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까운 i30의 부진, 해치백엔 더 이상 기회가 없을지도

[김형준의 숫자 깨먹기] "16,896"...우리 자동차 시장을 얘기할 때 관용구처럼 등장하는 표현이 몇 가지 있는데 ‘해치백의 무덤’도 그 중 하나다.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는 설명 없이도 알 일. 해치백은 한국에서 인기 없다. 그런데 대체 얼마나?



한국자동차공업협회(KAMA)가 정기적으로 내는 자동차통계월보에 일단의 실마리가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지난 한해 국내에서 팔린 국산 순수 해치백은 1만6,896대였다. (세단과 해치백 합산 판매량만 오픈된 현대 엑센트 위츠, 크로스오버로 분류되는 기아 쏘울, 그리고 경차는 포함하지 않았다. 또 해치백 형태지만 소형 SUV로 분류되는 티볼리나 니로 등의 제품도 계산에 넣지 않았다.)

몇 가지 예시와 비교해보면 이게 어느 정도 규모인지 가늠된다. 우선 지난해 가장 많이 팔린 국산 승용차는 현대 아반떼로 9만3,804대였다. 대여섯 가지 국산 해치백 중 하나가 팔릴 때 아반떼는 5.5대가 팔린 셈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소형 SUV 코스프레를 하고 있지만 실상 해치백인 기아 니로는 지난 한해 1만8,710대 팔렸다. 한 가지 예시만 더 들어볼까? 시작가격이 3,055만원인 준대형 세단, 현대 그랜저 IG는 지난해 12월 한 달 동안만 1만6,530대 팔렸다. 거듭 말하지만 지난 한해 국내에서 팔린 국산 순수 해치백은 고작(!) 1만6,896대였다.



게다가 1만6,896대 중 66%(1만1,148대)는 현대 아이오닉이었다. 특정 제품으로의 편중을 말하는 게 아니다. 아이오닉은 여느 해치백 제품들과 달리 취등록세 감면과 구매보조금 지원 같은 혜택이 뒤따르는 ‘특수’ 모델이다. 해치백이라서 잘 팔렸다고 보긴 어렵다는 얘기다. 이는 거꾸로 한국에서 일반적인 국산 해치백이 처한 현실을 말해준다. 기아 프라이드, 현대 i30와 벨로스터, 쉐보레 아베오와 크루즈 5도어 등 다섯 개 모델이 5,700대 남짓에 불과한 시장을 쪼개먹는, 그래 그거, 해치백의 무덤 말이다.

대체로 무덤처럼 고요하고 찾는 이가 적었지만 한국 해치백 시장도 소문난 맛집처럼 북적일 때가 있었다. 2000년대 후반, 보다 정확하게는 2007~2009년이었다. 2006년 1만5,000대 남짓이던 시장 규모는 이듬해 3만1,000여 대로 2배 이상 뛰었고, 2008년에는 5만2,000대 이상의 국산 해치백이 팔렸다. 그 다음해인 2009년 역시, 2008년에 비하면 많이 줄었지만 약 3만8,000대가 판매되면서 선전했다. (앞선 경우와 마찬가지로 현대 베르나 해치백은 집계에 포함하지 않았다.) 이유는 분명했다. C 세그먼트 모델인 현대 i30였다.



i30에 관해서라면 시기적으로 적절한 제품이었다. 2000년대 중반은 유럽 해치백에 대한 기대가 한껏 고조되던 시점이었다. 출발은 해치백의 대명사인 골프를 앞세운 폭스바겐 한국법인의 출범(2004년)이었고, 물꼬는 디젤 승용차의 허용(2005년)이었다. 해치백과 디젤 엔진의 본고장 유럽에서 건너온 디젤 해치백은 한국 운전자가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당대의 신문물이었다.

때마침 유럽에선 유럽 현지 개발 해치백인 기아 씨드가 연일 낭보를 전해왔다. 유럽이 인정한 코리언 해치백(기아 씨드)과 같은 기술로 유럽에서 매만진 제품, i30에 기대감이 더해지는 건 당연했다. 시대를 잘 타고난 i30는 출시 첫해인 2007년 단숨에 1만1,000대가 팔렸고 이듬해엔 2만9,301대나 판매되면서 국내 해치백 시장 확대의 주역이 됐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i30는 이후 단 한 번도 연간 판매 2만대를 넘지 못했다. 국산 해치백 시장도 더 이상 규모를 키우지 못했다. i30가 새 모델로 바뀔 때(2011~12년) 반짝 판매가 올랐다가 이전의 1만3,000~1만6,000대 수준으로 내려오기를 반복했을 뿐이다. 심지어 지난해에는 신작 i30가 출시됐음에도 시장이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판매의 절반 이상이 특수성에 기댄 아이오닉이었음을 감안하면 규모는 오히려 축소된 걸로 봐도 무리 없다.



어쩌면 해치백엔 더 이상 기회가 없을지 모른다. 해치백과 비슷한 값에 더 많은 쓸모를 제공하는-비록 그것이 SUV라는 차종이 획득한 허상뿐인 이점이라 해도-소형 SUV마저 시장에 탄탄하게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하물며 자가용이 필요한 한국인에게 우선 순위는 두루두루 쓰기 편한 준중형 이상 세단이었고 이왕이면 다홍치마 격인 SUV였다. 이처럼 다다익선의 가치가 앞서는 환경에서 유럽식 간소함에 뿌리를 둔 해치백이 대세를 잡기는 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한국에서 해치백은-실제의 쓸모와 상관없이-필요보다 취향에 따른 선택, 보편적인 쓸모 대신 ‘다른 생활양식’의 추구일 가능성이 높다.

국내 해치백 시장의 규모와 분위기를 이끌어왔던 i30의 부진은 그래서 더욱 안타깝다. 3세대 모델은 지난해 9월 출시해 연말까지 1,187대 팔렸는데, 신차로는 기록적이랄 정도로 부진한 성적이다. 결과론이지만 ‘성능(핫해치)’을 앞세운 3세대 모델의 출시 초기 캠페인 전략은 이보다 더 나쁠 수 없을 정도의 실패작이었다. 아이유인나에게 거는 기대가 큰 것도 그 때문이다. 도심의 숨은 핫플레이스를 찾아 다니는 둘의 여정은 i30이라는 해치백에 ‘즐거움이라는 생활양식’을 투영한다.



결국 또 기승전현대냐고? 천만의 말씀. 기승전아이유인나다. 두 사람이 차 안에서 까르르 웃고 까불던 티저 영상 아니었으면 내가 i30의 판매량을 꺼내보고 국내 해치백 시장의 형편까지 살필 일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광고 캠페인에 불만이 하나 있다면, 중간중간 자꾸 차가 ‘머엇지이게에’ 튀어나와 맥을 끊는다는 점이다. 나는 둘이 차에서 옥신각신하는 인캠 신만 보면 되는데….

자동차 칼럼니스트 김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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