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좀 즐길 줄 아는 남자를 위한 선물, 스팅어
스팅어, 정통 후륜구동 GT의 맛을 살리다
21세기에 들어오면서 자동차는 그 의미가 예전과는 바뀐 부분이 많다. 좋게 얘기하면 상향평준화이며, 나쁘게 얘기하면 공산품으로의 전락이다. 그렇기 때문에 21세기에 오면서 각 자동차 메이커들은 더욱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으며 그동안의 행보와는 다른 무엇인가를 찾아내기도 한다. 기아자동차가 그렇다. 기술의 기아, 열정을 가진 엔지니어들이 만드는 자동차라는 이미지가 있었지만 이미 오래전 얘기고 이제는 국내 시장에서 만년 2인자로 이미지가 굳어졌다. 그런데 기아자동차가 달라졌다. K 모델명을 사용하지 않는 스팅어를 공개하면서 말이다.
프로젝트명 CK로 처음 알려지기 시작한 스팅어는 올해 초 서울모터쇼에서 베일을 벗었다. 기아자동차 최초의 후륜 스포츠 모델이자 GT 컨셉트를 내세운 스팅어는 공개 전부터 여러 가지 소문들을 몰고 다녔다. 트윈터보 엔진의 화끈한 동력 성능에 미끈한 패스트백 디자인이 공개 되었을 때는 늘 그렇듯 호불호가 엇갈리기도 했지만 스팅어의 성능에 대해서는 상당히 높은 평가가 뒤따르고 있다. 물론 소문만 많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이런저런 소문만큼 실차가 공개되었을 때 실망감도 많았기 때문이다. 스팅어의 시승기는 이미 여러 매체를 통해 소개됐다. 대부분 디자인과 동력 성능에 관한 내용인데 운 좋게도 소문의 실체를 서킷에서 확인할 수 있는 아주 귀한 기회를 얻었다. 이제부터 시작되는 내용은 일반도로에서 시승기가 아닌 가혹한 서킷에서 스팅어를 만난 내용이다.

◆ 스포츠 모델도 분류가 있다!
서킷에서 만난 스팅어의 모습은 상당히 강렬했다. 시승을 위해 준비된 스팅어는 각각 빨강(하이크로마 레드)과 검정(오로라 블랙펄), 흰색(스노우 화이트펄) 3가지로 가솔린 2.0 GDI 터보(255마력) 한 대와 가솔린 3.3 GDI 트윈터보(370마력)이다. 3대 모두 후륜구동 사양이며 3.3 모델은 최고 사양인 GT이다. 공격적인 마스크와 미끈하게 떨어지는 루프라인, 큼직한 휠이며 탄탄하게 자세가 잘 잡혔다. 전체적인 라인은 간결하면서도 매끈하며 쓸데없는 군더더기를 덜어내 단순한 느낌이 강하다. 무엇보다 스팅어에 적용된 색상은 서킷에 매우 잘 어울리고 검은 아스팔트에서 묘한 느낌을 만들어 낸다.
실내 디자인은 최근 기아자동차의 디자인 중에 가장 화려하고 도전적이다. 큼직큼직한 은색의 버튼이며, 스포츠 감성을 강조한 원형 송풍구, 탄탄하게 몸을 지지해주는 시트까지 요소요소에 특징을 잘 살렸다. 그렇다고 스팅어가 달리기 성능에만 치중한 것은 아니다. 꼼꼼한 마무리와 다양한 편의 장비를 갖췄으며, 안락한 뒷좌석까지 챙겼다. 지름이 작은 D 컷 스티어링 휠의 가죽 마무리도 촉감이 좋으며 운전자의 몸을 단단히 지지해주는 세미 버킷 타입 시트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정도만 봐도 기아자동차가 스팅어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아주 간단하게 알 수 있다. 바로 운전자 중심의 컨셉트라는 점이다.
스팅어의 최고 사양은 GT이다. 그랜드 투어링의 약자인 GT는 일반적으로 스포츠카와 의미가 다르다. 스포츠카는 보통 모터스포츠를 비롯한 레이스에 초점을 두지만 GT는 말 그대로 장거리 여행에 적합한 안락하고 편안하며, 넉넉한 출력을 가진 차를 뜻한다. 그 동안 국내에는 소수의 국산 스포츠카와 GT 컨셉트를 가진 차들이 있었지만 살짝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 반면 스팅어에 적용된 GT 컨셉트는 이런 부분을 충분히 커버할 정도로 구석구석을 다듬었다.

