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자동차 (28)
자율주행 시대에 어울릴, 시대를 앞선 콘셉트 닛산 피보

[안민희의 드라이브 스토리] 이번 글에서 다룰 닛산 피보는 2005년에 등장한 전기차 콘셉트입니다. 그런데 디자인을 잘 살펴보면 완전 자율주행차 시대에 어울릴 모습입니다. 시대를 앞섰다는 생각이 든달까요? 자율주행차 시대가 오면 자동차의 디자인은 크게 바뀔 것입니다. 직접 운전을 하지 않을 테니 주행 성능을 위한 디자인은 큰 의미가 없겠지요. 대신 실내 공간을 최대한 넓고 아늑하게 만들겠지요. 대도심에 어울릴 작은 차도 좋겠습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닛산의 피보(PIVO) 콘셉트는 2005년 도쿄모터쇼에서 등장했다. 당시 닛산은 ‘미래의 전기차’가 갖고 있는 잠재력을 보여준다는 의미로 피보를 선보였다. 전자식 스티어링, 전자식 가속‧브레이크 페달 등 당시 시대를 감안하면 놀라운 신기술들이 가득했다. 가장 압권인 부분은 360°로 회전하는 실내 공간. 차체 위에 실내 공간을 얹은 형태라 자유롭게 각도 조절이 가능했다.

실내가 빙빙 도니 좁은 골목 통과하거나 주차할 때 운전자가 방향을 돌려 상황을 살피기 편했다. 예를 들어 후진 주차를 하는 상황에서도 운전자가 방향을 180° 바꿔 전진 주차가 가능한 셈이다. 이런 구성을 택한 이유는 전기 시스템의 이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엔진 대신 모터를 얹고, 기계식 스티어링 대신 전자식 스티어링을 얹었기에 자유로운 디자인이 가능했다.



달걀 모양의 디자인도 인상적이다. 최대한 작은 차체에 공간감을 더하기 위한 수법이다. 피보의 길이는 2,700㎜에 불과하다. 하지만 3명이 앉을 수 있다. 운전자가 가운데에, 승객이 양쪽에 앉는 방식이다. 커다란 문을 미닫이 방식으로 달아 머리를 부딪치지 않고 쉽게 탈 수 있도록 만든 센스가 좋다.

피보 콘셉트는 커다란 인기를 끌었고, 2년 후인 2007년 도쿄모터쇼에서 닛산은 후속 콘셉트인 ‘피보 2’를 공개했다. 피보 1의 스타일과 콘셉트는 계승하되 더욱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환경 친화적인 도시 출퇴근용 자동차’를 꿈꿨다.



대표적인 부분이 바퀴다. 피보 1은 실내를 빙빙 돌렸다. 하지만 피보 2는 실내가 아닌 바퀴를 돌린다. 바퀴에 바로 모터를 달아 각 바퀴를 90° 이상 꺾을 수 있도록 했다. 그래서 평행 주차할 때 게걸음치듯 바로 옆으로 들이밀고, 주차할 때는 제자리에서 빙돌아 바로 댈 수 있었다. 주차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완벽한 제안이라는 생각이다.

크기는 작지만 실내는 고급스러워 보인다. 부드러운 곡선을 더한 모습이 마치 라운지 쇼파에 가깝다. 게임기의 조이스틱같이 아기자기하게 빚은 스티어링 휠의 모습이 재미를 돋운다. 특이하게도 로봇 비서를 달았다. 스티어링 휠 옆에 자리한 로봇 비서가 운전자의 입력을 알아듣고 때로는 말동무가 되어주는 시스템이다.



이후 닛산은 2011년 도쿄모터쇼에서 피보 3 콘셉트를 공개했다. 4년 만의 복귀다. 그러나 인상은 크게 바뀌었다. 동글동글한 디자인이 매력적이었던 콘셉트에 직선을 더해 초소형 해치백을 만들었다. 닛산은 피보 3을 공개하며 “피보 1, 피보 2가 쇼카였다면 피보 3은 닛산이 가까운 미래에 내놓을 수 있는 사실적인 전기차로 발전했다”고 밝혔다.

피보 3은 도심형 소형 이동 수단의 미래를 제시하는 콘셉트다. 전기차 리프가 어디서든 쓸 수 있는 다양한 활용성의 소형 해치백을 추구한다면, 피보 3은 도심 속 삶에 특화된 초소형 자동차다. 예를 들면 자동 주차 기능을 갖춰 운전자가 내리면 스스로 배터리를 충전하고, 스마트폰을 통해 부르면 알아서 운전자의 위치를 찾아오는 등의 미래 기술을 제시했다.



또한 사이드 미러 대신 카메라와 모니터를 사용하는 미러리스 기술 및 닛산 어라운드 뷰 시스템, 로봇 인터페이스 등의 다양한 기술을 제시했다. 비록 콘셉트에 그쳤지만, 자동차가 스스로 전력을 충전하고, 역으로 전력을 도시에 제공할 수도 있다는 아이디어는 활용도가 높다고 생각한다. 각 자동차와 서버를 연결해 도시 전체의 효율적인 전력 운용 예상도 가능해서다.

피보 시리즈는 콘셉트에 그쳤다. 하지만 전기차의 미래를 생각하고 만든 디자인과 콘셉트는 10년 가까이 흐른 지금에도 상당히 매력적이다. 시대를 앞선 디자인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자율주행차에 어울리는 구성이 아닐까 싶다. 운전의 재미보다 더욱 실용적인 실내와 기술을 원할 테니 말이다. 닛산이 언젠가는 피보 4 콘셉트를 내놓았으면 한다. 그냥 두기 아까워서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안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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