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바퀴굴림 차라고 다 드리프트 되나? (下)

똑같은 뒷바퀴굴림 중에서도 드리프트가 잘 되는 차, 다루기 까다로운 차가 있다.

[김태영의 테크 드라이빙] 전편에서 드리프트가 잘 되는 뒷바퀴굴림 자동차의 조건을 알아봤다. 그럼 이런 조건만 갖춘다면 드리프트가 무조건 잘 될까? 드리프트가 잘 되는 차와 반대로 다루기 까다로운 차는 없을까? 토요타 86, 포르쉐 911 카레라 S(991), 로터스 엘리스 스포트, BMW M5(F10). 이 넉 대의 자동차를 가지고 이번 이야기를 풀 수 있다. 각 자동차는 저마다의 시장에서 주행 성능으로는 부족하지 않는 차들이다. 이들 모두가 뒷바퀴굴림이고, 제원으로 따졌을 때도 드리프트가 무척 잘되리라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테스트해보면 예상치 못한 드리프트 감각이 존재한다. 드리프트 할 때 반응은 모두가 다르고, 예상과 크게 벗어나기도 하다.



토요타 86은 드리프트가 잘 되는 대표적인 자동차다. 터보차저 방식이 아닌 2.0L 자연흡기 엔진을 얹어 200마력(20.9kg·m)을 발휘한다. 요즘의 스포츠카 기준에선 출력이 높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차의 무기는 상대적으로 가벼운 몸무게와 폭이 좁은 타이어, 섀시의 균형에 있다. 수동변속기 86의 움직임과 반응은 환상적이다. 저속 코너에서 가속페달을 강하게 밟으며 클러치를 빠르게 밟았다가 떼기만 해도(클러치 킥) 뒷타이어가 미끄러지며 드리프트가 시작된다. 모든 움직임이 자연스럽다. 제어하기 쉽다. 이건 자동변속기 모델도 마찬가지다. 반응이 약간 느릴 뿐.

변속기 1~2단을 오가며 드리프트 할 때 86의 움직임은 정교하다. 눈감고 드리프트를 유지할 만큼 뒷바퀴가 미끄러지는 감각이 정확하다. ‘여유롭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스포츠카 그룹에선 상대적으로 무게가 가벼운 편이라 제법 민첩하게 반응한다. 폭이 좁은 타이어(205~215mm)가 달렸기에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86의 드리프트에도 단점은 있다. 엔진 출력이 그리 높지 않아서 변속기 3~4단 이상의 고속에서 드리프트를 유지하기가 어렵다. 물론 차의 관성을 이용하거나 고급 드리프트 제어 기술을 이용하면 빠른 속도에서도 드리프트가 된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운전자의 실력을 배제하고 차의 특성만으로 비교했을 때는 고속에서 자유자재로 드리프트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엔진 출력이 발목을 잡는다.



420마력을 발휘하는 포르쉐 911 카레라 S는 어떨까? 전통적으로 911은 뒤 엔진, 뒷바퀴굴림(RR)이라는 불안정한 구조에서 태어난다. 하지만 최신형 포르쉐는 섀시의 균형 측면에서 더 이상 불안하지도, 불리하지도 않다. 코너를 돌파하는 능력은 마치 엔진이 차 중앙에 달린 미드십 스포츠카 같은 느낌이다. 실제로 핸들링도 정확하고, 반응도 빠르다. 그래서 차 꽁무니에 달린 엔진이 시계추처럼 움직이며 운전자를 위협하는 순간은 정확하게 정해져 있다. 자세제어장치(PSM)를 모두 끄고, 뒷바퀴를 미끄러뜨리며 코너로 뛰쳐나가는 순간뿐이다. 하지만 억지로 차를 제어하지 않는다면 911 카레라 S는 저속이든 고속이든 매끄럽게 뒷바퀴를 미끄러트리며 멋지게 드리프트 한다.



물론 이렇게 잘 디자인된 고성능 스포츠카도 특정 영역에서 드리프트가 만족스럽게 되지 않는다. 예컨대 자동변속기(PDK)를 얹은 모델은 좁은 공간, 혹은 아주 저속에서 차의 뒷바퀴를 빠르게 미끄러뜨려서 정교하게 드리프트 할 수 없다. 뒷바퀴가 미끄러지며 자세를 잡는 과정이 길고 험난하다. 예컨대 스티어링휠을 코너를 향해 꺾고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았을 때도 뒷바퀴가 곧바로 미끄러지기보단 언더스티어(코너의 밖으로 앞바퀴가 미끄러지는 현상)가 발생하며 차가 일단 크게 밀려난다.

