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팅어의 잠재력을 ‘시카고 타자기’는 절반도 사용하지 못했다
기아차 스팅어 vs <시카고 타자기> 유아인 (2)
[강희수·정덕현의 스타car톡] 저거 수입차 아냐? 출시되기 전부터 광고나 드라마 속에서 이미 화제가 된 차가 있다. 바로 기아차에서 내놓은 신개념카 스팅어가 그 주인공. ‘당신은 원래 가슴 뛰던 사람이었습니다’라는 광고를 통해서 또 최근 tvN에서 종영한 <시카고 타자기>라는 드라마 속에서 달리고 달린 스팅어. 이 문제의 자동차에 대해 자동차 전문기자인 강희수와 대중문화 칼럼니스트인 정덕현이 수다를 나눴다. ‘알아두면 쓸데없는’ 수다처럼 들리지만, 듣다보면 묘하게 이어지는 스팅어와 <시카고 타자기>에서 한세주 역할을 맡은 유아인의 평행이론. 거기에는 어떤 연결지점이 있었을까.
강희수(이하 강) : 스팅어의 특징을 기능적으로 이야기하면 “빠르다”라는 걸 거다. ‘제로백’. 별로 탐탁지 않은 조어이지만 차의 순간 가속력을 평가하는 용어로 흔히 쓰이는 말이다. 정지상태에서 출발해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뜻하는데, 순간 발진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하는 잣대로 통용 되고 있다. 스팅어가 100km/h에 도달하는 시간은 4.9초다. 최고 속도는 270km/h. 우리가 ‘슈퍼카’라고 부르는 람보르기니나 페라리, 맥라렌, 그리고 프리미엄 브랜드 중에서도 고성능 튜닝 브랜드들이 3초대 ‘100km/h 발진 성능’을 보이고 있다.
스팅어가 갓 탄생한 마당에 3초대를 거론하기에는 아직 간극이 너무 크다. 스포츠카 개발 이력이 없는 우리나라에서 4.9초 발진 성능은 현실적으로 높이 평가할만하다. 이 정도 성능만 해도 웬만한 도로에서 신호 정지 후 급 가속했을 때 체면 구길 일은 거의 없다. 고속도로에서는 발진 성능보다 추가 가속 성능이 더 쓸모 있다. 톨게이트에서 하이패스 차로를 벗어난 뒤 본 도로로 진입할 때, 가속페달을 꾹 밟으면 몸이 시트 속으로 훅 묻히는 기분이 든다. 흔한 표현으로 목이 뒤로 젖혀드는 상황도 경험할 수 있다.
정덕현(이하 정) : 스팅어가 갖고 있는 그 잠재력은 <시카고 타자기>에서 주인공 한세주 역할을 연기한 유아인을 떠올리게 한다. 유아인은 참 많은 얼굴을 숨기고 있고 그 잠재력도 무한한 배우다. 처음에는 그저 예쁘장한 얼굴의 미소년 배우처럼 등장했지만(서양골동과자점 앤티크), 자신을 청춘의 아이콘으로 세우고 나서는(완득이), 줄곧 청춘의 다양한 얼굴들을 드러냈다. 거친 현실 앞에 주먹으로 맞서기도 하고(깡철이), 광인이 되기도 하며(사도), 갑질하는 악역의 얼굴이 되었다가(베테랑), 새로운 체계의 주역이 되기도 했다(육룡이 나르샤).
그리고 유아인은 <시카고 타자기>를 통해 일제강점기와 현재의 청춘을 오가는 연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다소 억지로 연결시켜 얘기하는 것처럼 들릴 지도 모르겠지만, 내 시각으로 볼 때 잠재력의 차원에서 보면 유아인과 스팅어로 여러모로 그 이미지가 중첩되는 면이 있다. 그 중첩되는 이미지는 평소에는 얌전한 미소년처럼 보이지만 연기에 몰입하는 순간 폭발력을 보인다는 점이다.

