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의 뼈대와 엔진 사용해 대박 난 쿠페 카르만 기아
[안민희의 드라이브 스토리] 요즘은 많은 자동차들이 플랫폼을 공유하지요. 비용을 아끼면서도 다양한 자동차 만들 수 있으니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1960년대에도 이런 시도는 존재했습니다. 오늘 소개드리는 ‘카르만 기아’는 폭스바겐 비틀의 뼈대와 엔진을 사용해 만든 멋진 쿠페입니다. 오리지널 비틀은 훌륭한 자동차지만 잘생긴 건 아니잖아요? 그런데 이 차는 멋진 디자인으로 떴어요. 역시 외모가 중요하긴 하나봅니다. 그럼 시작할까요?

1950년대 초반, 비틀을 생산하던 폭스바겐은 브랜드의 이미지를 이끌 새로운 자동차를 원했다. 그래서 비틀의 플랫폼을 개조해 매끈한 스타일의 2도어 쿠페를 제작하기로 결정했다. 디자인은 이탈리아의 카로체리아 기아(Ghia)가, 생산은 독일의 코치빌더 카르만(Karmann)에게 맡겼다.
폭스바겐은 1953년 파리모터쇼에서 기아의 루이지 세거(Luigi Seger)가 만든 스타일링 콘셉트를 공개했다. 비틀을 바탕 삼았음에도 전혀 다른 스타일로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부드러운 곡선으로 감싼 패널은 손으로 모양을 내서 만들었다. 저렴한 비틀을 바탕 삼았지만 제작비용은 고급차 수준이었다.

폭스바겐은 스타일링 콘셉트를 내놓은지 2년만인 1955년에 양산형 모델 ‘타입 14’를 출시하고 ‘카르만 기아(Karmann Ghia)’라는 이름을 붙여 팔았다. 카르만 기아의 길이×너비×높이는 4,140×1,632×1,505㎜. 휠베이스는 2,400㎜였다. 뼈대를 제공한 비틀과 휠베이스는 같지만, 길이와 너비를 좀 더 키우고 높이를 낮춰 근사한 쿠페처럼 다듬었다.
엔진은 두 종류였다. 수평대향 4기통 1.2L OHV 엔진이 기본이고, 이를 이용해 스트로크를 늘리고 카뷰레터를 하나 더 추가해 만든 1.3L OHV 엔진을 뒀다. 1.2L 엔진은 3,600rpm에서 최고출력 34마력을, 2,000rpm에서 최대토크 8.4㎏‧m를 냈다. 1.3L 엔진은 상대적으로 고회전형이었다. 4,200rpm에서 최고출력 50마력을, 2,800rpm에서 최대토크 9.6㎏‧m를 냈다.

각각 최고시속은 120㎞, 150㎞를 기록했다. 빼어난 성능은 아니니 진짜 스포츠카와 대결할 수는 없었다. 대신 멋지고 편안한 쿠페를 원하는 이들을 파고들었다. 출시 첫 해 독일에서 1만대를 파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물량은 미국에 팔았다. 2차 세계대전의 상처를 딛고 일어서던 유럽과, 풍요의 호황기를 누리던 미국의 상황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미국에서의 인기를 확인한 폭스바겐은 1957년에 컨버터블 버전을 추가했다. 이후 디자인을 개선하며 1974년까지 카르만 기아를 팔았다. 거의 44만대를 팔았으니 당시 상황을 생각하면 고무적인 성과다. 디자인의 힘이라고 본다. 미국의 산업디자이너 월터 도르윈 티그(Walter Dorwin Teague)는 이 차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디자인 중 하나로 꼽기까지 했다.

한편, 카르만 기아라는 이름과 멋진 디자인을 갖췄음에도 타입 14만큼의 성공을 거두지 못한 차가 있다. 그런데 이 차도 폭스바겐이다. 왜 같은 ‘카르만 기아’라는 이름을 썼을까?
타입 14로 성공을 맛본 폭스바겐은 1961년 ‘타입 3’를 바탕삼아 스타일을 바꿔 만든 ‘타입 34’를 출시했다. 이 차의 이름도 카르만 기아다. 타입 14의 성공 비결을 따라 기아(Ghia)에게 디자인을 맡겨서다. 디자이너는 세르지오 사르토렐리(Sergio Sartorelli). 시장에서 이름이 겹쳤기에 당시에는 ‘큰 카르만’, ‘유럽형 기아’, ‘타입 3 기아’라는 다양한 별명이 붙었다고 한다.

타입 34 카르만 기아는 정말 호사스러운 차를 목표로 했다. 일례로 1962년 당시 옵션에 전동식 선루프가 있었다고 한다. 실내도 타입 14에 비해 더 크고 고급스럽게 다듬었다. 그러니 가격이 아주 비쌌다. 폭스바겐에서 가장 비싼 차로 손꼽혔는데, 당시 기준으로 비틀의 두 배 되는 가격을 받았다고 한다.
타입 34는 기대만큼의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폭스바겐은 1975년에 생산을 중단하기까지 약 4만2,500대를 팔았다. 그러나 후속 모델들은 모두 성공을 거뒀다. 타입 14의 후속 모델은 지금까지도 세대를 이어 생산하는 ‘시로코’다. 타입 34의 후속은 폭스바겐이 포르쉐에게 개발을 요청해 만든 ‘포르쉐 914’다. 모두 명차로 손꼽히는 모델들이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안민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