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용하고 편안한 친구 같은 렉서스 ES300h
[김종훈의 자동차 페티시] 얼마 전 뉴스를 봤다. 수입차 월별 판매 순위였다. 결과는 안 봐도 대충 짐작할 수 있다. BMW 아니면 메르세데스-벤츠. BMW가 매번 1위를 놓치지 않다가 얼마 전 벤츠가 뒤집었다. 그러다 다시 BMW가 순위를 탈환했다. 아슬아슬한 차이라서 보는 재미가 있다. 그 전쟁의 승부처는 항상 중형 세단 판매 순위였다. 그러니까 BMW 5시리즈와 벤츠 E클래스. 둘의 판매량이 곧 전체 판매 순위를 좌우했다. 수입 중형 세단 시장의 규모이자 힘이다.
5월에는 재밌는 결과가 나왔다. 수입 중형 세단 판매율에서 렉서스 ES300h가 판매량 1위를 달성했다. 여러 변수가 얽혔을 거다. 그럼에도 순위는 순위다. 5월은 렉서스 ES300h의 달이었다. 물론 ES300h가 앙팡테리블은 아니다. 최전방 스트라이커는 아니지만 미드필더로 꾸준히 활동해왔다. 언제 어디서든 빠지지 않고 순위권을 차지했다. 1등은 아니지만 꾸준히 3등, 혹은 4등은 하는 그런 차. 알게 모르게 제 몫은 해왔달까.

‘알게 모르게’란 말은 렉서스 ES300h란 자동차를 설명한다. 과거 렉서스는 ‘강남 쏘나타’로 불렸다. 어감은 별로지만, 의미는 꽤 있다. 그만큼 회사에 막대한 이득을 안겨주는 모델이니까. 이제 그 호칭은 5시리즈나 E클래스로 넘어갔다. 그렇다고 이제 렉서스를 안 탈까? 여전히 사람들은 렉서스를 탄다. 그 중에서 ES300h를 선택한다. 알게 모르게, ES300h는 렉서스의 명성을 잇는다. 알게 모르게, 사람들은 ES300h에 렉서스의 명성을 기대한다.
ES300h는 렉서스의 대표 중형 세단이다. 가장 많이 팔려고 만들었고, 팔리는 모델이다. 렉서스가 바라보는 세단의 가치를 담은 모델이다. 사람들이 렉서스에 기대하는 바도 담았다. 보다 보편적 가치를 우선한다. 게다가 ES300h는 하이브리드 모델이다.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토요타와 렉서스의 상징 같은 기술이다. 꾸준히 외길 인생으로 다져왔다. 그런 대표성도 ES300h에 담겼다. 담겼을 거라고 믿는다. 그러니까 ES300h는 렉서스의 어떤 기준을 제시한다.

렉서스가 바라보는 기준과 사용자가 렉서스에 바라는 기대가 만나는 지점에 ES300h가 있다. 사실 ES300h의 매력도 그 지점일 거다. ES300h를 보면 점잖은 친구가 떠오른다. 그런 친구 있지 않나. 나서서 뭘 하기보다는 조용히, 믿음직스럽게 맡은 일을 해내는 사람. 한눈에 사로잡기보다는 오랜 시간 곁에 있을 때 생각나는 사람. 정숙해서 더 편하고, 정숙해서 더 오래 사귈 여지가 생긴다. 자동차도 곁에서 오래 있어야 할 존재다. 어쩌면 이런 친구의 가치가 자동차에 더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짜릿한 그 어떤 것보다.
ES300h는 정숙하다. 하이브리드 모델이라서 시동이 켜졌는지 잊을 때가 많다. 저속에서 전기로만 달릴 때도 정숙하다. 운전석에 앉은 후 출발해서 일정 구간까지, 정숙한 공간이 연출된다. 그때 느끼는 편안함은 꽤 인상적이다. 소란스러운 외부에서 완전히 벗어난 기분을 느낀다. 현대사회에서 온전히 자기만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게다가 그 시간이 정숙하기까지 하다면 더 소중할 수밖에 없다. 물론 엔진이 일하기 시작하면 상대적으로 더 크게 들리지만.

ES300h의 정숙함은 단지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열매인 것만은 아니다. 실내 인테리어의 질감에서도 느낄 수 있다. ES300h의 실내는 화려하거나 특이하기보다는 무던한 편이다. 사실 이것저것 비교해 보면 고루하기도 하다. 게다가 외부는 스핀들 그릴로 힘 줬으니 실내는 더 무던해 보인다. 하지만 오히려 화려하지 않아서 오래 쓰기에 좋을 수도 있다. 자기 목소리를 강하게 내기보다는 필요한 일을 묵묵히 해내려는 친구처럼.
정숙성을 바탕에 둔 ES300h는 다른 자동차에 비해 덜 매력적일 수 있다. 자극적이지 않기에 다음, 그 다음 순서로 밀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돌고 돌아 결국 묵묵한 친구와 우정을 쌓는 경우가 많다. 또한 일단 사귀면 오래 가기도 한다. 겪은 일이 많을수록 결국 무던하지만 정숙한 그 친구를 찾게 된다. 수입 중형 세단 시장에서 ES300h의 위치가 그렇다. ES300h가, 렉서스가 그 위치를 절묘하게 꿰찼다. 5월 판매 순위에 놀라면서도 고개를 끄덕인 이유다. ES300h의 정숙성은 대기만성과 어울리니까.

자동차 칼럼니스트 김종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