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민희의 드라이브 스토리] 1980~1990년대 일본의 자동차 회사들은 저마다 개성 넘치는 스포츠카로 세상에 어필했습니다. 순식간의 성공은 아니었습니다. 이전부터 계속 도전하며 성공과 실패를 겪었고, 이를 발판 삼아 계속 스포츠카를 만들었기에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그 중 하나인 닛산의 ‘Z’를 소개합니다.

지금은 르노와 함께 세계 5위의 자동차 제조사에 오른 닛산이지만, 1960년대에는 그저 작은 회사에 불과했다. 그래서 닛산은 이목을 끌 스포츠카를 원했다. 지금의 GT-R이 갖는 위상처럼 브랜드 전체의 이미지를 끌어올릴 대표적인 모델이 필요했다. 그래서 닛산은 완전 신형 스포츠카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당시 닛산 미국의 사장은 카타야마 유타카. 그는 CEO이자 자동차 마니아였다. 그는 젊은이들도 살 수 있는 적당한 가격의 스포츠카를 원했다. 젊은이들 사로잡으려면 무엇보다 멋지고 저렴해야했다. 따라서 다른 닛산 자동차들과 부품을 같이 써야했다. 명분도 있었다. 일본 시장에서는 소형 로드스터인 페어레이디의 교체 시기가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뜻을 같이하는 이들을 모아 새로운 스포츠카 만들기에 몰두했다. 콘셉트는 ‘자동차 마니아를 위한 차’였다. 브랜드 이미지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아름다운 디자인, 뛰어난 성능, 일본차에 기대하는 내구성과 저렴한 가격 모두 충족해야 했기에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1969년, 첫 결과물이 등장했다. 처음에는 일본에서 판매를 시작했다. 일본에서는 기존 모델인 페어레이디를 계승하는 의미로 알파벳 ‘Z’를 더해, ‘페어레이디 Z’라는 이름 붙여 팔았다. 1970년에는 미국 수출을 시작했다. 미국에는 완전 신형 모델로 어필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닷선 240Z’라는 이름을 붙여 판매했다. 합리적인 가격의 스포츠카로 지지층을 모았다.

240Z는 직렬 6기통 2.4L 엔진에 수동 4단 변속기를 맞물려 뒷바퀴를 굴렸다. 옵션으로 자동 3단 변속기를 제공했다. 당시 일본 시장에서는 성능 뛰어난 자동차로 주목받았다. 기계식 연료펌프와 카뷰레터만으로 최고출력 151마력, 최고시속 201㎞를 냈다. 내구성 검증을 위해 1973년 열린 21번째 동아프리카 사파리 랠리에 참가해 우승도 거뒀다.
이후 닛산은 계속 신형 모델을 내놓으며 Z시리즈의 세대를 이어갔다. 현재 판매하는 모델은 6세대 모델. 40년이 넘는 세월동안 거듭 스포츠카를 만들어왔다는 점에서 전통을 구축했다고 평가하고 싶다. 물론 시대의 변화에 따라 Z시리즈의 방향성도 조금씩 변했다. 대표적인 것이 4세대 모델의 변화다.

4세대 모델은 1989년에 등장했다. 이름은 300ZX. 20년 만에 등장한 후속 모델은 전 세대 모델과 차원이 다른 만듦새를 자랑했다. 300ZX는 슈퍼컴퓨터의 캐드 프로그램을 활용해 디자인됐다. 지금이야 흔한 일이지만 당시에는 컴퓨터만으로 차를 설계한다는 것은 상당히 생소한 일이었다. 닛산의 자동차 만들기의 변화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300ZX는 크게 자연흡기형 엔진 얹은 모델과 트윈터보 엔진 얹은 모델 두 가지로 나뉜다. 자연흡기형 모델은 V6 3.0L 엔진에 DOHC와 VVT를 더해 222마력 냈고, 마니아들을 위한 트윈터보 모델은 300마력 넘겨 최고시속 250km를 냈다. 스포츠 성능을 대폭 강화한, 고급스러운 GT였다. 참고로 가수 서태지가 타는 것이 미국에서 포착되기도 했었다.

한편 1999년, 닛산은 르노의 지분 인수를 통해 르노-닛산 얼라이언스로 다시 태어났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재건을 위해 카를로스 곤 회장이 닛산을 찾았을 때만 하더라도 미래를 보장할 수 없었다. 하지만 카를로스 곤 회장은 Z를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약속했다. GT-R과 함께 닛산을 상징하는 요소로 Z가 차지하는 위상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약속대로 닛산은 2001년 디트로이트모터쇼에서 신형 Z 콘셉트를 공개하고, 2002년 5세대 모델인 350Z를 출시했다.
현재 국내에서도 팔리는 370Z는 2008년 등장한 6세대 모델이다. 5세대 모델의 디자인에 1세대 모델의 디자인적 특징을 더해 원점으로 돌아왔다는 평을 받고 있다. 최고출력 333마력의 V6 3.7L 엔진에 자동 7단 변속기 맞물려 뒷바퀴를 굴린다. 벌써 10년이 다 되어가는 모델이지만 여전히 매력적인 자태와 성능으로 마니아를 확보하고 있다.

닛산은 GT-R과 Z를 통해 전통을 쌓았다. 40년 넘게 하나의 이름을 붙여 만든 스포츠카는 분명한 개성을 갖는다. 이는 마니아들을 만들 뿐만 아니라 자사의 역사를 강조하는 열쇠이기도 하다. 그런 부분이 내심 부러워진다. 물론 우리의 자동차 만들기 역사가 짧은 부분은 있다. 앞으로 고성능 모델과 함께 계속 전통을 이어간다면 우리에게도 역사를 자랑하는 스포츠카들이 하나씩 늘어나지 않을까란 기대가 든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안민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