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를 향한 무거운 발걸음, 미래로 가고 있는 람보르기니 (2)
[황욱익의 플랫아웃] 다른 이탈리아 자동차 메이커들이 그러했듯 람보르기니 역시 순탄치 않은 길을 걸어왔다. 스위스와 프랑스, 미국, 인도네시아 등등을 떠돌다 독일 자동차 메이커인 아우디에게 인수되는 굴욕을 맛보기도 했다. 스포츠 감성을 내세우면서도 모터스포츠에서의 활약은 거의 참패에 가까웠지만, 아우디가 인수하면서 사정이 좀 나아졌다.

◆ 페루치오는 사실상 자동차 마니아 보다 사업가에 가까웠다
람보르기니의 상징과도 같은 걸윙 도어는 사실 페루치오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아이템이었다. 전통적인 도어 방식을 선호한 페루치오는 베르토네에서 디자인을 담당한 프로토 타입의 걸윙 도어(마르첼로 간디니의 아이디어)에 퇴짜를 놓기 일쑤였다. 표면적으로는 자동차의 정통성을 강조한다는 것이 이유였지만 실질적인 이유는 람보르기니를 구입하려는 층의 소비 성향이 보수적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페루치오는 설립 10년 만에 경영에서 완전히 물러나 와인 사업으로 성공했는데 자동차 사업을 생각보다 쉽게 포기했다.
실제 페루치오는 한 인터뷰에서 ‘나는 자동차를 좋아하는 것 보다 사업적인 측면에 관심이 더 많았다’라고 밝혔으며, 노조의 파업 기간에는 손수 공장 바닥을 청소하며 공장 노동자들의 동기 부여를 강조했다. 기계공으로 시작해 전쟁 후에는 전쟁 물자를 민수용으로 개조하는 사업으로(람보르기니 트랙터) 부를 축적한 그는 자동차 마니아보다 자동차 회사의 오너, 와인 사업자 등 수완이 좋았던 사업가가 더 어울린다.

◆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미드십 레이아웃
미우라 이후 슈퍼카의 기본조건처럼 여겨지는 미드십 레이아웃은 사실 개발 초기에는 문제 투성이였다. 리어 액슬 뒤에 가로로 엔진을 배치한 미우라는 최고속력은 높았으나 운동성이 형편없었고 세로배치를 선보인 쿤타치는 뒤쪽 시야가 엉망이라 후진을 하려면 운전자가 내려서 뒤쪽을 직접 확인해야할 정도였다. 반면 람보르기니의 미드십 레이아웃은 BMW와 아우디의 고성능 스포츠카 개발에 기여했는데 BMW 최초의 미드십 스포츠카인 M1은 원래 람보르기니의 미드십 레이아웃을 기반으로 개발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당시 람보르기니의 재정 상태가 엉망이었고 개발 일정이 늦어지자 BMW가 직접 나섰다. 알려진 대로 아우디의 미드십 스포츠카 R8은 람보르기니 가야르도의 섀시 설계를 차용한 모델이다. 이 때문에 아우디 R8은 갸야르도의 염가판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듣기도 하지만 콰트로 시스템을 탑재하면서 아우디를 대표하는 스포츠카로 거듭나게 된다.

◆ 베르토네, 마르첼로 간디니, 람보르기니
람보르기니의 슈퍼카 혈통에는 베르토네 출신의 마르첼로 간디니가 항상 있었다. 미우라를 시작으로 쿤타치, 디아블로로 이어지는 슈퍼카의 디자인을 담당하기도 했으며 이때 선보인 디자인은 후에 다른 자동차 메이커의 스포츠카 디자인에 큰 영향을 준다. 미우라를 비롯한 에스파다, 자라마와 우라코의 디자인을 담당했던 시기 간디니는 베르토네 소속의 디자이너였다. 이탈리아 자동차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마르첼로 간디니는 란치아와 피아트, 마세라티의 스포츠 모델 디자인을 담당하기도 했으며 20세기를 대표하는 자동차 디자이너 중 한 명이다.

◆ 오일 머니와 오마일 범퍼
초기 람보르기니의 최대 시장은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이었지만 쿤타치의 등장과 함께 미국 시장에서 큰 인기를 얻는다. 하지만 생산량이 따라가지 못했고 후기형 쿤타치부터 람보르기니의 최대 소비 시장은 오일 머니를 갖춘 중동의 산유국 부호들이었다. 아우디가 람보르기니를 인수한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가 20세기 말부터 슈퍼카 신흥시장으로 부상한 중동시장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결국 아우디의 베팅은 정확하게 적중했고 람보르기니는 슈퍼카 제작사로서 입지를 다진다. 디아블로 이후 등장한 무르치엘라고, 가야르도, 아벤타도르 같은 차들이 가장 많이 팔리고 가장 많이 튜닝 되는 시장도 중동이다.
반면 쿤타치로 선전을 기대했던 미국 시장은 미국 내 자동차 법규가 발목을 잡았다. 1970대부터 적용되기 시작한 오마일 범퍼 때문인데 당시 제작된 유럽차들의 미국형 버전은 흉측한 5마일 범퍼를 달아야 미국에서 판매할 수 있었다. 오마일 범퍼를 장착한 쿤타치는 간디니 디자인을 완전히 망쳐 놓았고 이는 미국 시장에서 쿤타치의 이미지를 하락시키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 F1에서 참패
람보르기니는 1989년 엔진 서플라이어로 F1에 등장한다. 자연흡기 V12 엔진을 내세운 람보르기니는 롤라와 로터스 등 명문팀에 엔진을 공급했지만 완주율은 고작 30% 정도에 불과했다. 대부분이 엔진 트러블로 인한 리타이어였으며, 마지막해인 1993년까지 람보르기니는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다. 가장 좋은 성적은 1990년 일본 그랑프리에서 스즈키 아구리가 기록한 결승 3위. 1990년에는 운 좋게도 종합 6위로 마무리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르망과 유럽 내구 레이스에서는 디아블로를 사용하는 팀이 있긴 했지만 프라이빗 자격이었고, 21세기에 들어오면서는 블랑팡 같은 람보르기니 가야르도 원메이크 레이스에 집중하고 있다. 블랑팡 시리즈는 한국에서도 개최된 적이 있으며 팀 106의 류시원 감독이 우승을 기록한 바 있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황욱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