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원인에도 안타깝기 그지없는 자동차 상품 기획
그 멀고도 험난한 길에 대해서(2)

[이동희의 자동차 잡학(雜學)] 상품 기획자 입장에서 본인이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차는 자식과도 같다. 온갖 고민과 다른 부서와의 협력 혹은 조율을 통해 세상에 내놓은 차가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판매에도 성공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이 없다. 지난 칼럼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상품 기획은 시장에 대한 예측과 다양한 숫자부터 시작한다. 종류와 가격에 상관없이 자동차도 결국 판매할 물건이기 때문에 수익 높은 차를 만드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인 것은 맞다. 어찌 보면 회사라는 관점에서 낮은 비용을 들여 최대의 수익을 내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지난 칼럼에서 이야기했던 현대자동차 코나의 경우는, 이미 쌍용자동차 티볼리라는 뚜렷한 시장 지배자 및 목표가 있고, 여기에 더해 같은 그룹사인 기아자동차가 스토닉이라는 동급 모델을 준비하면서 코나와는 조금 다르게 시장에 접근할 수 있었기에 마음이 한결 편했을 것이다. 더 낮은 가격은 물론 다른 디자인으로 선택의 폭을 넓혔다. 위쪽에서는 코나가, 아래쪽에서는 스토닉의 협공을 받는 티볼리의 대응이 궁금할 따름이다.



특히 상품 기획 중에서 가장 힘든 것이 바로 가격을 정하는 일이다. 여기에도 많은 변수가 있다. 동급 세그먼트의 경쟁차들과 비교할 때 성능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갖췄어도 실패하는 경우가 생긴다. 가장 큰 원인은 높은 가격이다. 그렇지만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소비자가 가격표에 붙어 있는 그 값을 받아들이고 구입을 결정하는 과정은 좀 더 복잡하다. 즉 그 소비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구매동기에 맞춰 지불할 금액이 맞느냐가 핵심이다.

흔히 말하는 ‘가성비’와는 다른 개념인데 가격표에 상대적으로 높은 숫자가 적혀있더라도 설득이 되느냐의 문제다. 예를 들어 최근 자동차 선택에서 큰 역할을 하는 디자인이 대표적이다. 자동차의 성능과 안전 장비 등에서 예전처럼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부분은 돈과는 크게 상관이 없다. 마음에 드는 디자인이라면 어느 정도 높은 값도 충분히 지불할 의사가 있는 것이 요즘 소비자들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얼마나 정확하게 소비자의 생각, 그러니까 지불 가능 금액의 ‘한계’를 잘 파악했느냐다. 이걸 넘어서는 순간 그 차의 평판이 나빠지는 것은 물론 판매도 급감한다.



대표적이라고 하긴 그렇지만 가장 안타까운 차는 쉐보레 크루즈다. 올해 1월 런칭한 이래 6월말까지 6,265대가 팔렸다. 본격적인 출고가 3월부터였던 것을 감안해 3월~6월까지 넉 달만 따진 평균이 1,560대 수준으로 같은 4개월 동안 2만9,587대를 팔아 평균이 7,300대인 아반떼와 비교했을 때 21% 수준이다. 같은 기간 동안 중형 세단 1등인 쏘나타가 누적 3만5,098대, 평균 8,500여대를 팔았고, 말리부가 누적 1만2,904대/평균 3,200대로 쏘나타 대비해 36.7% 비율인 것과 비교하면 더욱이나 크루즈의 판매가 안타깝다. 더욱이나 중형차 시장은 르노삼성의 SM6라는 강력한 경쟁자와 셋이 경쟁하고 있지만, 준중형에는 사실상 크루즈와 아반떼가 맞붙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더 아쉬운 숫자다.

크루즈는 무엇보다 현대 아반떼라는 동급 시장의 지배자가 있는 시장에 나온 새 차였다. 위에 언급한 것처럼 강력한 경쟁자가 있다면 이를 철저히 분석해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연구했어야 한다. 아반떼는 과거 전체 승용차 중 1위에 오른 때도 있었고, 최근 판매가 상대적으로 줄었지만 아직도 3위를 지키고 있다.



