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불가결한 플랫폼 공유
플랫폼 수는 점점 없어져 어쩌면 각 브랜드마다 한두 개씩만 남게 될지도 모른다

예전 유럽으로 출장을 갔을 때 재미있는 광경을 본 적이 있다. 길거리에서 똑같이 생긴 자그마한 차 두 대가 있었는데 붙어있는 로고가 서로 달랐다. 하나는 시트로엥 로고를 달았고 다른 하나는 푸조였다. 자세히 살피니 그릴과 범퍼 형태가 약간 다른 것 같기도 했다. 뒷모습은 완전히 똑같았다. 이름을 보고서야 시트로엥 C1과 푸조 107이란 걸 알게 됐다. 두 차의 모습이 무섭도록 똑같은 가장 큰 이유는 플랫폼을 비롯한 대부분의 부품을 공유했기 때문이다.



◆ 도대체 플랫폼이 뭐야?

차체는 크게 뼈대 역할을 하는 플랫폼과 공간구조를 형성하는 보디로 나눌 수 있다. 이 중 플랫폼은 차를 만드는 데 있어 가장 기초가 되는 구조물이다. 건물을 지을 때 바닥공사를 하고 가장 먼저 철제 구조물을 올린 후 시멘트와 벽돌로 벽을 만들고 인테리어 공사를 하는 것처럼, 자동차는 가장 먼저 플랫폼이라는 구조물에 엔진과 변속기를 넣고 보디 패널을 올리거나 붙여서 차를 만든다. 하지만 자동차용 플랫폼은 건물용과는 다른 복잡한 엔지니어링이 들어간다. 바로 움직이는 물체의 근간을 이루는 뼈대이기 때문이다.

자동차의 목적은 인간을 운송하는 데 있다. 그래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안전인데, 자동차 안전에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이 플랫폼이다. 자동차가 충돌이나 전복됐을 때 플랫폼이 쉽게 찌그러지나 구부러지면 실내에 있는 탑승자들에게 치명적인 상해를 줄 수 있다. 따라서 플랫폼은 튼튼하고 단단하게 만들어야 하며 충돌 시 충격을 효과적으로 분산시키면서 탑승자를 보호해야 한다. 최근 여러 자동차 제조사들이 플랫폼에 초고장력강판 사용 비율을 높이는 가장 큰 이유도 이러한 안정성을 높이는 데 있다.



플랫폼은 충돌안전성 외에도 주행안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엔진, 변속기, 서스펜션 등 자동차의 가장 중요한 부품들이 모두 플랫폼에 결속되기 때문이다. 엔진 출력을 제대로 버텨줘야 하고 서스펜션이 제 역할을 다 할 수 있도록 구조를 지녀야 한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주행 중 차체가 흔들리거나 고속에서 주행안정성이 급격히 떨어지게 된다. 이러한 차들은 빨리 달리 수도 없거니와 유사시 긴급 회피 기동도 제대로 할 수 없다.

기아 모닝을 예로 들면, 현재 판매되는 모닝은 인장강도 60kg/㎟급 이상인 초고장력 강판을 경차 최대치인 44.3%로 확대 적용하면서 이전 모델보다 고속안정성이 높아졌을 뿐만 아니라 핸들링도 좋아졌다. 더불어 자동차 충돌 안전성도 획기적으로 높였다. 즉, 플랫폼은 안전과 주행성에 가장 큰 역할을 미치므로 자동차 개발에 있어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개발비용이 많이 든다는 말이기도 하다. 차종에 따라 수천억에서 조 단위까지 드는데, 신차 개발에서 가장 큰 비용이 들어가는 것이 플랫폼이다.



◆ 공유의 일반화가 뜻하는 것

개발비용이 많이 들어가면 자동차 판매가격도 높아진다는 뜻이다. 자동차 가격이 높아지면 소비자들의 경제적, 심리적 저항이 높아지면서 판매량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때문에 자동차 메이커들은 자동차 가격을 낮추기 위해 차 크기 별로 플랫폼을 통합해 개발비용을 낮춘다.

1990년부터 플랫폼 공유를 시작한 폭스바겐 그룹은 현재 플랫폼을 7개로 줄인 상태다. 폭스바겐 골프와 제타, 티구안, 아우디 A3, TT, 스코다 예티, 옥타비아, 세아트 텔로도까지 폭스바겐 그룹에서 생산되는 9개의 모델이 하나의 플랫폼을 쓴다. BMW 그룹도 플랫폼 공유에 적극적이다. BMW 2시리즈 액티브 투어러와 미니 클럽맨, BMW X1과 미니 컨트리맨이 플랫폼을 공유한다. 같은 그룹이 아닌 다른 브랜드와 플랫폼을 공유하는 경유도 있다. 얼마 전 세상에 선보인 벤츠 최초의 픽업트럭 X 클래스는 닛산 나바라 픽업트럭의 플랫폼을 사용한다. 내년 출시 예정인 토요타 수프라와 BMW Z5도 같은 플랫폼을 사용하면서 개발 비용을 줄였다.

