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츠는 결국 ‘벤츠다움’으로 BMW를 뛰어넘었다
[김형준의 숫자 깨먹기] 메르세데스 벤츠와 BMW의 처지가 바뀌었다. 벤츠는 국내외 판매에서 프리미엄 브랜드 1위를 기록했고, BMW는 오래 지켜온 왕좌를 내줬다. 배경은 크게 두 가지다. 브랜드 리뉴얼의 완성도와 브랜드 캐릭터의 차이다. 바꿔 말해 완성 단계에 이른 벤츠의 브랜드 전략은 지금 큰 힘을 발휘하고 있고 BMW는 브랜드 리뉴얼의 과도기에서 주춤했다.

먼저 벤츠 얘기부터다. 지난해 메르세데스 벤츠의 국내 판매량을 보면 크게 5가지 특징이 드러난다. 콤팩트 클래스와 SUV, 고성능 제품군의 선전 및 E 세그먼트 이상 모델과 가솔린 엔진 모델의 높은 판매 비중이다.
콤팩트 클래스의 경우 지난해 A 200d와 CLA 200d, GLA 200d가 각각 1,535대, 1,289대, 1,025대씩 판매되며 2015년 4,329대였던 C 세그먼트 판매 규모를 7,154대까지 끌어올리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같은 기간 BMW는 6,279대). 올해의 경우 주력 디젤 모델(200d)의 판매 중단으로 규모가 줄었지만(7월 현재 BMW 4,275대, 벤츠 3,139대) 4기통 가솔린 엔진의 CLA 250 4매틱(1,305대)이 효과적으로 공백을 메우고 있다. 2012년 B 클래스 모델 변경으로 시작된 콤팩트 클래스 제품 전략이 시장에 안정적으로 자리잡은 결과라 할 수 있다.

SUV의 경우 지난 2015년 3,071대에 불과하던 판매량이 지난해 8,919대로 3배 가까이 늘어났다. 전체 판매량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15년 6.5%에서 지난해 15.8%로 비약적으로 커졌다. 벤츠는 지난 2014년 마이바흐와 AMG의 서브 브랜드 전략과 함께 작명 체계도 새롭게 선보였다. 핵심은 차종별(승용-스포츠-SUV) 모델명에 차급별(A-B-C-E-S) 이니셜을 더하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SUV 라인업은 GL이라는 모델명 아래 GLA-GLC-GLE-GLS-GL로 이어지는 일목요연한 패밀리를 구축하게 됐다. 여기에 BMW의 성공방식을 따라 쿠페 스타일의 변형 모델까지 더하면서 한층 탄탄한 라인업이 완성됐다.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ML에서 넘어온 GLE 클래스는 E 세그먼트 SUV 판매량을 2015년 850대에서 지난해 3,104대로 끌어올렸고, 완전신형인 GLC 클래스는 벤츠 D 세그먼트 시장에 3,332대의 물량을 보태주었다.

메르세데스 벤츠는 지난 2014년 AMG를 서브 브랜드화했고 이듬해부터 일반 모델과 AMG 63 사이를 잇는 입문용 고성능 모델로 AMG 43을 소개했다. 이를 토대로 한 고성능 제품군도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이고 있다. AMG 명칭이 붙은 제품의 지난해 국내 판매량 합계는 2,057대로 2015년(1,688대)보다 369대 늘었다. 인상적인 것은 D 세그먼트와 F 세그먼트다. 풀 사이즈급 F 세그먼트의 경우 AMG 63/65 모델 판매가 2015년 699대에서 지난해 936대로 237대 증가했다. D 세그먼트는 입문용 고성능 모델인 AMG 43 모델(C 450, SLC 43, GLC 43)이 177대 팔렸는데, 올해는 이 규모가 373대로 더욱 커졌다(C 43 140대, SLC 43 75대, GLC 43 158대). 최상위 럭셔리 모델(AMG 63/65)과 이의 후광효과를 노린 입문용 고성능 모델(AMG 43)이 모두 성공적으로 시장에 자리 잡은 셈이다.

차급별 분포를 보면 D 세그먼트는 여전히 BMW에 열세이고 C 세그먼트는 엎치락뒤치락하는 경쟁을 벌이지만 E 세그먼트와 F 세그먼트에서 벤츠는 여유 있게 BMW를 앞서고 있다. E 세그먼트의 경우 지난해 2만8,650대로 2만3,510대의 BMW를 제쳤고, F 세그먼트에선 7,466대 판매로 BMW(3,293대)를 2배 이상 격차로 따돌렸다.
이 흐름은 올해도 유효하다. E 클래스 중심의 E 세그먼트는 5시리즈가 분전한 BMW(1만4,695대)를 1만1,000여대 앞서 있고, 대형차 시장(F 세그먼트) 역시 4,342대 판매로 1,857대의 BMW를 가볍게 따돌렸다. F 세그먼트의 결과는 완성 단계에 이른 벤츠 브랜드 전략의 축소판이라는 점에서 더욱 유의미하다.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하는 서브 브랜드(메르세데스 마이바흐와 메르세데스 AMG), 21세기의 대세인 SUV(GLS와 G바겐), 그리고 모든 변화의 근간이 된 성공적인 플래그십 모델(S 클래스)이 짜임새 있게 어우러진 결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벤츠의 상승세를 설명하는 또 다른 요인은 바로 가솔린 엔진 비중이다. 지난해 벤츠 전체 판매량에서 가솔린 엔진이 차지하는 비중은 43.9%였다. 같은 기간 80.6%(약 3만9,000대)가 디젤 엔진 모델이었던 BMW와 크게 대비되는데, 벤츠 고객의 보수적 성향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BMW의 경우 2009년 21%이던 디젤 엔진 비중이 빠르게 상승해 2015년 83.8%까지 오른 반면 벤츠는 2009년 13.5%에서 2014년 최고치로 61.4%를 찍었을 뿐이다. 디젤 게이트 여파로 시장 전반의 디젤 엔진 모델 판매가 주춤한 와중에도 벤츠만큼은 역대 최고치의 판매기록을 세우며 순항하는 비결이다.
벤츠는 결국 ‘벤츠다움’으로 BMW를 뛰어넘었다. 서브 브랜드의 출범, 모델명 개선과 이에 뒤따른 SUV 라인업 정비 등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진 브랜드 리뉴얼 작업 역시 최종 목표는 고객에게 벤츠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있었다. 바꿔 생각하면 지금의 벤츠는 대대적인 혁신을 해왔음에도 완전히 새롭기보다 훨씬 더 단단하게 보수화돼 버렸다.

그들의 진짜 혁신은 또 다른 서브 브랜드인 EQ(전기차)를 출범시키는 것일 텐데, 그 시점은 빨라야 2020년쯤일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에서 S 클래스 판매는 테슬라 모델 S에 미치지 못하고 있으며, BMW는 이미 2011년에 전기차 브랜드 i를 출범했다. 벤츠가 BMW와의 경쟁에서 완벽한 우위를 점했다고 말하기 어려운 까닭, 그리고 벤츠에 뒤처졌지만 BMW에도 엄연한 재역전의 기회가 있다고 여겨지는 배경이다.
맞다. 다음은 탄탄대로를 달리다가 벤츠에게 발목 잡혀버린 BMW에 대한 이야기다.
3부에서 계속
자동차 칼럼니스트 김형준 (모터트렌드 편집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