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 vs 메르세데스 벤츠 (3)
미래에의 투자가 현재 BMW의 발목을 잡긴 했지만

[김형준의 숫자 깨먹기] 61억 3,540만 유로. BMW는 지난해 프리미엄 브랜드 전 세계 판매 1위의 자리를 메르세데스 벤츠에 내줬다. 한국 판매량 역시 벤츠에 뒤처졌다. 그 추세는 올해도 여전해 지난 7월까지 누적 판매량에서 벤츠에 1만대 이상 뒤져 있다. 과연 BMW의 시대는 저무는 걸까?



속단은 이르다. 지난해와 올해 한국에서의 판매 추이를 보면 BMW의 힘은 여전하다. 3시리즈를 중심으로 한 콤팩트 세그먼트는 특히 그렇다. 준중형급으로 구분되는 C 세그먼트의 경우 지난해 벤츠는 7,154대, BMW는 6,279대가 팔렸다. 전체 판매 규모는 뒤졌지만 승용 모델(해치백, 세단, MPV) 판매량은 BMW가 4,730대로 벤츠(4,573대)보다 157대 많았다. 지난 7월까지를 포함한 올해의 경우 BMW는 전체 판매량에서도 다시 라이벌 브랜드를 눌렀다. 4,275대 판매로 벤츠(3,139대)에 비해 1,136대 더 많다. 7개월 동안 2,655대 팔린 118d 해치백의 공로였다.

D 세그먼트는 말할 것도 없다. 이곳은 BMW가 전통적으로 강점을 보여온 시장이다. 3시리즈라는 불세출의 모델 덕분이다. C 클래스에 3시리즈는 ‘넘사벽’이다. 베이비 S 클래스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고급화된 현행 모델(W205) 출시 이후에도 이는 달라지지 않았다. BMW는 지난해 이 시장에서 1만5,377대(벤츠 1만,3073대), 올해의 경우 지난 7월까지 1만1,359대(벤츠 9,985대)로 라이벌을 넉넉히 따돌리고 있다.



지난해 D 세그먼트 BMW 판매량 중 승용 모델은 9,804대였는데, 여기서 4시리즈 그란쿠페(1,056대)와 같은 변형 모델을 제외해도 벤츠(8,701대)를 앞선다. 늙은 3시리즈가 창창한 C 클래스를 제압했다는 얘기다. SUV와 변형 제품을 아우르는 RV 판매량 역시 BMW가 4,033대로 3,332대의 벤츠보다 많았다. 다만 RV에 가까운 모습인 3시리즈 그란투리스모(1,299대)를 제외하면 2,734대(X3/X4)로 벤츠보다 적다. 올해도 승용은 BMW(6,420대)가 벤츠에 1,000대 가까이 앞서있고 SUV는 벤츠 GLC(2,886대)가 X3/X4보다 220여대 많이 팔렸다.



문제는 상급 시장이다. 물량과 내용 모두 썩 좋지 못해서다. 판매량에 있어선 풀 사이즈급 대형차 시장에서 지난해 3,293대, 준대형급 E 세그먼트는 2만3,510대에 그치며 벤츠에 각각 4,173대, 5,140대씩 뒤졌다. 상황은 올해도 비슷해서 풀 사이즈급 시장은 1,857대, E 세그먼트는 1만4,695대 판매로 각각 벤츠보다 2,485대, 1만1,033대씩 적다. 코드네임 G로 시작하는 새로운 7시리즈가 2015년 말, 역시 코드네임 G의 신형 5시리즈가 올해 출시됐음을 감안하면 두 차 모두 벤츠 S/E 클래스의 위세를 좀처럼 뛰어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엔진 기통수별 판매 분포에도 유의미한 차이가 있다. BMW 7시리즈는 지난해 팔린 3,293대 중 6기통 모델(2,806대)이 85.2%, 8기통 모델이 14.8%(487대)를 차지했다. 반면 벤츠 S 클래스는 같은 기간 판매된 6,351대의 S 클래스 중 6기통 모델이 68.3%(4,335대), 8기통 모델이 28.6%(1,815대)를 점유했다. BMW 브랜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5시리즈는 디젤 파워트레인에의 편중이 걱정스럽다. 지난해 팔린 1만7,179대 중 76.5%(1만3,134대)가 디젤 모델로 가솔린 모델이 오히려 51.5%(1만1,576대)로 더 많았던 E 클래스와 대비된다. 올해는 디젤:가솔린 비중이 65.2:34.8%로 다소 개선됐지만 벤츠(41.1:58.9%)에 비하면 여전히 디젤 엔진 쏠림 현상이 크다.



