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 전 등장한 메르세데스-벤츠의 전기차, LE 306
[안민희의 드라이브 스토리] 요즘은 전기차(EV)에 눈길이 갑니다. 각 제조사마다 2020년 정도를 기점으로 전기차를 쏟아낼 예정이지요. 메르세데스-벤츠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전기차를 위한 서브 브랜드 ‘EQ’를 내놓고 “미래 전기차의 표준을 세우겠다”고 밝혔지요. 허나 이들의 움직임이 갑작스러운 것은 아닙니다. 메르세데스-벤츠를 비롯한 여러 브랜드들은 오래전부터 전기차를 연구해왔습니다. 이번에는 45년 전 등장한 이들의 전기차를 소개합니다.

45년 전인 1972년 3월, 메르세데스-벤츠는 ‘국제 전기 에너지 생산·배급자 연합(UNIPEDE)’이 주관한 ‘전기차 연구의 날’ 심포지엄에서 자동차 한 대를 공개했다. 전기로 움직이는 친환경 화물차 ‘LE 306’ 밴이었다. 양산 계획은 없었지만 단순한 콘셉트는 아니었다. 전기차의 미래를 살피기 위한 연구용 자동차에 가까웠다.
같은 해 8월, 서독 뮌헨이 올림픽을 열자 독일 자동차 제조사들은 앞 다퉈 지원차량으로 전기차를 내세웠다. 세계에 기술력 자랑할 좋은 기회였다. 메르세데스-벤츠는 LE 306을 선보여 주목을 끌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총 58대의 LE 306을 양산해 실제 주행 성능 및 유지에 관한 대규모 실증 시험도 진행했다.

LE 306은 35~56kW급 모터를 사용했다. 배터리는 144V 전압에 22kWh 용량이었다. 지금 보면 무난한 수준의 용량이지만, 사실 배터리 무게만 860㎏에 달했다. 당시에는 지금보다 효율이 떨어지는 납축전지를 사용했기 때문. 그럼에도 최대 1톤 무게의 화물을 싣고 최고시속 80㎞로 약 50~100㎞ 정도의 거리를 달릴 수 있었다.
배터리를 사용한 것 까지는 좋았지만, 주행 거리가 생각보다 짧았다. 충전을 하면 된다고는 하지만 당시 배터리 기술로는 빠른 충전이 불가능했고, 이는 상용차로는 치명적인 부분이었다. 그래서 기술자들은 새로운 배터리 교환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들이 내놓은 ‘슬라이드-스루 수평 배터리 교환 기술’을 사용하면 단 몇 분 만에 배터리 교체가 가능했다.

메르세데스-벤츠의 설명에 따르면 “충전소에 들려 방전된 배터리를 측면으로 빼는 동시에, 완충된 배터리를 다른 쪽에서 밀어 넣는 방식”이라고. LE 306의 브로슈어에는 “배터리를 교체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주유소에서 연료를 가득 채우는 시간과 비슷하며, 더 시간을 소요하지 않는다”고 적혀있다.
LE 306은 45년 전에 만든 실험적 모델이라지만, 지금도 전기차, 하이브리드에 쓰이는 기술을 여럿 달았다. 대표적인 것이 에너지 회생 제동 기능이다. 전기 모터를 제동 중 제너레이터 역할로 사용해, 운동 에너지를 전기 에너지로 바꿔 배터리에 저장했다. 메르세데스-벤츠가 LE 306을 “전기차를 향한 이정표”라 부르는 이유다.

LE 306에 대한 여러 가지 평을 찾아보면 위화감이 없다는 표현이 많다. 지금도 마찬가지. 그 때의 충격은 더욱 컸을 것이다. 무역잡지인 <라스트오토 옴니버스(Lastauto Omnibus)>는 “전기로 움직이는 메르세데스-벤츠 밴을 일반적인 엔진 자동차와 구별할 수 있는 부분은 거의 없다. 자동 변속기를 단 자동차보다 운전하기가 쉽다”고 평했다.
흥미롭게도, 당시에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짧은 주행 가능 거리와 비싼 배터리 가격은 ‘앞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로 여겼다. “전기차의 성공은 새로운 에너지 저장 장치의 개발에 달려있다”는 평가는 의미심장하다. 지금도 리튬 이온 배터리의 가격 하락과 고체 전지의 개발에 전기차의 성공이 달려있기 때문이다.

LE 306 이후에도 이들은 꾸준히 전기차를 개발해왔다. 45년이 지난 지금도 자동차 시장은 아직 전기차를 완전히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오랫동안 쌓아온 역사와 기술은 전기차 시대에도 브랜드에 매혹을 더할 재료가 됐다. 메르세데스-벤츠가 내놓은 전기 상용차 콘셉트 ‘비전-밴(VISION-VAN)’을 보면 45년 전에 등장한 LE 306이 떠오르듯이 말이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안민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