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르노가 100억씩 주고 삼성 브랜드 쓰는 건 사치다
[이진우의 불편한 진실] 지금 르노와 삼성은 서로가 몹시 불편하다. 올해 상반기 국내 자동차 산업은 뒷걸음질 쳤다. 현대차그룹을 비롯한 한국지엠, 쌍용 모두 지난해보다 판매량이 대폭 줄어들었다. 특히 한국지엠과 쌍용은 수익을 내지 못한 채 영업손실을 입었다. 반면 르노삼성은 국내 자동차 제조사 중 유일하게 내수·수출 모두 성장세를 기록했다. 어려운 시장 환경 속에서도 2년 연속 판매증가율을 기록한 것이다.

그런데 좀 더 깊이 들어가 보면 르노삼성의 지금 상황이 굉장히 안정적이라곤 말하기 힘들다. 상반기 르노삼성의 자동차 판매량은 4만7,000대 정도다. 월 8,000대를 팔지 못했다. 르노삼성 모든 모델의 판매량을 더해도 현대 그랜저 판매량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지난해 출시한 SM6와 QM6는 꾸준하게 잘 팔리고 있지만 이도 출시 초기에 비하면 판매량이 많이 빠졌다. 그 외 다른 모델들은 판매량이 많이 저조하다. 시장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제품 가짓수가 적은 것도 시장 경쟁력이 떨어지는 원인 중 하나다.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꾸준하게 판매량을 올린 것을 보면 르노삼성 임직원들의 노고가 눈에 선하다. 하지만 이렇게 계속 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일부 제품에만 판매량이 집중되는 현상은 장기적으로 보면 마이너스 요인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어려움이 오기 전에 지금이라도 구조적인 변화와 분위기 쇄신이 필요하다.

생각해보면 가장 확실한 분위기 쇄신은 삼성과의 브랜드 분리다. 르노 독자 브랜드로 참신한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으며, 삼성과의 이해관계를 따질 필요 없이 독자적으로 움직일 수 있으니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다. 사실 르노와 삼성의 브랜드 분리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그 실체가 불분명했었고 그럴만한 뚜렷한 이유도 없었기에 듣는 이 대부분은 뜬소문으로 치부됐다. 그런데 최근 들어 두 브랜드가 분리할 것이란 소식이 부쩍 많이 들린다.

지난해 말 삼성카드는 한국지엠 매장을 배경으로 자동차 온라인 전용 금융 서비스 TV 광고를 내보냈다. 삼성카드는 르노삼성의 지분의 2대 주주다. 자동차 매장을 배경으로 하는 TV 광고라면 르노삼성 매장에서 제작하는 게 당연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들은 쉐보레를 택했다. 르노삼성도 조금 이상한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일부 르노삼성 전시장에서 르노그룹의 자동차를 전시하는가 하면 르노삼성의 파란색이 아닌 르노 브랜드 대표 색상인 노란색으로 전시장을 바꾼 곳도 있었다. 르노삼성은 르노그룹의 대표적인 AS 프로그램인 ‘케어 2.0’을 국내에 도입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지난 1~2년 사이 르노와 삼성이 보인 몇몇 행보는 두 브랜드가 분리 절차에 들어간 게 아니냐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했다. 그도 그럴 것이 르노삼성의 지분은 르노그룹이 80.1퍼센트, 삼성카드가 19.9퍼센트로 나눠 가지고 있지만, 삼성은 실질적인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르노는 삼성 브랜드를 쓰고 있다는 이유로 매년 매출액의 0.8퍼센트(100억 원 내외)를 브랜드 사용료로 지불하고 있다. 르노 입장에선 불합리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삼성에 대한 반 국민정서도 르노와 삼성의 결별 이유로 꼽히기도 한다. 최순실 사태로 삼성은 브랜드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다. 더구나 삼성그룹의 실질적인 수장인 이재용 부회장은 구속된 상태다. 수익의 대부분을 국내 판매량에 의존하고 있는 르노삼성의 수익구조를 생각하면 삼성에 대한 국민들의 반정서는 르노삼성 브랜드에게까지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여러 정황상 르노가 삼성과 같이 가는 게 부담스러운 것으로 보인다.

삼성 입장에서도 장기적으로 보면 르노와 결별하는 게 이로울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1월 세계 최대 전장업체 하만을 인수하면서 본격적으로 자동차 전장사업에 뛰어들었다. 자동차 전장사업은 삼성의 새로운 동력사업이다. 그만큼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말인데, 르노에게만 삼성 브랜드를 내주는 건 전장사업 확장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배터리 사업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전기차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늘어날 텐데, 르노에게만 브랜드 사용권을 주는 건 아무래도 모양새가 좋지 않다.

르노의 삼성 브랜드 사용권은 2020년까지다. 하지만 지금 두 브랜드 사이의 관계를 보건데 앞으로 3년 동안 불편한 관계로 지내느니 조속히 지분관계를 말끔히 청산하고 결별하는 게 서로에게 나아 보인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이진우(모터트렌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