여기에 올해 벤츠에 앞선 C 세그먼트 제품군도 기존 FR 설계의 118d가 62.1%를 차지한 반면 새로운 FF 플랫폼 모델(액티브 투어러, X1)의 판매 비중은 34.4%에 그치고 있다. 이는 볼륨 확대를 겨냥한 전략 상품에 대한 시장 반응이 생각보다 뜨겁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같은 맥락에서 5시리즈와 7시리즈의 예상 밖 성적도 BMW에는 뼈아프다. 두 제품 모두 기존 모델의 단점으로 지적된 주행품질 문제를 상당히 높은 수준까지 끌어올린 야심작인 까닭이다.



최근 BMW의 부진은 디자인과 라인업의 보수화, 그리고 제품 전반의 품질 저하 등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부진이 오래 지속될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최근 10년 BMW그룹의 연구개발(R&D) 비용 추이 속에 힌트가 있다. BMW그룹은 매년 매출대비 5% 초반대의 금액을 R&D에 투자하고 있다. 글로벌 경제위기로 세전이익이 10분의 1로 뚝 떨어진 2008~2009년에도 이 비중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눈여겨볼 시기는 2011년과 2014년이다. 당시 BMW그룹은 전년도(49억5,620만 유로)보다 약 11억8,000만 유로 늘어난 61억3,540만 유로를 R&D 몫으로 지출했다. 그리고 2014년에는 여느 때보다 많은 5.41%의 비용(약 60억7,800만 유로)이 R&D에 집중됐다. 2011년은 i 브랜드로 대표되는 전기차 사업과 새로운 앞바퀴굴림 플랫폼(UKL) 개발이, 2014년은 기존 틀을 통째로 뜯어고치는 카본코어 섀시의 코드네임 G 모델 플랫폼(G11/G12 7시리즈, G30/G31 5시리즈) 개발이 본격화된 시기다. 새로운 미래를 위해 현재를 혁신하는 준비단계였다고 본다면 최근 BMW의 정체된 모습은 어느 정도 이해되는 부분이 있다.

결국 BMW의 미래는 2010년대 초중반에 투자한 전략사업의 성공 여부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당장의 분위기는 썩 좋지 못하다. i 브랜드 판매는 2014년 1만7,793대, 2015년과 지난해 2만9,000여대에 그쳐 아직은 버는 것보다 까먹는 돈이 더 많다. 의욕적으로 준비한 G 플랫폼과 UKL 플랫폼 신모델에 대한 시장의 뜨뜻미지근한 반응도 영 달갑지 않다.



하지만 G 플랫폼 기반의 제품 변화는 이제 막 시작됐을 따름이고, 앞바퀴굴림 BMW도 차근차근 라인업을 늘려가는 중이다. 그간 약세를 보여온 풀사이즈 럭셔리 시장도 X7 SUV와 8시리즈 쿠페 등으로 경쟁력을 보강해간다. 2013년 i 브랜드 출범으로 시작한 전기차 사업은 기존 i3와 i8의 모델 개선과 함께 모든 제품에 내연기관-하이브리드-전기 버전을 마련하고 이 모두를 동일한 라인에서 조립하는 유연한 생산방식을 만들어간다. 미니 3도어의 EV 버전은 2019년부터 생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김형준 (모터트렌드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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