강 : 스팅어에 장착 된 기능 중에 ‘런치 컨트롤(Launch Control)’이라는 게 있다. 차는 브레이크와 가속페달을 동시에 밟아 동력 성능을 최대한으로 높인 상태에서 순간적으로 브레이크를 떼면 급가속은 이뤄진다. 차에 크게 무리가 가는 이 발진법을 감내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장치가 필요한데 이것이 런치 컨트롤이다. 정지 상태에서 급 가속할 때 바퀴에 지나친 미끄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면서 동력은 최대 수준으로 끌어내는 최적의 순간을 설정하는 기능이다. 이 장치 덕분에 스팅어는 시속 100km/h 도달 시간 4.9초를 달성했다. 배기량 3,300cc 터보 가솔린 모델이 최고출력 370마력(PS), 최대토크 52.0kgf·m의 스펙을 갖고 있는데 주변에서 많이 접하는 그랜저 2,400cc 가솔린 모델의 출력이 190마력이다. 스팅어의 폭발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는 비교 수치다.
정 : 그런데 궁금해지는 건 도대체 이렇게 빠르고 폭발력을 가진 차로 뭘 어떻게 할 건가 하는 점이다.
강 : 그런 고민이 생길 수밖에 없다. 뒷좌석에 아이들, 동승자석에 아내를 태우고 ‘스팅어 처럼’ 달렸다간 당장 이혼서류가 날아들지도 모르니까. 방법은 두 가지다. 가족용 차를 따로 두고, 자신만을 위한 차로 이용하거나, 결혼을 하지 않고 화려한 싱글로 사는 거다. 그러나 후자를 추천할 수는 없는 일. 그래서 스팅어는 패밀리카로 이용할 때 유용한 ‘드라이브 와이즈’라는 시스템을 옵션으로 선택할 수 있게 했다. 이 기능을 쓰면 차는 양복 입은 신사처럼 매우 반듯해진다. 크루즈 컨트롤로 일정 속도를 지정해 놓으면 차는 그 이상의 속도로 달리지 않는다. 앞 쪽에서 달리고 있는 차를 인식해 앞차가 속도를 줄이면 같이 줄여 준다. 도로의 차선을 알아보고 차가 차로를 벗어나려 하면 알아서 핸들을 돌려주기도 한다. 스팅어를 몰면서 아내에게 칭찬 받을 수 있는 기능들이다.

정 : 그래서였나. <시카고 타자기>에 등장하는 스팅어의 모습은 생각보다 온순한 느낌이었다. 한세주라는 인물이 자유분방하고 때론 폭발적인 감정을 터트려주는 그런 인물이고 그래서 스팅어라는 자동차가 가진 이미지와 잘 어울린다는 건 분명하지만 실제로 드라마에 등장하는 스팅어 장면은 조금 심심했다. 동물병원 앞에서 여자친구인 전설(임수정)이 퇴근하고 나오기를 기다릴 때 세워두기에는 좀 아쉬운 차가 아닐까.
그나마 강렬하게 스팅어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장면이 없었던 건 아니다. 여자친구가 납치된 사실을 알고 한세주가 스팅어를 타고 질주하는 장면이 그렇다. 사랑하는 사람이 위기에 처했을 때 갖게 되는 그 위급함을 생각한다면 엄청난 순간 가속력을 보여주는 스팅어는 거기에 최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장면 역시 급박한 한세주의 모습만 집중되었을 뿐, 스팅어라는 자동차가 가신 특징들을 드라마를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낼 수 있는 기회를 제대로 활용되지 못한 아쉬움은 남는다.
강 : 맞다. 드라마를 보면서 자동차를 유독 자세히 보게 되는 내 경우에도 그 장면에 스팅어가 좀더 멋지게 기능을 발휘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했는가 하는 아쉬움이 남더라. 스팅어는 물론 드라이브 와이즈 시스템으로 온순하게 사용할 수 있지만 이렇게만 타라고 만든 차가 아니다. 억눌러 놓았던 본능을 당당하게 일깨우라고 부추기는 차다.

정 : 광고를 보니 그런 면들이 상당히 강조되어 있더라.
강 : 그렇다. 스팅어의 프리런칭 영상 광고는 ‘마성의 속삭임’이다. 에디프 피아프의 ‘라 비 앙 로즈’가 배경음악으로 흐르는 가운데, 절벽 끝에 서 있는 성장기의 소년이 두려움을 극복하고 시퍼런 물속으로 뛰어든다. 반항기 가득한 얼굴로 부모의 못마땅한 반응에 맞서며 록 기타에 심취하기도 한다. 거친 반항기는 그러나 점점 타협의 편리함에 젖어간다. 어느덧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사회라는 틀 안에 자리를 잡고, 안정된 일상에 안주한다. 그렇다고 ’도전과 열정’의 DNA가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다. 단지 수면 아래 잠자고 있을 뿐이다. 광고가 짧은 시간에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스팅어는 내면 깊이 움츠리고 있던 ‘도전과 열정’을 자극하고 있다.
