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형 그랜저(IG) vs <비밀의 숲> (1)
[강희수·정덕현의 스타car톡] 한때 그랜저는 부와 성공의 상징이었다. 단단한 외형에 중량감이 더해지면서 위압감마저 주던 차, 그랜저. 그래서 그랜저를 끌지 못하는 서민들에게 우스갯소리로 ‘그랜다이저’라고 불리기도 했던 차. 그랜저를 끈다는 것은 그래서 대한민국 사회에서 그만한 지위를 갖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그랜저의 이런 이미지는 아재들이나 할 법한 농담이 되어버렸다. 스포티해지고 세련되어 심지어 날렵하게까지 보이는 지금의 그랜저를 보며 과거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건 어딘지 구세대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최근 종영한 화제의 드라마 tvN <비밀의 숲>에 등장한 그랜저는 그래서 새삼스럽다. 이 드라마에 출연하는 검사들은 과거나 지금이나 그랜저를 타고 있지만 그 이미지가 너무나 달라 보여서다. <비밀의 숲>에 등장했던 그랜저를 통해 그 변화된 이미지가 의미하는 것에 대해 자동차 전문기자인 강희수와 대중문화 칼럼니스트인 정덕현이 수다를 나눴다.

강희수(이하 강) : 최근 종영한 <비밀의 숲>이라는 드라마가 엄청난 화제였다고 하던데.
정덕현(이하 정) : 물론 앞으로 하반기가 남아 있지만 드라마를 비평하는 입장에서 얘기하자면 올해의 드라마가 될 것 같다. 검찰 내부의 적폐청산을 소재로 범인을 추적하는 드라마로 이렇게 몰입도가 높은 드라마를 최근 본 적이 없다. 잠깐 놓치면 내용이 이해 안 될 정도로 밀도가 높아서 화장실도 제대로 못가고 드라마를 보곤 했다.
강 : 그런데 그 드라마에 그랜저가 PPL로 들어간 사실을 알고 있었나.
정 : 사실 최근 이 코너를 시작한 이후로 드라마에 나오는 차들을 유심히 보는 편인데 <비밀의 숲>에서 주인공인 조승우가 타고 다니는 차가 그랜저인 지 전혀 눈치를 못챘다. 나 같은 경우 그랜저하면 갖고 있는 이미지가 있는데, 그건 어딘지 부와 권력의 상징 같은 것이다. 그런데 <비밀의 숲>에서 조승우는 검사라고 해도 그런 인물이 아니다. 그가 타던 차가 그랜저였다는 걸 눈치 채지 못한 건 내 선입견 때문이었다.

강 : 바로 그 점이 흥미로웠다. 검사를 등장시키는 <비밀의 숲>에 그랜저가 들어간 게 우연적인 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져서다. 아마도 주인공인 35세 젊은 검사 황시목(조승우)을 통해 ‘검사’와 ‘그랜저’라는 과거와는 달라진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던 모양이다.
정 : 어떤 점에서 그런가.
강 : 살아 움직이는 국가기관인 대한민국 검사는 예전에도 ‘그랜저’를 탔고 지금도 그랜저를 타지만 황시목이 타는 그랜저는 달라졌기 때문이다. 한때 그랜저가 달고 다녔던 ‘부와 권력, 그리고 성공의 상징’이 이제는 아니라는 점을 PPL 담당자는 강조하고 싶어 했다. 그랜저가 부와 권력의 상징이던 시절, 그랜저를 타는 검사는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릴 정도의 권력을 가진 존재였다. 그러나 조승우가 연기한 황시목 검사는 이성과 합리를 원칙으로 하는 전문직 종사자다. PPL 담당자는 그랜저가 30대 중반의 전문직 종사자가 탈 수 있는 ‘오빠차’라는 인식을 심고 싶어 했다.

