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원의 Pit Stop] 중국에서 시련 아닌 시련을 겪고 있는 현대차그룹을 보면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남는 기억 하나가 떠오른다. 4년 전 필자가 다니던 미국 회사와 중국 최대의 완성차 업체, 상하이 기차(SAIC)와의 MOU 관련한 식사 자리에서 있었던 일이다. 당시 MOU 이벤트 이후 진행된 식사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배정된 식탁에서 유일한 외국인이자 한국인이었던 필자는 상하이 기차 직원, 그리고 현지 중국 직원들과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중국 자동차 시장에 대한 이야기로 발전해갔고, 중국 소비자들이 인식하는 브랜드들의 순위를 국적별로 따지는 순간까지 이르게 됐다. ‘아, 저는 원래 도요타 캠리를 사려고 했는데 재고가 없어서 현대차 쏘나타를 샀어요. 나쁘지 않더라고요’. 중국 여직원이 말했다. ‘중국내에서 외국 브랜드들에 대한 인식은 어떤가요?’ 필자가 물어봤다. ‘우선 독일 브랜드들의 평가가 가장 좋죠. 프리미엄 업체들이 많으니까요. 그 다음이 일본차에요. 내구성 품질이 워낙 뛰어나니까요.’ 그녀가 말했다. ‘그리고 미국이랑 한국 브랜드들은 대략 평가가 비슷한 것 같아요. 시장에서 비슷하게 쳐요.’ 어쩌면 필자가 한국에서 온 것을 인식했는지 한국 브랜드를 미국과 유사하게 평가해준 것 같았지만, 사실은 그 이하로 보는 것은 아닐까 생각됐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중국 로컬 업체들 것이 있죠.’

대화는 거기까지 예상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이었는데, 그날 대화를 머릿속에 인두처럼 각인시킨 것은 그 다음의 대화였다. 필자와 같은 팀 소속이자 상하이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중국인 동료가 말했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대단해. 우리가 본받아야 하지.’ 무슨 소리인가 했다. 곧이어 그가 말했다. ‘한국 사람들은 자국 브랜드들을 애용하잖아. 한국 제품들은 그런 노력의 일환으로 성장했다고. 우리 중국 사람들도 중국 브랜드들을 애용해 줘야 하지 않을까?’
그의 말에 같은 원형 식탁에 앉아있던 모든 중국 사람들이 머리를 끄떡였다. 같은 회사 동료가 말한 것이라 당시 그 뜻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곰곰이 되새겨 보니 등이 서늘하게 느껴졌다. 짧게 말해, 중국인들은 한국의 경제 성장에 있어 주요 성공 요인으로 강제적이던 아니던 한국 소비자들의 ‘애용’ 때문이라고 보고 있었고, 중국 또한 같은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 날 있었던 일을 일반화시켜 본다면, 중국 소비자들에게 한국차는 독일차처럼 성능 위주이지도 않고, 일본차처럼 내구성 품질이 최상급이지 않으며, 그나마 미국차와 비슷한 특징을 지니고 있지만 결국 한국 소비자들의 구입이 오늘날의 위치까지 도달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중국 소비자들이 같은 논리로 BYD, 지리와 체리와 같은 로컬 브랜드들은 물론 장안기차나 상하이 기차의 로컬 브랜드들을 애용하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타격을 입을 브랜드는 바로 중국과 미국 브랜드 사이에 위치한 한국 브랜드, 즉 현대기아차 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이 지난 2016년 하반기부터 중국시장에서 발생한 현대기아차의 ‘잔혹사’의 이유가 아닐까. 그동안 현대기아차는 물론 우리나라 업체들은 빠른 추종자 전략을 구사하면서 현재의 위치까지 오게 됐다. 반면, 우리는 중국이라는 존재를 만나면서 이러한 전략의 유지가 과연 효과적인지 고민해야 하는 시점에 온 듯 하다. 이미 중국 업체들은 자동차 산업의 경우 합작사 형태를 통해 외국 제휴사들에게 기술과 경영적 노하우를 습득하고 있으며, 뿐만 아니라 로컬 업체들 중 일부는 길리처럼 볼보와 같은 외국 업체를 단숨에 인수해버린다.

짧게 말해, 속도전으로 유기적 성장을 빨리 이룩한 우리는 우리가 성장한 방법을 모방하여 더 빠르게 쫓아오거나 아예 M&A와 같은 비유기적 성장을 통해 성장에 소요되는 시간을 압축시켜버리는 등 다양한 성장 방법을 추진하고 있는 중국 경쟁사들과 마주친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따라서 과거의 방법이 앞으로의 성공을 보장해주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며, 근본적으로 현대기아차가 중국에서 마주친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 한국 자동차 산업의 다음 단계는 무엇이야만 할까? 필자는 그것이 도요타 그룹과 마찬가지로 경쟁사와 전략적, 자본적 또는 기술적 제휴가 해답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똑똑해져야 하고, 현명해져야 한다. 한국 인구의 26배에 해당하는 중국에는 우리의 머릿속으로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시나리오가 전개되고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들보다 시간이나 자본에서 부족한 우리는 중국이 우리의 현 위치를 따라잡을 것으로 예상해야 하며, 예상시간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다만, 이제는 우리가 더욱 현명해져야 하고, 특히 경제 고립주의로 확산되고 있는 글로벌 정치 상황을 고려할 때 제휴는 국가를 초월하면 더더욱 좋다.
지난 2009년, 도요타가 거의 30년간 제휴를 유지하던 제네럴 모터스와의 관계를 청산한 직후 미국에서 급가속 사건이 발생했었으며, 연이어 도요타 대표이사가 미국 청문회에 소환되어 상원의원들 앞에서 눈물을 보였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이후 ‘교훈’을 얻은 도요타는 일본 완성차 업체들과 수많은 제휴를 했을 뿐더러, BMW와 포드 등과도 차세대 자동차 기술과 관련한 제휴를 맺고 있다.

결과적으로 현대기아차가 지금 중국에서 겪고 있는 어려움은 중국이 완전히 자유로운 경쟁시장은 아니며 아직 정부가 통제하는 면이 강하며, 따라서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 시장에 ‘몰빵’하다시피 했던 전략은 수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새로운 사고, 새로운 가능성’ (‘New thinking, new possibilities’)라던 과거 현대차의 광고문구는 지금 더더욱 유효하다. 현대차그룹의 다음 선택을 기대해 본다.
칼럼니스트 박상원 (자동차 애널리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