아반떼는 2015년 9월에 새 차가 나오면서 섀시를 포함해 많은 부분이 좋아진데다 무엇보다도 넓은 선택의 폭이 가장 큰 장점이다. 1,420만원에서 시작하는 엔트리 모델에도 7개의 에어백과 블루투스 핸즈프리, 헤드라이트 에스코트 기능 등을 기본으로 갖췄고 바로 위급인 밸류 플러스 모델은 1,690만원에 자동변속기와 후측방 경보(BSD), 버튼 시동 스마트키, 스마트 트렁크, 후방 주차 보조 시스템 등 소비자 선호도가 높은 옵션을 더했다. 게다가 엔진도 1.6 자연흡기 휘발유부터 휘발유 터보, 디젤, LPG까지 4가지를 고를 수 있는데 이는 동급에서 유일하다.

물론 이렇게 다양한 등급으로 상품을 구성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생산 과정의 복잡성에 따른 비용을 판매량으로 뒷받침할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다. 팔릴 수 있으니 전략적으로 넓게 모델과 옵션을 구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스포츠 주행을 위한 최상위 모델부터 렌터카나 회사의 업무용으로 쓸 수 있는 기본형까지 1,420만원부터 2,460만원까지 고를 수 있다. 물론 기아차 K3가 거의 비슷한 옵션으로 1,395만원부터 시작하지만 브랜드를 생각할 때 아반떼를 버리고 K3로 옮겨갈만한 차이는 아니다.



이 기준으로 크루즈를 보면 어떨까. 우선 파워트레인을 비롯한 가격대별 모델의 선택 폭 자체가 지나치게 좁다. 특히 기본형의 높은 가격이 가장 문제가 많이 되는데, 이는 자연흡기 엔진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격이 높은 1.4T 엔진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파워트레인 구성을 단순화시키면 생산 관리를 포함해 서비스용 부품의 유통과 관리까지 많은 부분에서 비용을 아낄 수 있지만, 실제로 크루즈에는 효과가 별로 없다. 1.4T 엔진에 포함된 스톱스타트 시스템은 경쟁 모델에는 없는 동급 유일한 장비지만, 투입된 비용 대비해 고객이 느끼는 혜택이 크지 않은 점이 문제다.

게다가 크루즈의 기본이 된 D2XX 아키텍쳐는 향후 GM이 다양한 소형차 등에 활용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것이다. 덕분에 안정감 있는 섀시와 전체적인 주행성능의 균형감이 큰 장점이다. 하지만 글로벌 시장을 위해 높은 목표를 두고 개발되어 기본적으로 붙는 부품들의 사양도 꽤 높다. 공통으로 사용되는 R-EPS 같은 파워스티어링이 대표적인데 경쟁 모델이 컬럼식 전기 모터를 쓰는 것과 비교할 때 당연히 부품 값이나 조립 비용이 올라가고, 결국 기본적으로 높은 차 값이 책정될 수밖에 없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크루즈는 사실상 해외 수출 물량이 많지 않아 전체 생산 대수를 늘려 단가를 낮추는 것도 어렵다. 즉 우리나라 단독 사양으로 만들어진 차는 일정 수준 이상의 판매가 되지 않는다면 당연히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결국 대당 예상 수익을 낮추거나 마케팅 비용을 사용해서라도 실제 고객들이 납득할만한 수준으로 가격을 낮추게 되는데, 시장의 반응을 보고 움직였을 경우에는 이미 때를 놓친 경우가 많다. 크루즈는 판매를 시작한 3월에 한번 2,147대를 팔았을 뿐 이후 월 평균 1,300여대 수준이 팔려 2012년에 데뷔해 내년에 모델 체인지를 앞두고 있는 K3의 평균 2,300여대에도 한참 못 미치는 초라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소비자와 시장을 읽지 못해 벌어진 참사는 생각보다 많이 생긴다. 국내에 야심차게 런칭 했던 피아트 브랜드와 500 모델이 그랬고 꼼꼼하고 폭 넓은 선택이 가능한 현대차에서도 i30와 아슬란 등이 대표적인 실패 사례다. 이렇게 끊이지 않고 반복되는 흑역사는 물론 해외 본사의 가격 압박일 수도, 타겟이 되는 고객과 시장을 잘못 파악한 담당자의 실수 때문일 수도 있다. 가격 책정에 실패했다고 모두가 나쁜 상품일리는 없다.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는 속담처럼 특히나 상품 기획을 했던 입장에서는 모든 차가 사랑스러우면서도 안타깝기 마련이다. 실패를 거울삼아 빠르게 해결책을 내놓아 좋은 차가 시장에 많이 소개되기를 바랄 뿐이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이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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