◆ 정통 후륜구동 GT의 맛을 살리다!
우선 2.0 터보 모델과 3.3 트윈터보 모델은 출력 차이가 100마력이 넘는다. 같은 섀시를 사용한다고 해도 완성도나 펀치력은 3.3 트윈터보가 한 수 위에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두 모델은 용도나 운전 방식이 판이하게 다르다. 출력이 낮은 2.0 모델은 엔진을 끝까지 몰아붙여 싱글 터빈 특유의 고회전 드라이빙에 적합하고 3.3 트윈터보는 비교적 어느 영역대나 치고 나가는 맛이 살아있다. 엔진 선택은 개인 취향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어떤 부분이 더 이익이고 좋다고 딱 부러지게 이야기할 수 없다.
그러나 두 엔진을 떠받치고 있는 섀시를 꼼꼼하게 뜯어보고 급가속과 급코너링이 반복되는 서킷에서 매우 유연하고 정밀하게 움직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승 코스는 코리아 인터내셔널 서킷의 F1 코스였다. 아쉽게도 가장 높은 속력이 나오는 메인스트레이트의 직선 구간은 사용할 수 없었지만 3대의 차를 번갈아 타며 스팅어가 추구하는 바를 알아볼 수 있었다.
3.3 GT는 전체적인 주행 성능의 약 20%를 타이어가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GT에 적용된 파일럿 스포츠4는 일반도로용 UHP 타이어 중에서도 고성능에 속한다. 그러나 좋은 타이어를 선택했다고 차의 움직임이 정밀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나머지 80%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서스펜션과 보디, 섀시의 각 부분이 제대로 조율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타이어를 사용한다고 해도 제 성능을 낼 수 없다.

스팅어는 이 부분을 제대로 파악하고 출력보다 정밀한 섀시 세팅에 신경 썼다. 고속 코너와 중저속 코너, 역방향 뱅크가 혼합된 영암 F1 서킷에서 스팅어의 움직임은 매우 안정적이고 자세가 흐트러져도 금방 원래 자리를 찾는다. 서스펜션의 스트로크나 스프링의 움직임, 조향 변화에 따른 차체 움직임이 부드럽고 반응이 즉각적이다. 그렇다고 스팅어가 성능에만 집중한 스포츠카와 같은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기록 단축을 위해 많은 부분을 포기하는 스포츠카와 달리 GT 컨셉트의 스팅어는 운전자가 가혹하게 다룬다고 거칠어지거나 날카로워지지는 않는다.
드라이브 모드는 스마트, 에코, 컴포트, 스포츠, 커스텀 등 5가지가 제공된다. 각 모드의 차이점은 주행 상황에 따라 변속 시점과 스티어링 휠의 무게, 서스펜션의 감쇄력이 변한다. 보통은 컴포트에 두는 경우가 많지만 스마트 기능은 커스텀을 제외한 4가지 모드가 주행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선택되는 것이 특징이다. 커스텀은 사용자의 취향에 받게 각 항목을 설정할 수 있다.

가속감은 터보차 특유의 펀치력이 조금 아쉬운 부분이다. 3.3 GT의 경우 350마력이 넘는 엔진은 차체를 안정적으로 움직이지만 터보라고 이야기 하지 않으면 대배기량 자연흡기 엔진으로 생각할 만큼 부드럽고 고른 토크 성향을 보인다. 터보랙이 거의 없으며 낮은 rpm부터 활성화되는 터빈은 급격한 변화가 없고 어느 상황에서나 꾸준하고 은근하게 출력을 밀어낸다. 엔진과 짝을 이루는 8단 변속기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특성이 마니아들에게는 조금 심심할지 몰라도 일반적인 소비자나 스팅어의 주 소비층의 성향을 고려하면 여러모로 편하고 다루기 쉬운 부분이다.
고속 영역에서도 차체의 움직임은 매우 안정적이다. 급격하게 스티어링 휠을 조작해도 네 바퀴는 단단하게 노면을 붙잡고 있으며 앞쪽과 뒤쪽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느낄 수 있다. 코너에서 액셀러레이터 조작을 급하게 하면 뒤쪽이 미끄러지는 슬라이드도 자연스럽게 즐길 수 있으며 안정장비가 개입되는 시점이 빨라 빠르게 자세를 잡을 수 있다.

스팅어를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남자들을 위한 정통 GT’라고 할 수 있다. 정장을 차려입는 데일리카로 써도 손색이 없으며 달리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푸는데 익숙한 남자들의 ‘소심한 일탈’에 좋은 동반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여러모로 스팅어는 기아자동차가 공을 들인 흔적이 가득하다. 별도의 엠블럼을 사용하는 최초의 모델이기도 하도 GT의 정통성에 최대한 근접한 컨셉트가 그대로 녹아있다. 최근 자동차 시장의 트렌드가 집약된 다양한 편의 장비를 비롯해 여기에 자동차가 가지고 있는 본능을 불어 넣었다고 할 수 있다.
여러 번 강조하지만 스팅어는 절대 레이스를 위해 태어난 스포츠카가 아니다. 중형 세단보다 큰 보디 사이즈에 번거로운 수동변속기는 거추장스러울 뿐이고 기록 단축을 위해 편의성을 희생할 필요도 없다. 다만 안락하고 빠르고, 정밀하게 세팅된 섀시는 운전자의 의도에 따라 스포츠카 감성을 점잖게 사용할 준비를 할 뿐이다. GT가 다분히 어른스럽고 적절하게 즐길 줄 아는 사람들에게 적합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스팅어는 이런 컨셉트에 충실한 차라고 할 수 있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황욱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