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한다, 1998년을 (1)
벤츠·BMW·VW이 1998년을 절대 잊을 수 없는 사연

[김형준의 숫자 깨먹기] 메르세데스 벤츠가 지난해 판매량으로 BMW를 제쳤다. 11년 만의 일이었다. 크라이슬러는 피아트와 함께 FCA 출범 이후 최고의 수익을 올렸지만 또 다른 합병 상대를 찾아 헤매고 있다. 한국의 현대자동차는 독립시킨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를 육성하는 데 혈안이 돼 있으며, 기아자동차는 후륜구동 모델 스팅어로 프리미엄 D 세그먼트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SM6의 성공으로 한시름 놓은 르노삼성자동차는 삼성 브랜드와의 작별을 준비하는 분위기다.

그리고 세상은 자율주행자동차의 시대로 빠르게 달려가고 있다. 이처럼 복잡다단한 2017년 자동차 시장의 모습은 어쩌면 1998년의 그 일들로부터 시작됐는지 모른다. 아니, 단언컨대 1998년은 21세기 자동차 역사의 변곡점이었다.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1998년의 중차대했던 이슈들을 3차례에 걸쳐 소개해본다.



먼저 롤스로이스가 매물로 나왔다. 1930년대 초에 인수한 벤틀리와 함께였다. 롤스로이스는 화려한 명성과 달리 오랜 시간 경영난에 힘들어했다. 1971년엔 국유화됐고 1980년엔 중공업 그룹인 비커스(Vikers)에 인수됐다. 하지만 비커스 산하에서도 형편은 좋아지지 않았고 결국 비커스는 1998년 롤스로이스 자동차 사업부를 시장에 내놨다. 독일 BMW가 우선협상에 나섰다. BMW는 당시 개발이 완료된 실버 세라프 세단에 V12 엔진을 공급한 터였다. 그 차와 함께 개발된 벤틀리 아르나지 세다 역시 BMW의 V8 엔진을 썼다. BMW의 롤스로이스 인수는 기정사실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공식입찰에서 이긴 건 더 큰 인수금액을 써낸 폭스바겐이었다.

이때부터 문제가 복잡해졌다. 비커스 그룹은 실버 세라프 개발 등을 위해 조인트벤처를 설립한 BMW에 대신 롤스로이스 상표권 계약을 제시했다. 폭스바겐은 반발했고 롤스로이스의 상징인 환희의 여신과 파르테논 그릴의 사용권리를 사들였다. 롤스로이스 매각 협상이었지만 누구도 롤스로이스 자동차를 온전히 쓸 수 없는 상황이 돼버린 것이다. 지리멸렬한 싸움은 BMW가 실버 세라프/아르나지 생산에 필요한 엔진과 주요부품을 2003년까지 지속하고, 폭스바겐은 BMW 엔진의 롤스로이스를 2003년까지 생산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이 과정을 통해 BMW는 롤스로이스 이름과 로고 사용권을 얻고, 폭스바겐은 유서 깊은 롤스로이스 공장 설비(크루)와 롤스로이스 산하 브랜드였던 벤틀리를 취했다.

롤스로이스 인수를 둘러싼 다툼은 BMW와 폭스바겐 두 그룹이 21세기에 보여준 행보의 출발점이나 다름없는 사건이었다. 벤틀리와 크루 공장을 차지한 그해 폭스바겐 그룹은 람보르기니와 부가티마저 사들였다. 이후 람보르기니는 이미 산하에 두었던 스페인 회사 세아트와 함께 아우디 브랜드 그룹에 편입됐고, 벤틀리와 부가티는 폭스바겐 브랜드를 중심으로 체코의 스코다까지 아우르는 폭스바겐 브랜드 그룹으로 운영됐다. 중저가 브랜드부터 최상위 하이엔드 브랜드까지 포괄하는 거대 자동차 그룹으로 거듭난 셈이다.