현대, 기아차도 처음 합병했을 당시는 플랫폼이 27개나 됐다. 모든 차종이 각자의 플랫폼을 지닌 방식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플랫폼 개수가 앞바퀴굴림용 소, 중, 대형으로 나뉘었고 뒷바퀴 굴림용 중형, 대형 그리고 별도의 프레임 방식을 사용하는 기아 모하비까지 6개로 대폭 축소됐다.

플랫폼을 통합하거나 개수를 축소한다는 건 플랫폼 자체의 개발비용을 줄이는 것 외에도 여러 장점이 있다. 플랫폼을 같이 쓰면 동력계와 구동계 등 자동차의 기본 성능을 결정하는 핵심 부품 등 많은 부분을 공유할 수 있다는 말이다. 즉 대량 생산을 통해 부품 단가를 낮출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장점 덕분에 플랫폼 통합은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아주 일반화됐다.



◆ 과연 소비자에겐 어떤 이점이 있나?

앞서 말한 것처럼 생산단가가 낮아지면 판매가격도 낮출 수 있다. 예전처럼 자동차마다 플랫폼을 따로 생산하는 시스템이었다면 자동차 가격은 지금보다 훨씬 높았을 것이다. 더불어 자동차 종류도 지금처럼 많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판매량이 낮은 모델은 플랫폼 개발비용을 충당하기 어려웠을 것이 분명하고 새차를 개발함에도 플랫폼 개발 비용은 가장 큰 걸림돌이 됐을 테니까. 플랫폼 공유 덕분에 소비자들은 더욱 많은 모델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플랫폼 공유는 자동차 성능에서도 이점을 지닌다. 자동차 제조사는 애초 플랫폼을 개발할 때 해당 플랫폼을 사용하게 될 자동차 중에서 가장 높은 성능을 내는 차에 맞춰 개발을 진행한다. 예를 들면 폭스바겐 그룹의 MLB2 플랫폼은 폭스바겐 투아렉을 비롯해서 아우디 Q7, 포르쉐 카이엔, 벤틀리 벤테이가 등이 사용한다. 벤테이가에는 12기통 트윈터보 엔진이 들어가지만 Q7은 4기통과 6기통 엔진이 들어간다. 이 플랫폼은 600마력이나 되는 엔진의 힘을 모두 받아낼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하게 개발됐다는 뜻이니 Q7과 투아렉 오너들은 그만큼 고성능 플랫폼을 사용하게 되는 셈이다. 참고로 MLB2 플랫폼은 람보르기니가 준비 중인 SUV 우르스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도 이런 플랫폼 공유 사례는 많다. 쉐보레 크루즈와 하이브리드 차 볼트(VOLT)가 완전히 똑같은 플랫폼을 사용한다. 미국 시장에 판매되는 뷰익 베라노도 이 플랫폼을 사용한다. 르노삼성 QM6와 SM6도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의 CMF-CD 플랫폼을 사용한다. 닛산 캐시카이와 르노 꼴레오스도 이 플랫폼으로 만든 소형 SUV다. 기아 K3와 스포티지, 현대 아반떼와 투싼 등도 플랫폼 공유로 만들었다.

최근 출시한 기아의 소형 SUV 스토닉은 국내 디젤 SUV 중 유일한 1,800만 원대 가격에 판매한다. 스토닉이 ‘가성비’를 앞세워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이유도 플랫폼 통합이 가져온 혜택이다. 영업 20일 만에 누적판매량이 2,500대를 넘어서면서 예상치를 훨씬 웃도는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며칠 전 시승해보니 고속안정성이 높으면서 승차감도 좋고 소형 SUV 치고 핸들링도 뛰어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모두 플랫폼이 강하지 못했다면 불가했던 부분이다.

플랫폼 통합과 공유는 앞으로 더 많아질 것이 분명하다. 각 자동차 제조사들은 플랫폼 가짓수를 줄이기 위해 차체 크기를 쉽게 늘리고 줄일 수 있는 모듈 형식의 플랫폼을 내놓고 있다. 어쩌면 종례에는 미드십이나 리어엔진 등 특별한 구조의 차가 아니면 앞바퀴굴림과 뒷바퀴굴림 플랫폼 단 두 개만으로 모든 차를 생산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이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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