정 : <비밀의 숲>이라는 드라마는 검사들을 좀 달리 그려낸 작품이기도 하다. 지금도 여전히 검사라고 하면 대단한 권력을 가진 존재로 많이 그려지곤 하는데, <비밀의 숲>에는 물론 그런 인물들도 있지만 황시목 같은 오로지 진실을 밝히기 위해 흔들리지 않고 나가는 인물도 그려냈다. 전혀 권위라는 걸 내세우지 않는 인물이다. 그러니 그 차가 과거 권위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그랜저라는 사실을 까마득히 모를 수밖에 없었다. 그랜저가 과거의 이미지를 깨려는 이유가 있나.
강 : 대단했던 명성의 그랜저는 그 보다 더 크고 화려한 상위 모델들이 나오면서 점차 대중화 됐다. 최상위 급의 ‘에쿠스’에 밀렸고, 지금은 프리미엄 브랜드로 스핀오프 한 ‘제네시스’ 보다도 더 보급형이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랜저는 여전히 ‘보급형’에서는 최상위지만(아슬란이 있기는 하지만 사실상 존재가 무의미하다).

정 : 하긴 요즘은 더 대형의 외제차들도 일상적으로 도로에서 볼 수 있는 시대니 그랜저가 과거의 이미지를 고수한다는 것 자체가 어딘지 맞지 않는 일처럼 느껴지는 건 당연해 보인다.
강 : 황시목 검사가 타는 그랜저는 작년 11월에 나온, ‘그랜저’라는 이름의 6세대 모델이다. 첫 모델이 1986년에 등장했으니 30년 간이나 월급쟁이의 로망으로 구실을 했다. 6세대 그랜저, IG라는 개발명이 붙은 신형 그랜저는 디자인에서부터 ‘탈 권위’ ‘탈 근엄’을 외쳤다. 거대하고 웅장(Grandeur)해 보이는 인상 대신, 세련되고 스포티한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가만히 서 있는 모습만으로 권위를 인정받던 차에서, 역동적이면서도 안전하게 달리는 주행성이 강조됐다.

정 : 그랜저가 ‘탈 권위’ ‘탈 근엄’을 외쳤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비밀의 숲>이 보여주는 것도 어떤 면에서는 과거의 검찰이 가진 적폐를 청산하고 새로운 검찰로 거듭나는 것이었다. 구태의 이미지를 벗으려는 노력은 지금의 정권도 마찬가지인데, 그 결과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드라마와 현실은 다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어떤가. 그랜저는 이미지 변신을 통해 어떤 성과를 얻어냈나.
강 : 이전의 그랜저는 준대형 세단으로 올드한 이미지가 강했다. 그리고 이런 점들은 현대자동차가 한때 달라진 환경 속에서 전반적으로 어려움을 겪은 이유이기도 했다. 그랜저의 경우, 르노 삼성의 SM6나 한국GM의 말리부 같은 중형차들이 들어오면서 위기 상황을 맞이했었다. 물론 통상적으로 연식변경을 하면 매출이 오르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그랜저의 연식변경을 통한 이미지 쇄신은 그로 인해 현대차 전체의 분위기를 업시켰다는 점이 그 남다른 의미다. 사실 그랜저의 이런 이미지 변신을 통한 성공이 쏘나타의 연식변경에도 그대로 영향을 끼쳐 효과를 발휘한 면이 있다.

정 : <비밀의 숲>에서 황시목이라는 이름이 마치 그랜저와 동급 같은 느낌을 주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이 드라마는 비밀에 둘러싸인 검찰을 ‘비밀의 숲’이라고 상징하고, 그 비밀을 풀어나가는 인물로 ‘첫 번째 나무’라는 의미의 황시목이라는 인물을 세웠다. 결국 이 ‘첫 번째 나무’ 역할을 해주는 인물로 인해 검찰 전체가 어떤 변화의 기점을 마련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어떤가. 그렇게 보면 그랜저의 PPL이 상당히 남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2부에 계속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 x 자동차전문기자 강희수
강희수·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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