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멋과 낭만, 열정이 가득한 이탈리아 자동차 (Ⅶ)
이탈리안 럭셔리, 랠리의 황태자 란치아 (1)
[황욱익의 플랫아웃] 그리스어 알파벳을 차명으로 사용하는 란치아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럭셔리, 스포츠카 메이커이다. 피아트의 테스트 드라이버였던 빈센초 란치아와 그의 동료인 클라우디오 포골린이 1906년 토리노에 터를 잡고 설립한 란치아는 혁신적인 기술을 바탕으로 한 이탈리안 럭셔리카의 대표주자였다. 란치아는 1950년 최초의 V6 엔진을 상용화하는데 성공했으며, 각종 모터스포츠에서 눈부신 활약을 했지만 경영난을 극복하지 못하고 1955년에는 이탈리아의 사업가 카를로 페센티가 인수했다. 이후 1966년 피아트 그룹에 합병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탈리아의 대표 자동차 기업인 피아트가 이탈리아 최초의 대량 생산에 성공하며 자리를 잡는 동안 란치아는 고급차 시장에 주목했다. 럭셔리카와 상용차 시장에서 짭짤하게 재미를 본 란치아는 독립식 현가장치와 V형 엔진 개발에 많은 자금을 투자했으며, F1과 랠리를 통해 기술력을 확인해온 전형적인 자동차 메이커의 길을 걸어왔다. 하지만 너무 과도한 기술경쟁과 투자는 란치아의 경영을 악화 시켰으며 급기야는 초대 설립자 빈센초 란치아 이후 주인이 두 번이나 바뀌는 비운의 길을 걷기도 했다.

란치아의 첫 모델은 1908년 등장한 12HP(티포 51)이다. 당시만 해도 자동차 모델의 독립적인 이름이 거의 없던 시절이라 란치아 역시 엔진 출력으로 이름을 대신했다. 700kg의 공차 중량, 28마력을 내는 직렬 4기통 2.5ℓ 엔진과 4단 변속기를 갖춘 12HP는 이후 알파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1913년 란치아가 발표한 쎄타는 유럽 표준 전기 시스템을 갖췄으며, 1922년에 발표한 람다는 란치아 최초의 모노코크 보디 모델이었다. 1948년에는 세계최초의 5단 변속기를 선보였고, 1950년 발표한 아우렐리아는 최초의 V6 엔진을 탑재한 모델이다. 란치아가 혁신적이고 새로운 기술을 선보일 수 있었던 요인에는 기계공학에 관심이 많았던 설립자 빈센초 란치아의 철학이 반영된 부분이 크다.

란치아는 승용차 뿐 아니라 버스와 중장비 분야에서도 큰 수익을 올렸다. 세계 1차 대전과 2차 대전 때는 이탈리아군에 트럭을 공급하며 피아트와 함께 이탈리아 상용차 시장을 이끄는 역할을 했다.
란치아 하면 모터스포츠를 빼놓을 수 없다. 최초의 모델인 12HP는 양산형보다 레이스용으로 개조된 버전이 훨씬 인기가 많았으며 빈센초 란치아의 사망 후 회사를 이어받은 아들 지안니 란치아는 F1 경주차 개발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란치아의 첫 F1 경주차는 1954년에 선보인 D50A로 260마력 V8 엔진을 사용했다. 비토리오 야노가 디자인한 D50A는 총 6대가 만들어졌으며, 이중 2대가 남아있다.

란치아의 황금기는 1970년부터 1990년대까지 이어졌다. V4 엔진을 탑재한 풀비아가 1972년 인터내셔널 랠리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이후 1974년부터 1976년까지 스트라토스 HF가 3년 연속 매뉴팩처러 챔피언을 차지했다. 드라이버 챔피언십이 신설된 1977년에는 스트라토스 HF로 출전한 산드로 WRC 역사상 최초의 챔피언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서킷 레이스에서는 몬테카를로 터보가 1979년부터 1981년까지 활동 했고 그룹6의 LC1은 그룹C의 LC2에게 자리를 물려주었다.
랠리와 서킷 레이스에서 성공은 란치아의 소형차와 럭셔리카, 스포츠 쿠페 등의 판매량을 끌어 올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풀비아의 후속작인 베타, 2000 쿠페와 베타, 감마, 베타 몬테카를로 등 스포츠성능을 강조한 란치아의 차들은 그들의 이미지를 탄탄하게 만들었다.

1993년을 마지막으로 란치아는 모든 모터스포츠 분야에서 공식 철수한다. 그 동안 모터스포츠에 투자하며 앞만 보고 달려온 란치아의 경영난에 빨간불이 켜졌기 때문이다. 란치아는 생산라인을 대폭 줄이고 MPV와 소형차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Y와 카파, 제타 같은 대중적인 차들이 란치아의 볼륨 모델이 되면서 그동안 란치아가 가지고 있던 이미지도 조금씩 바라기 시작했다.
2000년대 들어오면서 란치아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카파의 후속작인 테시스를 2002년 발표했지만 큰 재미를 보지 못했고 MPV 시장에서도 생명력이 길었던 모델을 찾기 힘들 정도였다. 전통적인 인기 모델이었던 델타로 반등을 노렸으나 이 역시도 실패했고 2010년에 들어서면서 란치아는 크라이슬러 그룹의 유럽 버전을 생산하는 회사로 전락한다. 독자 모델은 입실론뿐이었고 크라이슬러 300C와 200의 모습으로 등장한 테마Ⅱ와 플라비아Ⅱ는 란치아팬들에게 실망감을 안겨 주었다. 한때는 모터스포츠와 자동차 기술 분야에서 맹위를 떨치던 란치아는 현재 2000년대 이후 급변하는 자동차 시장의 상황에 대처가 늦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부에 계속
자동차 칼럼니스트 황욱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