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 본 사람만 안다는 전기차의 놀라운 코너링 성능

최신형 전기차는 놀라울 정도로 우수한 주행 성능을 실현한다. 게다가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을 고려할 때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김태영의 테크 드라이빙] “그 전기차는 달리기 성능이 어때요? 코너에서 잘 달려요?” 최근 들어 이런 질문을 부쩍 많이 받는다. 전기자동차(EV)가 우리 주변에 그만큼 많아지고 있다는 증거다. 어쩌면 지금, 전기차의 운동 성능이 궁금한 것은 당연하다. 지난 100여 년 넘게 발전해온 내연기관 자동차가 완전히 새로운 형태로 바뀌는 시기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발전의 속도와 방향도 도드라진다. 전통적인 자동차 회사가 수십 년간 고민해온 문제를 전기차가 이미 해결해버린 부분도 있으니까 말이다.



일반적으로 내연기관 자동차에 필요한 부품은 3만여 개다. 하지만 전기차는 평균 1만여 개 수준에 그친다. 물론 복잡한 전선 뭉치와 냉각 시스템, 각종 제어 모듈을 고려할 때 절대 간단한 구조하고 볼 수 없다. 그런데도 모든 부분을 전기 장비로 제어하기에 물리적 구조는 내연기관 자동차에 비해 간단해 보인다.

기존의 내연기관 자동차는 엔진의 크기와 위치가 디자인 전체에 영향을 줬다. 가령 차 앞 머리에 엔진을 얹고 뒷바퀴로 굴릴 경우 자동차 전반에 걸쳐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동력 전달 기구가 필요했다. 엔진에서 변속기로, 다시 변속기에서 드라이브 샤프트가 뻗어 나와 자동차 하부를 가로지른다. 그럼 뒷바퀴 중심에서 좌우로 동력을 나눠줄 차동장치가 필요하다. 덩달아 뒷바퀴 축도 더 단단하게 보강할 필요가 있다. 배기가스 파이프와 머플러 소음기가 이 모든 구조물을 요리조리 피해서 장착된다. 결과적으로 이런 모든 부품이 실릴 공간이 필요하고 그만큼 차는 무거워지고 실내 공간은 손해를 본다.

차의 특정한 주행 성격을 강조하기 위해 구조적으로 희생할 부분이 그만큼 많았다. 반면 전기차는 이런 희생을 하지 않아도 된다. 바퀴를 구동하는 모터는 배터리와 연결이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성인 팔뚝만 한 전선 뭉치로 두 유닛이 연결되면 끝이다.



전기차의 구조적 장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자동차의 무게 중심을 낮추는데도 탁월하다. 2000년대 초에 등장한 양산형 하이브리드나 전기차는 대부분 맛보기 형태에 그쳤다. 내연기관 엔진을 얹으려고 개발한 섀시에 전기장치만 더했기 때문이다. 엔진이 빠진 공간에 모터와 각종 전기 장치가 자리 잡았고, 라면 상자처럼 생긴 배터리는 뒷좌석 아래나 트렁크 밑에 깔렸다. 그러니 전기차의 장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것이 당연했다. 배터리의 용량은 제한적이었고 무게 배분에서도 이렇다 할 특징이 없었다. 하지만 요즘 등장하는 전기차는 다르다. 이들은 전기차 전용으로 만들어진 섀시를 바탕으로 완전히 새로운 구조를 쓴다.

전기차에서 가장 무거운 단일 부품은 배터리 팩이다. 쉐보레 볼트 EV에 달린 배터리의 무게는 450kg이다(무게 1620kg). 그보다 배터리 용량이 월등히 큰 테슬라 모델 S의 90D는 차 전체 무게(약 2200kg)의 거의 절반을 배터리가 차지한다. 하지만 이렇게 무거운 단일 부품을 쓰는데도 전기차의 운동 성능은 놀라울 정도로 안정적이다. 배터리를 차 하부에 배치해 무게 중심을 효과적으로 끌어내리기 때문이다. 내연기관 자동차 기술자들이 수십 년간 고민해오던 ‘낮은 무게 중심’을 최신형 전기차가 단번에 실현한 것이다. 기술의 발전에서 이뤄낸 플랫폼의 혁신이다.

배터리 팩을 중심으로 앞 혹은 뒤로 전기모터를 구성할 때의 장점은 또 있다. 앞뒤 바퀴에 걸리는 무게 배분도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있다. 배터리를 차 중심, 가장 아래에 배치하고 앞뒤로 전기 모터를 각각 1개씩 배치한 테슬라 모델 S 90D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 차는 앞뒤 무게 배분을 48:52를 실현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스포츠카의 환상적인 무게 배분(앞뒤 5:5)에 거의 근접한 수치다. 물론 BMW i3처럼 앞뒤 무게 배분을 5:5 수준으로 실현한 경우도 있다. 여기서 무게 배분이 좋다는 것은 주행 시 안정성을 의미한다. 타이어 접지력을 그만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고, 변화도 쉽게 예상할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최근 3년간 한국에 등장한 전기차를 대부분 타보고 내린 결론은 한결같았다. “전기차의 운동 성능은 언제나 예상보다 뛰어나다. 그리고 아직 더 큰 잠재력이 있다.”