정 : 그 광고에서 질주하는 스팅어의 엔진소리가 인상적이었다. 물론 차를 탈 때 정숙성을 강조하는 이들이 많지만 또 정반대로 그 폭발하는 엔진소리에 매력을 느끼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제 전기차의 시대가 온다고 하지만, 그 정숙성이 오히려 차의 매력을 떨어뜨려 심지어 인위적으로 그 소리를 내기도 한다고 하더라. 아마도 그게 아날로그의 매력이고 향수가 아닐까 싶다. 요즘 타자기에도 이런 비슷한 일들이 벌어지는데 조용한 타자기 놔두고 기계식 타자기를 찾아서 쓰려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스팅어의 그 엔진소리와 <시카고 타자기>의 그 기관총 쏘는 듯한 타자기 소리가 주는 향수는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었던 것 같다.

강 : 그래도 <시카고 타자기>라는 드라마가 보여준 스팅어의 모습은 그 갖고 있는 잠재력을 제대로 보여주지는 못한 것 같다.
정 : 그것은 이 드라마가 유아인이라는 배우를 활용한 것에서 남는 아쉬움과 유사하다. 사실 유아인은 다양한 얼굴을 가진 배우다. 그래서 대중들은 한 가지 얼굴이 아니라 새로운 얼굴을 원했다. 하지만 <시카고 타자기>는 현재의 한세주라는 인물을 통해 익숙한 모습의 유아인을 보여줬고, 일제강점기의 휘영이라는 인물을 통해 새로운 모습의 유아인을 보여줬다. 결국 절반은 잘 활용했지만 절반은 그렇지 못했다는 얘기다. 마치 강력한 제원과 능력에도 불구하고 스팅어를 ‘드라이브 와이즈’ 방식으로 사용하는데 머물렀다고나 할까. 스팅어도 마찬가지다. 인기작가가 집필하고 톱스타가 출연하는 드라마에 출시되기도 전인 고성능 신차를 떡하니 내놓았지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실패한 투자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PPL도 하나의 콘텐츠다. 앞으로 드라마제작자들이 자동차 같은 PPL을 선택할 때 그 특성을 제대로 파악해 캐릭터와 연결 짓는다면, 혹은 제조사들이 드라마 노출을 선택할 때 캐릭터와 구성까지 꼼꼼하게 살핀다면 훨씬 좋은 퀄리티의 작품과 그를 살려주면서 효과도 누릴 수 있는 PPL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epilogue. 스팅어에 어울리는 것, 유아인에 어울리는 것
‘언제부터 안정적인 삶이 나의 꿈이 되었는가. 나에게 어울리는 것보다 나이에 어울리는 것을 찾고 있지 않았는가.’ 스팅어의 광고에 삽입된 이 문구는 유아인이라는 배우에게도 제대로 들어맞는 문구다. 그는 안정적인 스타의 길을 가기보다는 험난할 수 있는 배우의 길을 걸었다. 그 나이에 어울리는 청춘의 아이돌에 머물기보다는 그에게 어울리는 다양한 청춘군상의 면면들로 자신을 확장시켰다. 아마도 스팅어가 꿈꾸는 것은 안정보다는 도전이고, 순응보다는 일탈일 것이다. 그 도발에서 자신에게 어울리는 것을 찾을 수 있을 것이므로. 그런 점에서 보면 <시카고 타자기>는 유아인과 스팅어가 가진 잠재력을 절반도 보여주지 못한 셈이다.
스팅어가 자극하고 있는 건 그래서 어쩌면 아직도 자신의 잠재력을 없는 것처럼 여기며 살아가는 우리들의 ‘절반 정도’를 사는 삶이 아닐까. 하지만 광고가 보여주듯 벼랑에서 뛰어내렸던 그 두려움과 설렘이 교차하던 순간과, 어른들에게는 그저 시끄러운 소음처럼 들렸던 기타연주 소리가 자신에게는 엔진소리처럼 두근대는 가슴의 소리였던 그 순간들을 우리는 기억한다. ‘당신은 원래 가슴 뛰던 사람이었습니다.’ 그 한 마디가 깨우는 그 순간들의 설렘을.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 x 자동차전문기자 강희수
강희수·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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