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민희의 드라이브 스토리] 오늘은 자동차와 모터사이클의 경계를 허문 메르세데스-벤츠의 콘셉트카 ‘F300 라이프 제트’를 소개합니다. 차체를 기울여 경쾌하게 달리는 독특한 모습으로 시선을 끌었습니다. 허나 대범한 디자인과 콘셉트 속에는 미래를 바라보고 준비한 치밀한 기술이 숨어있었습니다. 오늘의 이야기, 시작하겠습니다.

1997년 프랑크푸르트 국제 모터쇼에서 등장한 메르세데스-벤츠의 F300 ‘라이프 제트(Life Jet)’ 콘셉트는 자동차와 모터사이클의 교집합을 꿈꿨다. 디자인이 정말 특이하다. 개인용 제트기를 테마로 꾸민 디자인은 공기역학적으로 우수하지만 일반적인 자동차 모양이 아니다보니 생경하다. 뒷모습은 완전히 스쿠터를 닮았다.
실내도 개인용 제트기의 느낌이 물씬하다. 스티어링 휠과 오른쪽에 놓인 스위치 배열이 특히 그렇다. 스티어링 휠에는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관련 버튼을 달아 손 땔 일을 최대한 줄였다. 실내 구조는 앞에 1명, 뒤에 1명이 나란히 앉는 구조다. 앞으로 열리는 구조의 뒷문을 따로 달아 편하게 탈 수 있도록 만든 부분이 인상적이다.

메르세데스-벤츠는 F300 라이프 제트 콘셉트의 공개 당시 “안전하고 편안한 자동차에 모터사이클의 역동성을 하나로 묶었다”고 발표했다. 콘셉트카답게 신기한 디자인으로 주목을 끌었지만, 사실은 미래를 위한 실험작이나 다름없었다. 당시 준비하고 있던 신기술을 가득 담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부분이 코너에 맞춰 기울임을 스스로 조정하는 액티브 틸트 컨트롤(Active Tilt Control)이다. 주행 속도, 가속도, 운전자의 입력, 경사각 등의 다양한 상황을 계산해 마치 모터사이클처럼 최대 30°까지 차체를 기울인다. 이처럼 차체를 기울이며 달리기 위해서는 특수 타이어가 필요했기에 타이어 회사와도 손을 잡고 전용 타이어도 만들었다.

섀시는 알루미늄으로 만들었다. 무게는 89㎏에 불과하다. 경량화를 위해 다양한 소재 시험하며 무게 줄이기를 시도한 흔적이다. 지붕은 투명 플라스틱이다. 무게를 줄일뿐더러, 고리를 풀어 지붕을 벗겨내면 컨버터블로 만들 수 있도록 했다. 바람 맞으며 시원하게 달리는 모터사이클과 비슷하지 않을까 기대되는 부분이다.
지금은 코너링 라이트가 상당히 많은 자동차에 적용되어있다. 스티어링 휠을 꺾을 때면 안쪽까지 빛을 비추니 어두컴컴한 곳 달릴 때 상당히 편하다. 20년 전 등장한 F300 콘셉트에도 이 기능이 있었다. 액티브 틸트 컨트롤과 코너링 헤드램프 기술을 하나로 묶어 차체 기울기에 맞춰 불빛의 방향을 바꿨다.

첨단 기술 선보인 F300 콘셉트이지만 엔진은 강력하지 않았다. 오히려 평범한 엔진이라 더 인상적일까. A-클래스에 얹었던 최고출력 102마력의 직렬 4기통 1.6L 엔진 얹어 0→시속 100㎞ 가속 7.7초, 최고시속 211㎞를 기록했다. 연비는 독일 기준으로 18.8㎞/L였다. 가벼운 차체에 힘입은 결과였다.
메르세데스-벤츠는 F300 라이프 제트 콘셉트를 “컴퓨터로 완전히 설계한 연구용 자동차”라고 부른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이용해 주행 성능을 파악하는 등 성능 체크에 새로운 변화를 더했고, 또한 액티브 틸트 컨트롤 등은 안락한 주행을 위한 차체 자세제어 장치의 연구에도 도움이 됐다.

메르세데스-벤츠가 F300 콘셉트에서 통해 시험했던 ‘액티브 틸트 컨트롤’은 오늘날 S-클래스의 ‘매직 바디 컨트롤’을 완성하는데 영향을 끼쳤다. 특히 S-클래스 쿠페에 추가된 ‘액티브 커브 틸팅’ 기능이 대표적이다. 양산차 최초로 코너에 들어가면 차체의 기울기를 스스로 조절하는 기능이다.
물론 기능은 더욱 발전했다. 카메라를 통해 앞의 노면 정보를 읽고 코너에 진입하기 전부터 주행 속도, 전방 코너 각도, 기울기 등을 계산해 서스펜션을 조정한다. 최대 2.5°까지 차체를 기울여 편안한 주행을 돕는다. 20년 만에 현실에 들어온 기술이라는 점은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 F300 라이프제트 콘셉트는 쇼카를 넘어 분명한 미래를 제시했다. 그리고 미래를 현실로 만들어냈다. 많은 생각이 든다. 당장 팔 수 있는 자동차도 중요할 테다. 하지만 자동차는 미래를 먹고 산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안민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