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로에서 지프를 볼 때마다 모압에서의 시간이 떠오른다

[내가 가 본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 멀고 또 멀어도 한 번은 경험할 만하다. 한 번 경험하면 영원한 꿈이 될 거라서. 미국 유타주 모압에서 지프를 타고 놀았던 그 며칠을 아직도 못 잊는다.

서울에서 32시간 정도 걸렸다. 댈러스에서 경유할 땐 토네이도 때문에 몇 시간인가 연착됐다. 콜로라도 서부에 있는 도시 그랜드정션 공항에 내렸을 땐 이미 밤이었다. 거기서 차를 타고 한 시간 이상 달렸다. 그렇게 유타주에 있는 도시 모압에 도착했을 땐 온통 검정색이었다. 사람이 켜놓은 불빛이 별로 없었다. 고개를 들면 눈 속으로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별, 우릴 기다리고 있던 일행들이 미리 피워놓은 모닥불이 전부였다. 따뜻한 스프를 마셨더니 몸이 풀렸다. 그대로 잠들었다가 아침을 맞았을 땐 아주 다른 풍경이었다.



강물이 흐르는 소리에 깼다. 방문을 열고 나갔더니 압도적인 황토색과 파란색. 땅, 산, 하늘, 갑자기 날아가는 거대한 독수리 한 마리. 숙소와 산 사이에는 거대한 강이 있었다. 햇빛이 직설적인 땅이었고, 비현실적일 정도로 고요했다. 옷을 갈아입고 나갔더니 호텔 앞마당에 거의 모든 종류의 지프가 도열해 있었다. 32시간을 날아온 이유였다. 모압은 지프의 땅이었다. 지프에게 맞춤으로 어울리고, 지프라면 아쉬움 없이 즐길 수 있는 땅이기도 했다.



만끽하고자, 우리는 지붕을 떼어낸 랭글러를 타고 다시 숙소에서 한 시간을 달렸다. 입구에는 ‘헬스 리벤지(Hell’s Revenge)’라고 써있었다. 거기서 10분정도 더 들어갔더니 ‘포장도로는 끝났습니다’라고 써있는 표지판이 있었다. 문명은 끝났으니 대자연과 마주해야 하는 지점이었다. 낮고 둥근 바위산이 너울처럼 넘실대는 곳이었다. 훨씬 더 압도적인 황토색이었다. 영화 <127시간>의 배경이었던 곳, 영화의 실제 주인공 애런 랄스톤이 조난당했다가 스스로 오른팔을 자르고 탈출했던 그 땅이 바로 모압이었다.



너울 같은 바위산 위엔 검정색으로 두 줄, 숱하게 이 길을 지나간 자동차들의 타이어 흔적이 남아있었다. 그럼 그 길만 따라가면 될까? 우리는 지프의 오프로드 전문 교관이 고비마다 보내주는 수신호에 100퍼센트 의지했다. 그래야만 했다. 그러지 않으면 위험한 길이었다. 어떤 순간엔 시야에 하늘밖에 안 들어왔다. 가파른 경사를 오르느라 차가 눕다시피 해서, 헤드라이트가 거의 하늘을 향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또 다른 순간엔 왼쪽 팔꿈치가 바위로 된 바닥을 긁을 것 같았다. 그대로 창문을 열고 손을 뻗으면 손가락 끝으로 바닥을 만질 수 있었다. 차체가 왼쪽으로 격하게 기울었다는 뜻이었다. 오른쪽 앞바퀴는 허공에 떠 있었다.



오프로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혼자서 주파할 수는 없는 길이었다. 우리는 앞서 가는 또 다른 지프의 차체가 움직이는 모양을 보고, 우리가 그 길을 지날 때 ‘밖에서 보면 그런 모양이겠거니’ 예측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 상태로 내려서 우리가 탄 지프가 어떤 상태인지 확인할 순 없었으니까. 교관의 수신호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교관은 이렇게 말했다. “시야가 어떻게 되든 절대 불안해하지 마세요. 차를 믿으세요. 제 신호를 따라오세요. 그럼 안전합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아까보다 더 가파른 언덕을 오를 땐 거의 물구나무를 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 뒷통수와 지면 사이의 각도가 비현실적이었다. 자동차 안에서는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이러다 차가 뒤로 넘어가는 건 아닐까?’ 생각할 때 교관의 손가락이 집중했다. 오르막을 주파한 후에는 내리막이었다. 그럴 땐 또 이런 생각. ‘이러다 차가 앞으로 고꾸라지는 건 아닐까?’



내리막을 주파하고 평지에 닿았을 때 우린 차에서 내렸다. 우리가 넘어온 길을, 그제서야 우리 시각으로 볼 수 있었다. 눈으로 보면 45도 정도의 내리막이었다. 교관의 손가락을 따라 핸들을 돌려 피했던 곳에는 타이어가 빠질 수도 있는 거대한 균열이 있었다. 이 신비로운 지형은 도대체 언제 생긴 걸까? 혹시 백악기 즈음에는 거대한 공룡들의 놀이터가 아니었을까? 그런 땅을 우리는 랭글러로 주파했다. 체로키와 그랜드 체로키도 함께였다. 당시 살 수 있었던 모든 지프가 그 바위산 위를 함께 달렸다. 한 나절 익숙해진 후에는 모든 게 모험 같았다. 공룡이 놀던 땅에서 지프를 타고 노는 것 같았다.



섭씨 30도 정도, 여전히 직설적으로 내리쬐는 태양, 달릴 때마다 흙먼지가 일어나는 건조함. 헬스 리벤지에서 탈출해 나왔을 땐 깨끗하게 포장된 도로가 지평선 끝까지 이어져 있었다. 아침과는 확연히 다른 기분이었다. 세상 모든 길이 지나치게 순탄해 보였다. 이젠 아스팔트 위를 달리는 게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지프가 진정으로 속한 땅은 험하고 또 험해야 할 것 같았다. 사람은 물론 다른 어떤 차도 달릴 수 없는 지형이어야 옳을 것 같았다. 그때, 모압 곳곳에는 사륜구동 자동차가 아니면 들어갈 수 없다는 의미의 표지판이 서 있었다. 써 있기로는 “4x4 ONLY”였지만 그림은 동그란 헤드램프 두 개였다. 영락없는 지프의 상징이었다. 거기가 지프의 땅이었다.



서울에서 달리는 모든 지프를 볼 때마다 모압에서 달렸던 몇 년 전, 그 거대한 풍경의 오르막과 내리막이 생각난다. 그 길이 인생 같았다. 때론 불안하고 대체로 무서워도 길은 반드시 있었다. 그러니, 어쩌면 여기서도 곧 출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때 그 침착함을 기억한다면. 지프 같은 실력을 갖출 수만 있다면



칼럼니스트 정우성(<에스콰이어> 피처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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