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택시운전사’ 송강호=브리사, 유해진=포니 선택한 이유
브리사와 포니 vs <택시운전사> (1)
[강희수·정덕현의 스타car톡] 왜 우리네 택시와 해외의 택시는 그 느낌이 다를까. 그것은 아마도 그 택시를 운전하는 택시운전사들이 다르기 때문은 아닐까. 끊임없이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우리네 택시운전사들의 풍경은 묵묵히 운전만 하는 해외의 그들과는 너무나 다르다. 택시는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는 그저 운송수단만이 아니고 일종의 소통이 이뤄지는 공간이기도 하다. 최근 천만 관객을 넘어선 영화 <택시운전사>는 바로 이런 점들을 통해 광주 민주화 운동의 진실을 찾아가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 등장한 택시들, 즉 브리사와 포니는 당대의 풍경을 보여주면서도 기묘하게 그 아픈 시대의 정서까지 담아낸다. <택시운전사>에 등장한 택시 이야기에서부터 우리네 택시의 변천사까지 그 기술적 문화적 흐름에 대해 자동차 전문기자인 강희수와 대중문화 칼럼니스트인 정덕현이 수다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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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현의 이 영화는 : 영화 <택시운전사>는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독일의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를 광주까지 데리고 들어갔다 나온 택시운전사의 실제 이야기를 극화한 작품이다. 당시 광주를 다룬 몇몇 영화들이 있었지만 이 작품이 독특한 건 지극히 소시민적인 택시운전사라는 인물의 시선으로 담아냈다는 점이다. 조금씩 광주 사람들의 마음에 동화되어가는 과정은 그래서 이념을 떠나 인간이라면 응당 해야 할 행동으로서 접근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 보편적인 공감대를 주는 작품이 되었다. 주인공만큼 택시라는 소통의 매개체이자 상징이 중요한 역할을 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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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현(이하 정) : 이 코너를 하고 있어서 그런지 최근 천 만 영화가 된 <택시운전사>를 보면서도 유독 택시들이 눈에 띄더라. 광주 민주화 운동의 그 아픈 진실들을 다른 시선이 아닌 택시를 매개로 해서 그 운전사의 시선으로 담아내고 있다는 점이 이 영화가 많은 관객들에게 공감을 준 이유가 아닐까 싶었다. 물론 당대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지만 이 영화 자체로만 봐도 그만큼 택시라는 매개체가 중요했다고 든다.
강희수(이하 강) :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등장하는 설화다. 삼국유사에는 신라 48대 경문왕과 복두장이 설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서양에서는 ‘그리스 신화’에 미다스 왕과 이발사 간의 설화로 이야기가 전해진다. 두 설화에는 공통적으로 절대 권력자의 허물인 ‘당나귀 귀’와 그 허물을 숨기려는 절대 권력자, 그리고 그 진실을 알고 있는 목격자가 등장한다. 여기에 또 하나 중요한 구실을 하는 사물이 있는데, 경문왕 설화에서는 대나무숲, 그리스 신화에서는 갈대밭이다. 대나무숲과 갈대밭은 바람이 불 때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진실’을 쏟아내곤 했다.
대나무숲과 갈대밭은 비민주적 통치자에 의해 ‘진실’이 왜곡 됐던 우리나라의 현대사에도 존재했고, 민주주의 발전에 매우 중요한 구실을 했다. 대나무숲과 갈대밭이 갖고 있는 공통적 요소는 바람의 속도로 번지는 ‘진실’의 소리였다. 억압이 존재했던 대한민국 현대사에서는 ‘택시 운전사’들이 대나무숲의 구실을 했다.

정 : <택시운전사>는 그래서 하나의 상징처럼 다가오는 면도 있었다. 택시가 달리는 도로가 어디든 갈 수 있는 소통의 길이라면 당대는 그 길을 군인들이 가로막던 시대가 아닌가. 그 곳을 뚫고 들어가 진실을 담아 세상에 알리는 그 과정은 그래서 하나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강 : 이번에 이 영화의 스태프 중 한 명인 강호 PD를 인터뷰 할 기회가 있었다. 그를 통해 영화 뒷얘기는 물론이고 택시 선정 과정 등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들었는데 영화제목으로 ‘택시 운전수’로 할 것인지 ‘택시 운전사’로 할 것인지를 두고 고민을 했다고 하더라.
정 : 그 이야기는 나도 들었던 적이 있다. 원래는 ‘택시 드라이버’였다고 하는데, 그게 너무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작품을 떠올리게 해서 ‘택시 운전수’와 ‘택시 운전사’를 놓고 고민을 했다는 것이다. 결국 ‘택시 운전사’가 된 건 운전수가 조금 낮게 그 직업을 비하하는 시선이 들어 있어서라고 했다. 실제로 운전사가 제대로 된 표현이긴 하다.