이중 핵심은 벤틀리였다. 벤틀리를 위한 완전히 새로운 플랫폼이 개발됐고 이를 토대로 폭스바겐 브랜드는 대형 고급 세단 페이톤을 더했다. 바꿔 말해 벤틀리는 대중 브랜드에 머물러 있던 폭스바겐을 럭셔리 메이커로 변모시키는 자양분으로 기능한 셈이다. 이 같은 전략은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 벤틀리는 라인업을 꾸준히 확장하며 승승장구했지만 페이톤은 시장에서 철저히 외면당했기 때문이다. 폭스바겐에 인수되기 전 1,000대에도 못 미쳤던 벤틀리 판매량은 2003년 공식 출범 후 단숨에 7,000여대 이상으로 뛰었고, 지난해엔 1만1,300대 가량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BMW에게 롤스로이스 인수는 ‘프리미엄 자동차 그룹’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퍼즐 조각이었다. 1994년 로버 그룹 인수로 큰 손해를 본 BMW는 2000년 이 회사를 다시 매각했다. 이때 로버와 MG는 영국의 피닉스 컨소시엄에, 랜드로버는 미국 포드로 넘어갔다. 단 미니 브랜드만큼은 남겨두었다. 2001년 출범한 새로운 ‘미니(MINI)’는 ‘프리미엄 콤팩트카’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아래로 미니, 꼭짓점에 롤스로이스를 둔 BMW는 이때부터 거침없는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가기 시작했다. X3, X6, 5시리즈 그란투리스모 같은 틈새모델이 쉴 새 없이 등장했고 BMW 그룹의 판매량은 금세 연간 200만대에 육박했다.

미니 브랜드가 출범한 2001년 90만대 수준이던 BMW 그룹 연간 판매량은 2007년 150만대를 돌파했고 2011년엔 독일 프리미엄 3사 중 처음으로 200만대(211만7965대) 판매를 넘어섰다. BMW가 추구한 규모의 경제는 경쟁 브랜드를 자극했다. 아우디와 벤츠가 앞다퉈 틈새모델과 고성능/럭셔리 모델을 선보였고, 2010년대부터는 프리미엄 소형차 경쟁으로 불길이 번졌다. 결국 프리미엄 자동차 시장의 성공 기준은 어느새 연간 판매 200만대로 치솟았고, 지금 우리 주위에는 세 꼭지별 엠블럼의 소형 크로스오버 SUV와 전륜구동 설계의 BMW 등 20년 전이면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자동차가 굴러다니고 있다.

다임러 벤츠와 크라이슬러가 합병을 발표했다. 1998년 5월이었다. 다임러가 360억 달러로 크라이슬러 지분 92%를 매입하면서 이뤄진 합병이었다. ‘평등한 합병’을 주장하며 다임러크라이슬러로 새 출발한 둘의 만남은 ‘세기의 결혼’으로 불렸다. 각자가 서로 간섭받지 않는 완전하게 구별된 시장을 무대로 삼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임러 벤츠는 크라이슬러를 통해 미국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크라이슬러는 벤츠의 선진기술을 흡수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감도 있었다.



하지만 둘의 동거는 예상과 달리 동거 기간 내내 잡음만 속출했다. 우선 독일과 미국의 기업 문화가 쉽게 어우러지지 못했다. 독일 생산방식을 미국 공장 노동자에 적용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제품 개발도 가시밭길이었다. 예상과 달리 소비자들은 벤츠 부품을 쓴 크라이슬러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부작용은 실적 하락으로 이어졌다. 크라이슬러는 합병 2년 만에 적자를 기록했고 다임러크라이슬러 주식 가치도 반토막 났다. 미국 출신 경영자의 퇴출과 독일 경영자의 부임도 잇따랐다. 대규모 구조조정이 발표됐고, 2005년엔 합병을 주도했던 다임러 그룹 위르겐 슈렘프 회장이 실적 악화에 대한 책임으로 사임했다.

결국 용단이 내려졌다. 2007년 5월 다임러 그룹은 크라이슬러 지분 80.1%를 사모펀드 서버러스에 매각했다. 매각 비용은 74억 달러. 매입 당시 가격의 5분의 1에 불과했다. 세기의 결혼은 그렇게 9년 만에 파경에 이르렀다. 다임러는 2년 뒤 잔여지분 19.9%마저 서버러스에 넘기면서 둘의 관계를 완전히 정리했다.