BMW i3를 타고 코너에 처음 뛰어들었을 때, 타이어 사이즈가 의심됐다. 폭이 고작 175mm인 에코 타이어를 달고 이런 코너링 성능이 가능하다는 게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제법 단단하게 조여진 서스펜션, 차 모퉁이마다 달린 타이어 같은 구조 덕분에 코너에서 대단히 민첩하게 움직였다. 움직임에 군더더기가 없었다. 뒷바퀴가 차체를 밀고, 스티어링휠 방향을 따라 차가 자연스럽게 돌았다. 물론 타이어의 접지력의 한계는 낮았다. 그래도 일반적인 코너링에서 분명 아쉬움은 없었다.

구조적으론 비슷한 맥락이었지만, 반대로 테슬라 모델 S 90D의 코너링은 무척이나 화끈했다. 무게가 2톤을 훌쩍 넘는 차였지만 예상보다 민첩하게 앞머리가 회전했다. 코너링을 시작할 때 타이어는 노면을 꽉 쥐고 예상한 라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앞뒤에 차축에 달린 두 개의 전기모터가 네바퀴에 유연하게 동력을 보내며 접지력을 일정하게 유지했다.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안정적인 코너링이었다. 특히 좌우로 연속해서 회전하는 복합 코너에서 움직임이 좋았다. 내연기관을 얹은 본격 스포츠카의 그것과 비슷했다. 단지 약간 더 묵직하고, 모터 동력을 세밀하게 조절할 수 없다는 것만이 달랐다.

쉐보레 볼트 EV는 코너에서 또 다른 관점의 잠재력을 보여줬다. 전기차는 전기로 모든 시스템을 제어하기 때문에 내연기관 자동차에서 사용하던 일부 스포츠 드라이빙 테크닉을 쓸 수 없다. 예컨대 트레일 브레이킹(Trail Braking, 제동 구간을 줄이거나 코너에서 가속력 상실을 최소한으로 줄일 때 쓰는 레이싱 테크닉)처럼 오른발로 가속 페달을 밟은 상태에서 왼발로 브레이크 페달을 동시에 밟지 못한다. 두 페달을 동시에 밟으면 모터의 동력이 끊기고 회생 제동(속도를 줄이거나 탄력 주행 시 버려지는 운동 에너지를 배터리로 재충전하는 기술)이 멈추며 순간적으로 오류 상태가 된다. 실제로 계기반에 ‘두 페달을 밟음’이라는 오류 메시지가 뜨는 모델도 있다.

하지만 볼트 EV는 리젠 온 디맨드라는 특별한 회생 제동 시스템을 통해 순간적으로 트레일 브레이클 같은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리젠 온 디맨드는 브레이크 페달과 분리된 회생 제동 시스템이다. 스티어링 왼쪽 뒤에 달린 패들 버튼을 누르면 브레이크 페달과 상관없이 회생제동 충전치가 최대로 늘어난다. 동시에 엔진 브레이크를 잡은 듯이 차가 속도를 급하게 줄인다. 이 기능의 본래 목적은 전기차의 이질적인 주행 감각을 줄이고 필요할 때 회생 제동을 최대로 사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테스트해보니 코너링 도중 미세한 제동으로 차의 움직임을 안정시키고 싶을 때 유용했다. 오른발로 가속 페달을 밟은 상태에서 왼손으로 회생 제동을 순간적으로 개입시켜 마치 트레일 브레이킹 같은 효과를 발휘했다.



코너링이 가장 즐거웠던 차는 르노 트위지다. 이 작은 전기차는 사실 도심형 초소형 이동수단을 목표로 한다. 헬멧처럼 둥근 보디에 바퀴 네 개가 돌출된 구조를 가졌다. 무게를 줄이기 위해 상대적으로 용량이 작은 배터리 팩과 그에 걸맞은 모터를 달았다. 편의 장비도 거의 없다. 양쪽 문에는 창문도 달리지 않는다. 오디오나 에어컨도 빠져있다. 실내 중앙에 운전석과 스티어링이 덩그러니 자리할 뿐이다. 그런데도 차 중심에 앉아 코너의 중심을 향해 뛰어들 때 감각은 그 어떤 차보다 즐겁다. 이전엔 느껴보지 못한 즐거움이다. 차의 모서리마다 위치한 타이어와 낮은 무게 중심을 바탕으로 코너링을 안정적으로 구사한다. 얇은 타이어가 만드는 접지력의 한계는 명확하다. 그 한계 속도 안에서 코너를 돌 때 짜릿하다. 게다가 폭이 좁은 차체 덕분에 코너에서 라인을 자유자재로 이용할 수도 있다.

불과 5년 전엔 전기차가 이렇게 빠르고 안정적으로 코너링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런 진화는 현실이 됐다. 물론 전기차는 내연기관 자동차가 만들어내는 기계적 감성이나 운전의 즐거움을 구현할 수 없다.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전혀 다른 두 결과를 두고 좋고 나쁨을 비교하는 건 바보 같은 일이다. 최신의 전기차를 타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지금 시대의 전기차는 여전히 변화 중이다. 스스로 풀지 못한 숙제를 풀어가는 과정에 있다. 그런데도 우리가 이토록 흥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개인적으론 예상보다 빨리 구현된 수준급의 운동 성능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김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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