강 : 영화 <택시운전사>는 송강호, 토마스 크레취만, 유해진, 류준열 등이 주인공이었지만 그에 못지않게 ‘택시’가 오브제를 넘어 주연에 버금가는 ‘배우’였다. 그래서 <택시운전사>의 제작진은 심혈을 기울여 ‘택시’를 캐스팅 했다고 한다. 제작진의 고민은 ‘어떤 택시’에 ‘어떤 역’을 맡길 것인가에서부터 시작 됐다. 적어도 서울서 내려간 송강호의 ‘택시’와 광주를 무대로 뛰고 있는 유해진의 ‘택시’는 달라야 한다고 판단했다.
정 : 나도 택시들을 눈여겨봤는데 그 부분이 궁금하더라. 브리사와 포니, 어느 한 대로 결정한 게 아니고 두 대로 나뉘어 있더라.

강 : 실제로 <택시운전자>의 시대적 배경인 1980년 5.18 당시의 택시는 크게 2종류가 도로를 누볐다. 기아산업(현 기아자동차)에서 생산한 ‘브리사’와 현대자동차가 만든 ‘포니’였다. 기아산업에서 만든 최초의 승용차이기도 한 브리사는 마쯔다의 ‘파밀리아’를 들여와 1974년부터 1981년까지 생산됐다. 최대출력 62마력을 내는 4기통 1.0리터 엔진을 달고 부품 국산화율을 80%까지 끌어올려 인기를 끌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국내 자동차 산업은 해외에서 부품을 가져와 단순 조립 생산하는 수준이었다. 물론 1950년대는 미군이 사용했던 군용 지프를 개조해 만든 시발자동차가 ‘시발택시’로 도로를 누비기도 했다.
정 : 그래도 우리 같은 중년에게는 브리사 택시보다 포니 택시가 더 익숙하다.

강 : 그게 전두환 신군부 정권과 관련이 있다. ‘브리사’에 맞서는 현대차의 ‘포니’는 1975년 말부터 양산을 시작했다. 당대 최고의 디자이너로 손꼽히던 이탈리아의 조르제토 주지아로의 디자인으로 탄생한 포니는 80마력을 내는 미쓰비시의 4기통 1.2리터 엔진을 장착하고 부품 국산화도 90%에 이르렀다. 부품 국산화율이 중요한 이유는 차가 고장 나거나 부서졌을 때 수리하는 비용이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부품 국산화율은 곧 유지비용이었다. 그런데 기아산업의 브리사는 1981년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갑작스럽게 생산이 중단 된다. 차종을 통폐합하겠다는 자동차공업합리화 조치의 결과였다.
<택시 운전사> 스태프인 강훈 PD는 “송강호 씨가 타는 택시가 ‘브리사’냐 ‘포니’냐를 결정해야 하는 고민이 있었는데, 일단 광주의 택시 기사인 유해진 씨와 ‘포니’가 잘 어울린다는 판단을 했고, 자연스럽게 브리사는 송강호 씨가 타게 됐다”고 설명을 했다. 전두환 정권에 의해 갑자기 단종 된 비운의 역사도 ‘송강호=브리사’ 조합을 더 그럴듯하게 한다.
정 : 정말 흥미로운 이야기다. 브리사의 생산 중단과 포니의 등장이 전두환 정권의 통폐합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은 영화 속 등장하는 택시들이 또 하나의 영화 주인공 역할을 하고 있었다는 의미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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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수의 이 차는 : 말이 나왔으니 우리나라의 택시 이야기를 좀 더 하고 넘어가자. 강력한 경쟁자 ‘브리사’가 사라진 ‘포니’는 국내 소형 승용차 시장을 독식하다시피 한다. 택시도 마찬가지다. ‘포니’에서 1984년 ‘포니2’로 우리나라 최초의 페이스리프트(부분변경)까지 해가며 한 시대를 풍미한다. 198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급격한 경제성장과 더불어 자동차 보급이 늘어나자 소형차 중심의 자동차 시장에도 변화가 일기 시작한다.
1983년 현대차에서 ‘스텔라’라는 중형 모델을 내면서 시장을 넓혀가던 차에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중형 택시’ 전환 정책이 펼쳐지면서 택시 시장도 급격히 ‘스텔라’ 중심으로 변해갔다. 스텔라는 1985년 생산을 시작한 ‘쏘나타’에 자리를 넘겨주며 기억의 뒤안길로 물러난다. 현대차가 주름잡던 택시 시장은 1990년대 들어 대우가 4기통 2.0리터 엔진을 단 ‘로얄 프린스’ 택시를 내놓으면서 고급화를 시도했고, 기아에서는 ‘콩코드’ ‘캐피탈’ 택시로 응수했다. 1998년 삼성자동차에서 나온 SM520 택시는 ‘SM’ 시리즈의 높은 상품성을 알리는 입소문 발설지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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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에 계속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 x 자동차전문기자 강희수
강희수·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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