결별의 부작용은 생각보다 컸다. 다임러크라이슬러 시절, 벤츠는 품질 저하로 곤욕을 치렀다. 크라이슬러의 부진이 이어지면서 연구개발 비용에 제약이 생긴 탓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BMW에 프리미엄 브랜드 판매 1위 자리까지 내주었다. BMW 그룹이 연간 판매 150만대(BMW, 미니, 롤스로이스 합계)를 돌파한 2007년, 다임러 그룹의 승용차 부문 판매량은 129만3000여 대에 그쳤다. 스마트(약 10만대)와 소량의 마이바흐, 그리고 사우스 아프리카에서 벤츠 관할 아래 생산/판매된 미쓰비시 차(1만100여 대)까지 포함한 숫자였다.

다임러는 회복을 위해 미쓰비시와 관계를 정리하는 한편 항공우주방위산업(EDAS) 지분 매각 등으로 자금을 확보해 연구개발에 집중했다. 그 결과 2007년 27억3300만 유로에 머물던 메르세데스 벤츠 승용차 부문 연구개발비용은 2016년 56억7100만 유로 수준으로 늘었다(지난해 BMW 그룹 R&D 투자비는 51만6400만 유로). 브랜드 전략도 대대적으로 손질했다. 마이바흐와 AMG 제품들은 서브 브랜드(메르세데스 마이바흐, 메르세데스 AMG) 아래 관리하고 제품명을 (A-B-)C-E-S 클래스 중심으로 정리했다.

물리적인 인수나 합병 대신 지분 교환 등을 통한 기술 공유에 힘을 쏟은 것도 특이할 만한 점이다. 애스턴마틴에 파워트레인과 전장 시스템 등을 제공하는 한편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와는 전략적 제휴를 맺고 B 세그먼트 소형차와 C 세그먼트 모델, 상용차 등을 함께 개발했다. 결국 메르세데스 벤츠는 승용차 부문에서 지난해 전 세계에서 약 205만4000대를 판매하며 BMW(200만3000여 대, 미니와 롤스로이스 제외)를 뛰어넘었다.



다임러와 결별한 크라이슬러는 2009년 파산 보호신청을 할 정도로 상황이 악화됐다. 이번엔 피아트가 구세주로 나섰다. 그해 크라이슬러 지분 일부를 인수했고 전미자동차노조가 보유하고 있던 잔여지분(41.46%)을 마저 매입하면서 회사명을 피아트 크라이슬러 오토모빌(Fiat Chrysler Automobiles)로 바꾸었다. FCA 출범 이후 형편이 가장 좋은 건 SUV 전문 브랜드 지프다. 매년 꾸준히 성장해 지난해 전 세계 판매량이 120만대에 이르렀다.

반면 미국의 승용차 브랜드인 크라이슬러는 좀처럼 부진을 털어내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미니밴 퍼시피카가 선전할 뿐 다른 모델엔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중형 세단 200은 시장에 선보인 지 2년여 만에 생산을 중단했고 유일한 승용차인 300 세단도 노쇠화가 뚜렷하다. 300의 경우 다임러크라이슬러 시절 W211 시리즈 E 클래스의 주요 부품을 활용해 개발한 LX 플랫폼 모델이다.

지난해 19억 달러의 순수익을 내는 등 그룹 실적은 호전되고 있지만 신규 모델(크라이슬러 200과 닷지 다트) 생산 중단과 개발 및 출시 지연(알파로메오 줄리아, 마세라티 그란투리스모 후속 등) 같은 문제가 연이어지면서 시장의 불안을 사고 있다. 호시탐탐 합병을 노리는 세르조 마르키온네 회장의 모습도 불안감을 키우는 원인 중 하나다. 지난해엔 GM에 합병 의사를 묻더니 최근엔 독일 폭스바겐과의 합병 또는 조인트벤처 설립 가능성을 언론에 흘리며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2018년 임기가 끝나는 마르키온네 회장은 지난해 이사회에서 “임기 내에 토요타, 폭스바겐이나 포드 중 한 곳과 합병을 성사시킬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마르키온네의 믿을 구석은 거대한 미국 시장에 자리잡은 크라이슬러다. 20년 전 다임러 그룹도 바로 그 점에 현혹돼(?) 크라이슬러와의 합병을 추진했다. 결과는, 앞서 짚어본 바와 같았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김형준 (모터트렌드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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