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과 낭만, 열정이 가득한 이탈리아 자동차 (2)
이탈리아 국민 기업 피아트(1)

[황욱익의 플랫아웃]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자동차 기업을 꼽으라고 하면 누구나 피아트를 꼽는다. 117년의 역사, 이탈리아 최초로 대량 생산 시스템을 도입한 자동차 회사, 파시즘 신봉자 등 피아트는 근현대 자동차 산업과 전쟁을 치른 유럽 역사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회자된다. 소형차 생산을 기반으로 성장한 피아트는 이탈리아 최대 자동차 기업으로 2014년에는 페라리, 마세라티, 알파 로메오, 란치아를 포함한 기존 그룹사 외에 크라이슬러까지 인수합병하면서 FCA 그룹(피아트 크라이슬러 오토모빌즈)으로 거듭난다.

1899년 지오반니 아그넬리가 설립한 피아트는 일찍이 토리노에 자리를 잡았다. 파브리카 이탈리아나 오토모빌 토리노(Fabbrica Italiana Automobile Torino)의 머리글자를 딴 피아트는 마차 시절부터 엔지니어링에 높은 관심을 가진 회사였다. 아그넬리 패밀리로 알려진 피아트 설립 가문은 토리노의 유명한 사업가 집안으로 귀족들을 위한 마차 시대의 종말과 함께 자동차 사업에 뛰어든다.



피아트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 기술력은 보잘 것 없지만 특유의 사업가적 기질과 로비로 성장했다는 평가도 있는 반면 란치아나 알파 로메오에 고성능 엔진을 공급할 정도로 뛰어난 기술력을 지닌 회사, 항공기와 전차, 선박, 잠수함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분야에서 활동한 문어발 기업 등이다. 이 부분은 모두 맞는 말이다. 설립자인 지오반니 아그넬리의 사업가적 기질과 로비 능력은 피아트를 종합 엔지니어링 회사로 키우는데 밑거름이 됐고 100년이 역사를 버티면서 이탈리아의 명문 자동차 기업을 인수할 정도로 덩치를 키우는데 기술력이 없었다면 그 역시도 불가능 했을 것이다.



◆ 자동차는 대중적인 물건이어야 한다!

일반적인 자동차가 대중화되기 까지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마차를 대체하는 교통수단으로 등장한 자동차는 유럽에서 처음 선보였으며, 1903년 미국의 포드가 설립되면서 대중화의 길로 들어섰다. 반면 자동차 종주국인 유럽에서는 여전히 자동차는 부자들의 사치품이었는데 피아트는 설립 목표에 대중적인 자동차를 내세운 최초의 자동차 회사이기도 하다.

당시 유럽 자동차 회사들과는 다른 노선을 선택한 피아트는 유럽 최초로 대량 생산 체제를 구축한다. 물론 대중화를 내세우기는 했지만 초기부터 대량 생산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1899년 말에 등장한 피아트의 첫 차 4HP는(총 24대 제작) 초기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으나 토리노의 코르소 단테에 생산 체제를 갖춘 1900년부터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모델로 자리매김한다.



초기 피아트는 자동차 개발과 산업용 기차, 선박 엔진 개발을 함께 진행했다. 아직까지 대중화되지 못한 자동차에 승부를 걸기보다는 이익률이 큰 산업 장비 개발에 투자하면서 회사를 꾸려나갔다. 산업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이탈리아에서 피아트의 이런 정책은 크게 성공을 거두었으며 여기서 얻은 이익으로 자동차 개발에 투자하는 구조를 갖췄다.

특이하게도 피아트는 엔진의 출력을 상품명으로 사용했다. 피아트 최초의 모델인 4HP를 시작으로 20HP, 30HP등을 선보이며 1911년에는 당시 세계 기록을 작성한 타입 S 76 300HP F레코드를 발표한다. 무려 28,353cc의 엔진을 가진 이 차는 4단 전진기어와 1단 후진기어를 갖춘 자동차로 1,900rpm에서 290마력을 발휘했다.



그렇지만 자동차는 여전히 대중적이지 못했다. 다른 자동차 회사들도 마찬가지였지만 일반인들을 위한 승용차 부분에서 수익은 생각보다 크지 못했고 피아트는 산업용 엔진과 디젤 엔진(1907년), 트럭, 트랙터 등이 회사의 주수익이었다. 여기에 항공기 사업까지 진출하면서 덩치를 불리긴 했지만 여전히 지오반니 아그넬리는 자동차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했다.

피아트의 1919년 발표한 서브 컴팩트카인(현재의 C 세그먼트) 501을 통해 자동차의 본격적인 대중화를 시작한다. 1923년에는 자동차 전용 공장인 링고토를 오픈했으며, 이 곳은 지금도 피아트를 상징하는 곳으로 통한다. 지오반니 아그넬리가 구상한 이상적인 자동차 공장인 링고토는 한 곳에서 제작과 시험, 출고까지 마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토리노 각지에 위치한 부품 공장에서 도착한 부품들이 1층 공장에서 조립되고 조립이 완료되면 옥상의 테스트트랙에서 시험을 마친 후 출고되는 시스템이었다. 지금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건물 옥상에 테스트 트랙을 만든 피아트의 도전은 지금도 회자 되는 부분이다.

2부에 계속

자동차 칼럼니스트 황욱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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