 탔고, 독특한 주행질감과 철판으로 만들어진 차체는 다른 스쿠터들과 차별성을 가지게 해주었다. 피아지오가 만든 베스파는 곡선이라는 초창기에 가지고 있던 디자인 콘셉트를 지금까지도 이어오고 있다. 꿀벌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처럼 엉덩이에 날카로운 침(엔진)을 가지고 있다. 베스파가 단순히 예쁘기만 한 스쿠터였다면 지금까지 살아남지 못했을 수도 있다. 뛰어난 기술력으로 출력과 내구성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고, 베스파를 하나의 브랜드로 확장시키는 데 성공했다.



1981년에는 국내 마신산업에서 피아지오사와 기술제휴로 당시 대표 모델이었던 PX125를 생산해 판매하기도 했다. 높은 가격과 생소했던 스쿠터의 매커니즘 때문에 판매가 신통치 않았고 3년이 채 안되어 생산 중지에 마신산업도 부도가 나고 말았다. 이때 생산되었던 베스파는 대략 2,000대 남짓. 지금 기준으로 보면 괜찮은 생산 대수와 판매 대수라고 할 수 있지만 당시 국내 모터사이클 시장은 국내 생산만으로 10만 대를 훌쩍 넘기던 시절이었다. 1983년 이후로 사라질 뻔했던 베스파라는 이름은 소소한 병행 수입을 통해서 국내에 유지되어 오다가 2004년에 첫 정식 수입사가 생겨나고 현재에 이르렀다.



국내에 정식 수입 판매되는 베스파는 차체 크기로 스몰보디, 빅보디로 나뉜다. 전통적인 베스파의 이름을 이어가는 LX125부터 스포티 콘셉트의 스프린트, 산뜻한 디자인의 프리마베라 등은 스몰보디, GTS 시리즈는 빅보디로 나뉜다. 빅보디 모델인 GTS250이 2003년 첫 선을 보인 이후, 2008년에는 배기량이 확대된 278cc 쿼사 엔진을 가진 GTS300이 되었다. GTS는 처음부터 퓨엘 인젝션 타입을 사용해 환경오염에 대비했다. 당시 대다수의 스쿠터들이 카뷰레터 방식을 유지하던 것에 비해 피아지오의 기술력이 앞서가고 있었던 것이다. 2014년에는 ABS 브레이크와 ASR이라고 부르는 트랙션 컨트롤 시스템을 장비해 베스파가 단순히 디자인만 좋은 스쿠터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했다.



오랜 시간 피아지오의 대표적인 300클래스 엔진으로 활용되던 쿼사 엔진은 유로 4까지만 대응되기에 새로운 엔진이 필요했다. GTS 시리즈뿐만 아니라 피아지오 계열사의 다양한 스쿠터에 활용되던 쿼사 엔진 대신에 피아지오는 HPE라는 새로운 278cc 엔진을 만들어내고 GTS300의 풀 모델 체인지를 감행했다.



새로운 GTS300은 전통적인 디자인을 그대로 유지하고 세부 디테일을 강화했다. GTS시리즈 중 최상위 모델은 슈퍼테크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스마트폰과 연동하는 4.3인치 풀 컬러 TFT 계기반을 장착했다. 그동안 베스파는 빼어난 외형 때문에 디자인으로만 타는 스쿠터라는 인식이 강했었다. 활기찬 달리기 실력과 독특한 주행질감은 저평가되어 왔다. 그럼에도 그 가치를 아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늘어났다.

GTS300시리즈는 국내에서 연간 400대 미만의 판매고를 보여오다 2018년부터 연간 판매 대수가 500대 이상으로 늘었다. 상용 스쿠터는 대체품이 얼마든지 있었지만 승용 스쿠터로의 선택 폭은 그다지 넓지 않았다. 그 상당수를 베스파가 차지하고 있었고 GTS300은 베스파의 기함으로 스타일과 운동성 그리고 스쿠터의 편의성을 모두 갖춘 스쿠터로 높게 평가받고 있다.



올해의 스쿠터로 베스파 GTS300을 선정한 것도 이런 상징성 때문이다. 상용 스쿠터들이 스쿠터 시장 전체를 지배하고 있을 때 승용 스쿠터의 독보적인 위치를 고수하며 오랜 시간 변하지 않는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2019년에는 풀 모델 체인지를 통해 경쟁자들보다 앞서나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베스파가 지닌 가치는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아름다운 디자인에 있다. 초창기 모델과 현행 모델을 비교해봐도 무수히 닮은 점을 찾아낼 수 있다. 이런 일관된 디자인큐는 베스파의 근간이다. 거기에 피아지오는 과거 비행기나 기차 등을 만들던 기술집약적인 회사다. 내부는 첨단 기술로 꽉 차 있다.



새로운 GTS300에 들어간 HPE엔진은 출력과 토크가 강화되었으며 2021년부터 시행되는 유로5 환경 기준을 충족시킨다. 최고속도는 제한되어 있지만 가속감은 더 올라 갔기에 주행감도 전혀 문제없다. 베스파만 유지하고 있는 독특한 보텀링크 방식의 프론트 서스펜션에서 오는 이질감은 사라진지 오래다. 철판으로 만들어진 차체에서 오는 묵직한 주행 안정감은 고속 주행에서 빛을 발한다. 거기에 베스파만의 컬러풀한 색감을 따라올 다른 스쿠터는 없다.



풀 모델 체인지를 거친 베스파 GTS300은 2019년 가장 돋보인 스쿠터다. 치열한 상용 시장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자신만의 컬러를 유지하면서 최신 기술을 받아들였다. 베스파의 장점은 전통의 유지와 새로운 기술에 대한 거부감 없는 수용이다. GTS300 슈퍼테크는 독보적인 기술을 탑재했다. 그만큼 가격도 올라갔지만 변화하는 스쿠터 시장에서의 상징성도 가지고 있다. 가장 오래된 스쿠터 브랜드에서 만들어낸 최첨단 스쿠터, 그것이 GTS300 슈퍼테크이며 그 모델이 바로 2019년 대한민국 시장에 출시된 것이다.

모터사이클 칼럼니스트 최홍준

사진 pennstudio / 베스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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