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합리주의, 실용주의, 독특한 개성을 가진 프랑스 자동차 (2)
생활기업에서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가 된 푸조 (1)
[황욱익의 플랫아웃] 19세기 중엽부터 존재해온 자동차 회사들 중에 지금까지 남아 있는 회사에는 손에 꼽을 정도이다. 메르세데스-벤츠가 최초의 가솔린 엔진 자동차인 페이턴트 모터바겐을 선보이는 동안 프랑스에는 생활기업으로 출발한 푸조가 자동차 제작을 준비 중이었다. 푸조는 처음부터 자동차를 만든 회사는 아니다. 커피 그라인더와 후추통, 각종 농기구, 자전거, 바이크, 라디오, 포탄 등 당시 프랑스 서민들이 필요한 철제 제품은 거의 다 만드는 회사였다.
푸조의 역사는 18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장 피에르 푸조가 프랑스 벨포르에 철강 업체인 푸조 형제 회사를 설립하면서 부터이다. 정곡 공장으로 시작해 주조 공장을 거쳐 본격적인 철제 제품을 시작하기 했을 무렵 푸조는 커피 그라인더와 철제 농기구를 생산하는 작은 기업이었다. 1814년 푸조 형제는 소재를 가열하지 않고 롤러를 이용해 성형하는 가공법인 냉간 압연 시스템을 마련했으며, 시계 정밀 부품까지 사업 영역을 넓혔다. 당시 푸조가 생산하던 제품은 대부분 프랑스 서민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 많았으며 푸조는 생활기업으로 탄탄한 입지를 다진다.

생활기업으로 입지를 다진 푸조가 교통수단에 눈을 돌린 시기는 장 피에르 푸조의 아들인 아르망 푸조가 유학 중에 경험한 자전거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한다. 아르망은 1882년 첫 패니 파딩 타입 대형 자전거인 그랑 비를 출시했고 1차 세계대전 때는 6만 대가 넘는 자전거를 생산한다. 아르망 푸조는 자전거 판매를 발판으로 이제 막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증기기관 자동차에 관심을 갖는다. 당시 증기기관 전문가로 이름을 떨치던 레옹 세르폴레와 협업을 시작한 푸조는 1889년 삼륜차이자 푸조 최초의 자동차인 세르폴레 푸조를 제작해 파리 세계 박람회에서 공개한다.

푸조는 효율이 떨어지는 증기기관을 대신할 내연기관 파트너로 독일의 고틀리프 다임러, 프랑스의 엔지니어인 에밀 르바소와 손을 잡는다. 1890년 이들이 처음 개발한 타입2가 공개됐다. 증기기관 대신 휘발유 엔진과 4륜 휠을 장착한 4인승 타입2는 2.3마력의 출력을 냈으며 최고속도는 16km/h였다. 타입2를 시작으로 푸조는 타입3를 개발하지만 시장에서의 인지도가 높지 않아 고전의 연속이었다.
이 때 푸조가 선택한 분야가 모터스포츠였는데 역사상 최초의 레이스로 기록된 1894년 파리 루앙 레이스에서 타입7이 우승을 하며 이름을 알린다. 1896년 다임러와 관계를 마무리 지으며 자체 엔진 개발에 나선 푸조는 1897년 독일과 프랑스, 스위스의 국경지대이자 유럽 최대 철광석 생산지인 알자스 지역과 가까운 소쇼에 자리를 잡는다.

◆ 자체 엔진 개발과 201의 탄생
푸조 역사상 최초의 자체 엔진을 탑재한 타입15는 여러모로 의미가 깊은 모델이다. 독자 브랜드로 자리를 잡고 1899년에는 니스와 카스텔란, 니스를 잇는 랠리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19세기에 가장 혁신적인 자동차 메이커로 부상하기 시작한다. 1907년 아르망 푸조의 사망 후 1910년 푸조는 모회사인 푸조 형제 회사와 합쳐진다. 이를 계기로 프랑스를 대표하는 대기업으로 성장했으며 1차 세계대전 무렵에는 생산량을 1만대까지 끌어 올린다.

하지만 전쟁은 푸조의 구조를 바꿔놓는 계기가 된다. 전쟁 기간 동안 자동차 대신 탱크를 비롯한 기갑 군수품을 생산하고 이 과정을 통해 푸조는 자본 확대와 대량 생산 시스템에 대한 노하우를 쌓아 유럽에서 가장 큰 자동차 회사로 성장하게 된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불어 닥친 경제 공황은 푸조에게 또 다른 성공 발판이 되었다. 이때 발표된 모델이 201인데, 세그먼트+0+세대의 네이밍이 시작된 시점이다. 경제공황에서 201은 큰 인기를 누렸다. 1930년에는 202와 302가 등장 했으며 대형 모델인 601C 이클립스가 등장했다. 또한 푸조 역사상 빼놓을 수 없는 최초의 하드톱 컨버터블인 402BL 이클립스 데캡포터블이 등장했는데 이 모델은 나치의 프랑스 점령 후인 1941년까지 꾸준하게 판매되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자 푸조는 모든 생산을 중단한다. 전쟁 후 202 생산을 재개하면서 재기에 나섰고 1953년에는 1.5ℓ 엔진을 탑재한 403이 공개된다.
2부에 계속
자동차 칼럼니스트 황욱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