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과 자동차의 미래 제시한 나이키의 차가 슬쩍 기다려진다
[안민희의 드라이브 스토리] 나이키(Nike)가 자동차를 만든다면 어떨까요? 조금 생뚱맞은 이야기일까요? 하지만 이들은 콘셉트카를 만든 적이 있습니다. 지난 2004년에 ‘나이키 원(One) 2022'라는 근사한 콘셉트카를 게임 속에서 공개했거든요. 가상현실 속의 자동차일 뿐이라지만 미래를 꿈꾸는 모습은 무엇보다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나이키가 만든 콘셉트카, ‘나이키 원(Nike One) 2022 레이싱 콘셉트’는 2004년 ‘그란투리스모 4’를 통해 등장했다. 실물은 없다. 디지털 세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자동차라서다. 제작부터 레이싱 시뮬레이터 ‘그란 투리스모’ 시리즈의 제작사 ‘폴리포니 디지털’과 협력을 통해 만들었다. 실제로 만질 수는 없어도 가상공간에서 타고 달릴 수는 있다.
자동차 제조사도 아닌 운동 관련 용품 제조사 나이키가 콘셉트를 내놓은 건 약간 생뚱맞다. 하지만 콘셉트의 의도는 분명하다. 운동의 범주를 운전까지 넓히겠다는 것. 일반적인 운전은 운동이라 할 수 없지만 ‘모터스포츠’는 분명히 운동 중 하나다. 경쟁에 뛰어들어 자동차와 함께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니까 말이다.

이를 위해 나이키는 몸을 쓰며 달리는 자동차를 원했다. 디자인은 ‘필 프랭크 디자인(Phil Frank Design)’이 맡았다. 나이키의 정체성인 운동에 집중해 나이키 원을 설계했다고. 또한 이들은 미래 소재와 기술로 성능은 높이면서 부품은 줄였다. 나이키 창립자인 빌 보워만(Bill Bowerman)의 “단순할수록 더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다”는 철학을 담기 위해서다.
디자인 팀은 나이키 원의 디자인에 대해 인체의 움직임과 운동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다. 전체적인 디자인은 출발을 기다리며 몸에 힘을 꽉 준 육상 단거리 선수의 모습에서 따왔다. 특이한 비대칭 타이어 또한 인간으로부터 떠올렸다. 필 프랭크 디자인은 모든 요소는 기능과 성능을 위해 설계되었다고 밝혔다.

나이키 원의 테마는 ‘운동’이다. 서스펜션 움직임이 특히 그렇다. 어디서든 자세를 바로잡는 사람처럼, 서스펜션을 적극적으로 움직여 달리는 자동차다. 근육의 형태를 모방해 만든 서스펜션은 주행 상황에 맞춰 모든 바퀴의 서있는 각도(캠버각)를 바꾼다. 직선 주행에선 회전 저항을 최소화하고, 코너링 및 브레이크는 최대한 안정적인 자세를 잡기 위해서다.
운전 자세도 독특하다. 자동차가 아닌 모터사이클 타듯 매달려 탄다. 운전자가 자동차의 일부가 되는 시스템이라고. 누워서 팔과 다리를 사용해 자동차를 움직인다. 즉, 조작과 함께 운전자의 운동이 되는 구조다. 따라서 나이키 원을 빠르게 몰다보면 어느 정도는 몸짱이 되지 않을까란 기대가 든다.

허나 단순히 디자인만 따진 콘셉트는 아니다. 게임 속에서도 제대로 달릴 차를 만들었다고. 이는 협력사 폴리포니 디지털 덕분에 가능했다. 이들은 나이키 원의 3D 캐드 데이터를 받아 공기역학, 서스펜션, 가속 성능, 제동 성능, 무게 등 다양한 데이터를 넣어 가상 현실화했다. 즉, 디자인의 영역에서 데이터의 영역으로 나이키 원을 옮긴 셈이다.
나이키 원은 가상현실 속에서 달리는 자동차지만, 제작자들은 최대한 현실과 가깝게 만들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심지어 일본 자동차 경주 GTC 챔피언을 섭외해 게임 속 나이키 원을 몰아보도록 맡겼다. 주행 특성을 바꾸는 한편, 자동차의 움직임을 자연스레 다듬어 현실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이처럼 다양한 공을 들인 나이키 원은 단순한 게임 속 자동차로 여길 콘셉트는 아니다. 시뮬레이터로 계산한 결과 비교 대상으로 삼았던 ‘살린(Saleen) S7’보다 후지 스피드웨이 서킷에서 더 빠른 랩타임을 기록했다. 힘은 상대적으로 낮아도 민첩성을 높이기 위해 튜닝한 덕분이다.
나이키 원은 2022년의 미래를 배경으로 제작됐다. 2022년이 나이키 창립 50주년이 되는 해라서다. 당시에는 2022년이 되면 나이키 원을 만들 기술을 확보할 것이라고 봤다. 실제로 카본, 티타늄 등의 소재는 현재 자동차에 일부 적용이 되고 있고, 모터로 직접 바퀴를 돌리는 기술은 이미 전기차에 적용 중이다.

그래서 이제는 5년 밖에 남지 않은 2022년이 슬쩍 기다려진다. 전기차의 미래를 기대하는 지금, 나이키 원이 실제로 등장한다면 기쁠 것 같다. 타면서 운동이 되는 자동차라니, 운송 수단의 미래를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출퇴근만 하더라도 건강해질 것 같다. 자동차가 아닌 운동 기구로 생각하면서 신나게 타고 싶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안민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