아주 똑똑한(?) 전자제어 장치의 개입으로 운전자의 테크닉도 제재 당한다. 가령 차가 정지한 상태에서 왼발로 브레이크를 밟고 오른발로 가속페달을 밟아 뒷바퀴를 강제적으로 헛돌게 하는 ‘벗아웃’ 같은 기술을 자유자재로 쓸 수 없다. 애초부터 운전자가 차의 균형을 슬쩍슬쩍 무너트리는 행동을 허용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911 카레라 S는 목적에 충실하게 디자인된 똑똑한 스포츠카다. 그래서 가끔 운전자의 재미를 반감시킨다.



로터스 엘리스 스포트도 드리프트가 어려운 차중에 하나다. 작고, 가볍고, 전자장비의 개입이 많지 않으며, 뒷바퀴로 동력을 전달하는 순수한 스포츠카 형태지만, 예상을 빗나간다. 수치나 제원만으로는 토요타 86처럼 언제나 드리프트가 자연스럽게 될 것 같지만, 엘리스 스포트는 극단적으로 뒷타이어를 미끄러뜨려 드리프트를 유지하기 꽤 까다로운 구조다. 가벼운 몸무게 때문이다. 이 차의 무게는 고작 890kg 수준이다. 그래서 뒷바퀴를 갑자기 미끄러뜨려서 드리프트로 연결하기엔 관성이 부족하다. 쉽게 말해 뒷타이어의 접지력이 너무 강하다.

극단적으로 스티어링휠을 한쪽으로 다 감고,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아도 뒷바퀴가 쉽게 미끄러지지 않는다. 그저 앞바퀴가 계속해서 미끄러지며, 커다란 원을 그리며 속도를 붙여갈 뿐이다. 코너를 날렵하게 뛰어들 때 자연스럽게 뒷바퀴가 미끄러지는 특성을 이용하면 드리프트를 맛볼 수 있다. 하지만 잠깐 엉덩이를 흔들 뿐, 오버스티어와 언더스티어를 오가며 핸들링 특성이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드리프트를 쉽게, 즐길 수 있는 차는 분명 아니다.



출력이 넘치고, 무게가 무겁고, 본격적으로 스포츠 드라이빙을 위해 태어났더라도 드리프트를 쉽게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메르세데스-AMG GT S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510마력을 발휘하는 V8 트윈터보 엔진은 언제든 뒷타이어를 쉽게 미끄러뜨릴 수 있다. 하지만 전자제어 방식의 스로틀과 LSD, 광폭타이어 같은 조합으로 드리프트의 과정이 폭력적으로 바뀐다. 전자제어 방식은 엔진 파워를 섬세하게 조절하기 어렵게 만든다. 따라서 언제든 차가 쉽게 균형을 잃고 스핀 할 수 있다. 또 드리프트가 끝날 때 좌우 타이어의 접지력 차이가 크게 발생하며 차체가 강하게 요동친다. 실제로 드리프트로 코너링을 테스트 중 코너의 끝에서 등골이 오싹한 순간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드리프트가 잘 되는 뒷바퀴굴림 자동차는 생각만큼 많지 않다. BMW M시리즈(특히 M2와 M5)와 페라리 458 스페치알레 같은 일부 모델은 속도나 상황에 상관없이 아주 쉽게 드리프트를 시작하고, 정교하게 제어할 수 있다. 단지 좋은 차여서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그런 환경에서 테스트하고 운전자가 충분히 운전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뒷바퀴굴림이라고 무조건 드리프트가 된다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다. 드리프트가 된다, 혹은 안 된다는 사실도 어쩌면 크게 중요하지 않다. 세팅에 따라서 모든 자동차의 주행 특성과 감각이 다르듯, 드리프트 또한 특성이 다르고 운전자에게 주는 만족도가 다르다. 그 차이점을 정확하게 아는 것이 중요하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김태영
저작권자 © 오토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