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자동차 (43) - 현재의 자율주행 기술을 30년 전 구현한 비타

[안민희의 드라이브 스토리] 요즘 자동차 산업을 가장 뜨겁게 달구는 단어는 ‘자율주행’입니다. 언젠가 자율주행 시대가 온다면 출퇴근 시간이 조금은 더 편해지겠지요. 출근길의 교통정체, 사람으로 꽉 찬 지하철에서 벗어나는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오늘은 30년 전 벤츠가 만든 자율주행차를 소개합니다. 자율주행의 오래된 꿈이지요. 시작합니다.



완전한 자율주행은 아니지만 자율주행 기술은 이미 우리 삶에 가까이 왔다.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긴급 제동, 보조 조향 등의 편의·안전 기술은 자율주행으로 가는 길목이다. 그런데, 약 30년 전인 1986년. 메르세데스 벤츠는 이미 충돌방지 및 자율주행 기술의 기본기를 닦고 있었다.

메르세데스 벤츠는 1986년 10월 1일, 유럽 자동차 제조사 여럿, 전자제품 업체, 대학, 연구소 등을 하나로 모아 ‘유레카 프로메테우스’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앞글자의 알파벳만 따서 읽으면 ‘최고 효율 및 탁월한 안전성을 갖춘 유럽 교통 프로그램’이란 뜻인데, 그리스 신화 속에서 인류에게 불을 안긴 프로메테우스처럼 새로운 무언가 만들려는 의지같아 보인다.



프로메테우스 프로젝트의 목표는 다양했다. 크게 교통흐름 최적화, 사고 감소, 이동성 확대, 환경 보존의 4가지로 나눌 수 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센서, 통신, 정보처리 기술을 자동차에 적용하기로 결정하고, ‘VITA(비타, Vision Information Technology Application)’라는 이름의 시험차를 선보였다.

비타는 컴퓨터와 비디오 카메라를 달아 만든 자율주행차였다. 프로젝트 초중반에는 밴에 컴퓨터와 카메라를 싣고 달렸지만, 기술 발전 덕분에 후반에는 S-클래스에 실을 만큼 시스템 크기가 줄었다. 비타는 앞뒤에 비디오 카메라 달아 얻은 이미지를 컴퓨터로 읽어 도로를 분석하고 다른 차와 충돌 가능성이 있는지 파악했다.



주요 목적은 컴퓨터를 사용한 충돌 방지였다. 하지만 자율주행도 가능했다. 1994년 10월, 메르세데스 벤츠는 비타의 실험주행을 진행했는데, 3차선 고속도로에서 최고시속 130km로 1,000km 이상을 달렸다. 운전자가 허락하면 자율 추월 및 차선 변경도 가능했다. 1980년대에 메르세데스 벤츠 바리오로 실험한 반자율주행을 더욱 끌어올렸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메르세데스 벤츠는 비타 이후에도 독자적으로 무인 기술을 계속 연구했다. 비타에서 실험한 기술들은 지금의 기능들과 닮은 부분이 많다. 비타는 적외선 센서로 더 느린 물체를 식별하고 안전한 거리를 유지할 때까지 속도를 줄였다. 이는 개선을 거쳐 자동 브레이크,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로 발전했다.



비타에는 내비게이션 및 차대차 통신도 있었다. 지금의 시스템과는 약간 다르지만 기본적인 부분은 비슷하다. 위성 통신 시스템을 사용해 접속하면 비타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운전자가 볼 수 있게 문자 메시지도 보낼 수 있었다. 받은 문자 메시지를 실내의 스크린에 띄우는 방식이었다. 왠지 ‘무선호출기(삐삐)’가 떠오르는 부분이다.

비타의 실시간 위치를 확인하는 기술은 지역 교통관리 기술에도 시범 적용이 됐다. 차가 주로 몰리는 장소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게 되었으니 데이터 쌓으면 대처가 가능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외에도 자동 주차 등 다양한 자동차 기술을 시험했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기술 대부분을 미리 구현한 셈이다.



허나 비타는 양산되지 못했다. 당시의 첨단 기술을 집약했다고는 해도, 사람들은 비싼 컴퓨터보다 운전기사가 몰아주는 자동차를 선호했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에 아주 익숙한 지금 세상에서도 자율주행 자동차에 대한 막연한 걱정이 있다. 하물며 과거에는 ‘과연 컴퓨터를 믿을 수 있을까?’라는 걱정도 지금보다 컸을 테다.

대신, 메르세데스 벤츠는 ‘사고 없는 운전’이라는 프로젝트의 목표에 맞춰 비타의 기술을 갈고 닦아 ‘사고 방지 기술’을 양산차에 적용하는데 성공했다. 다임러 그룹은 “연구 개발을 통해 얻은 기술이 지금의 자동차에 들어있다. 앞으로 완전 자율주행차를 만들겠다”고 말한다. 30년에 걸친 끈질긴 연구를 할 수 있는 이들의 저력이 부러워지는 순간이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안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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