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멋과 낭만, 열정이 가득한 이탈리아 자동차 (3)
이탈리아 국민 기업 피아트(2)
[황욱익의 플랫아웃] 링고토 공장 오픈 이후 피아트는 날개를 달았다. 지오반니 아그넬리의 로비 능력은 상상이상이었고 투자자와 정부도 적극적으로 나서 피아트는 자동차를 제조 판매하기에 가장 좋은 조건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공격적인 판매 전략을 내세운 피아트는 보다 대중적이고 차후 커질 시장인 대중차 시장을 선도하기 시작했으며 이탈리아 내에서는 경쟁자가 없을 정도로 성장했다. 물론 피아트 외에 란치아나 알파 로메오, 마세라티 같은 회사들이 있었지만 이들은 철저하게 럭셔리를 추구했고 본격적인 대량 생산 체제를 도입한 피아트와 직접적으로 경쟁하지는 않았다.
1923년 피아트는 비행기 엔진을 올린 경주차를 선보인다. 피아트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경주차인 메피스토펠레 엘드릿지 레코드의 엔진은 무려 21.7ℓ로 1차 세계대전 당시 피아트가 이탈리아 정부에 납품했던 비행기의 엔진이다. 섀시는 피아트의 경주차인 SB4의 것을 사용했으며, 시속 234.98km를 기록했다. 대중차를 만드는 것으로 자리를 잡았지만 기술력 경쟁에서도 피아트는 다른 브랜드들에게 밀리지 않았다.

◆ 전범 기업의 흑역사, 500의 성공 신화
승승장구하던 피아트에게 위기가 닥친 시기는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무렵이다. 자동차 외에도 이탈리아 군수용 선박과 항공기, 철도를 납품하던 피아트의 링고토 공장은 발 빠르게 군수공장으로 전환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논란이 많은데 피아트의 경영권을 쥐고 있던 아그넬리 패밀리의 자발적인 전환이었는지 무솔리니의 요청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지오반니 아그넬리에 평가가 극명하게 나뉘는 때도 이때부터이며, 패전국이 된 이탈리아의 국민기업 피아트는 다른 독일이나 일본의 자동차 메이커처럼 전범기업이라는 딱지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때문에 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피아트의 행보는 그야말로 흑역사로 불린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피아트는 소형차의 수요가 전쟁 전보다 훨씬 더 많아질 것을 예상했고 다양한 소형차를 출시했다. 그러나 여전히 자동차의 가격은 서민들이 접근하기에 높았기 때문에, 독일의 국민차 프로젝트와 비슷한 목적을 가진 시티카 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여기서 탄생한 자동차가 현재까지도 피아트를 상징하는 모델인 500이다. 원래 500은 1936년 출시해 1955년까지 생산된 모델로 우리가 알고 있는 500의 전신이다. 모델명은 같지만 최초의 500은 토폴리노라 불리고 단테 지아코사가 개발 책임을 담당한 500은 친퀜첸토(애칭으로 시작했으나 이후에는 고정 모델명이 된다.) 혹은 누오바 500으로 불린다.

1956년 단테 지아코사가 해결해야할 과제는 6명의 사람과 넉넉한 트렁크 적재 공간, 120km/h 이상의 속력, 10km/ℓ 이상의 연비, 안정성 높은 엔진과 넓은 시야였다. 이런 내용은 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의 국민차 개발 과제와 비슷했으며, 이렇게 등장한 500은 이탈리아인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다. 500의 등장은 이탈리아의 본격적인 마이카 시대를 여는 기폭제가 되었다. 여기에 근로 여성들이 구입할 수 있는 가격대까지 형성하면서 500은 이탈리아를 상징하는 국민차로 자리를 잡는다. 1957년부터 1975까지 생산된 500은 380만대로 2도어, 2도어 세미 컨버터블, 밴 등 다양한 버전이 선보였다.
500의 성공을 발판으로 피아트는 소형차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다른 자동차 메이커들이 고급 세단이나 스포츠카에 집중한데 반해 피아트는 전륜구동 기반의 다양한 소형차를 선보이며 유럽 시장의 강자로 부상한다. 소형차의 성공에 힘입어 소형차 기반의 다양한 스포츠 모델도 등장하게 되고 피닌파리나와 협업으로 탄생한 미드십 소형 스포츠카인 X1/9이나 후륜구동 124 스파이더, 디노 같은 차들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여러 계열사를 거느리며 세계적인 자동차 기업이 된 피아트는 100년이 넘는 시간동안 끈임 없는 도전과 새로운 시도를 거듭하며 지금에 이르렀다. 경차보다 작은 시티카 개념을 자동차 시장에 도입해 유럽 자동차 문화를 선도하기도 했으며, 현재도 실용적이면서 개성적인 자동차를 선보이고 있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황욱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