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개척자들은 이곳을 한 번 건너가면 다시 올 수 없는 곳으로 불렀다.
[내가 가 본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 지구에서 자동차로 통과할 수 있는 가장 어려운 오프로드 코스는 어디일까? 이를 두고 많은 의견이 있지만,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루비콘 트레일(Rubicon Trail)이 가장 어려운 오프로드 코스 중 한 곳인 것은 확실하다. 미국 캘리포니아 조지타운에서 레이크 타호까지 약 100km에 걸쳐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오프로드 코스가 펼쳐진다. 그곳을 실제로 달려보면 오프로드의 완전히 새로운 기준이 생긴다.

캘리포니아 레이크 타호 주변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숨이 막히는 곳이다. 족히 수십미터 높이의 나무들이 만든 숲이 압도적인 분위기를 만든다. 그 사이로 인간이 만든 좁은 포장도로가 뻗어있다. 산 능선을 따라 달리다 보면 갑자기 눈앞에 거대한 에메랄드빛 호수가 펼쳐지기도 한다. 자동차 한 대가 겨우 지날 수 있는 너비의 협곡과 낭떠러지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캠핑이나 사이클, 스키 같은 레저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이유로 유명한 곳이다. 하지만 자동차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이곳은 확실한 목적을 제공한다. ‘세상에서 가장 험난한 오프로드 코스’에 도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루비콘 트레일은 룬 호수에서 레이크 타호까지 약 35km 구간을 말한다. 초기 개척자들은 이곳을 가리켜 “한 번 건너가면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뜻으로 루비콘(고대 로마의 속담으로 ‘모험적인 일을 시작할 때나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일’이라는 뜻)으로 불렀다. 그만큼 험난한 지형이다.

루비콘 트레일의 입구는 평범한 오프로드와 평화로운 호수의 모습이다. 그러나 출발 후 1시간이 지나면 생명에 위협을 느낄 만큼 아찔한 코스가 시작된다. 루비콘 트레일의 전체 난이도가 10점이라고 가정하면 입구부터 루비콘 스프링 캠프까지 12km 구간은 약 7~8점. 이후 9~10점 구간은 지프 랭글러 루비콘 기준, 차고를 최소 30cm 이상 올리고 오프로드 장비로 튜닝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코너를 돌 때마다 집채만 한 바위와 나무, 절벽이 앞을 가로막는다. 트레일 입구에서부터 반환 지점인 루비콘 스프링스 캠프까지 약 12km. 포장도로에서 30분이면 주파하는 거리지만, 오프로드 위에서 꼬박 8~10시간 운전해야 겨우 도착할 수 있다. 난이도가 높은 특별한 코스의 경우 언덕 하나를 통과하는데 40분~1시간씩 걸린다. 그나마 트레일 가이드라는 험로 전문가가 있어야 가능하다.

트레일 가이드는 마치 오프로드 코스의 신호등 같다. 멀리에 노란색 옷이 보이면 모든 차가 일렬로 쭉 정지한다. 그리고 신호를 받아 교차로를 지나듯 한 대씩 가이드의 지시대로 코스를 넘는다. 트레일 가이드가 서 있다면, 일단 쉽게 지나갈 코스는 아니다.

공장에서 막 만들어져서 곧바로 이곳을 통과할 수 있는 차는 많지 않다. 그중에서 이곳에 가장 완벽하게 대응할 수 있는 차가 지프 랭글러다. ‘랭글러 루비콘’이라는 이름도 실제로 이곳에서 테스트하고 만들었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런 본격적인 오프로드 코스에서는 랭글러에 전자식 스웨이 바가 한몫을 톡톡히 한다. 버튼을 누르면 좌우 바퀴를 연결하는 스트럿이 해제되고 좌우 바퀴의 높낮이가 따로 논다. 그러니까 한쪽 바퀴가 구덩이로 내려가고 다른 한쪽 바퀴가 바위로 올라가는 상황에서도 차가 뒤집어지지 않고 수평을 이루며 전진할 수 있다.

급경사에 좁은 길을 따라 바위가 사방으로 뻗어있다. 게다가 중간마다 밀가루같이 부드러운 모래에 타이어가 빠지고 미끄러진다. 일반 자동차라면 주행할 생각도 못 낼 환경. 하지만 랭글러는 이곳이 놀이터다. 전자제어 잠금 앞/뒤 다나 44 차축과 록 트랙 트랜스퍼 케이스로 바퀴의 구동력을 고정할 수 있다. 쉽게 말해 4로(4-LOW) 기어에서 앞뒤 50%, 혹은 각 바퀴로 25%씩 동력이 고정된다. 따라서 바위를 오를 때 앞바퀴가 구동력을 잃거나 앞바퀴와 뒷바퀴 한쪽씩 공중에 뜨는 상황에서도 충분한 힘을 발휘해 코스를 탈출할 수 있다.

오프로드 코스를 9시간이나 달리면서 이 차의 한계를 모두 시험해볼 수 있다. 일부 난코스에서는 차의 주행 실력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었다. 차에 달린 사이드 록 트레일과 하부 스키드 플레이트를 바위에 대고 미끄럼을 타듯 바위를 타고 넘기도 했다. ‘콰지직!’ ‘쾅!’ ‘스르륵!’ 돌이든 나무든 랭글러가 지나갈 때 주변 장애물이 차체 하부와 사이드 록 트레일을 긁어댔다. 여러 개의 난코스를 지나 저녁노을이 질 때 드디어 목적지인 루비콘 스프링스 캠핑장에 도착할 수 있다.

루비콘 스피링스 캠핑장은 대자연 그 자체다. 전화나 인터넷은 애초 기대할 수 없다. 전기도 발전기를 통해서 식당 주변에 겨우 공급될 뿐이다. 수도나 샤워시설도 없다. 물을 정화한 탱크에서 고무 팩에 물을 받아서 쓴다. 낮 동안 햇볕에 널어둔 고무 팩이 따듯해지면, 저녁에 미지근한 물로 샤워를 할 수 있다. 잠자리는 당연히 텐트다. 간이침대와 침낭이 이곳의 호텔이다. 곰 출몰 지역이기에 모든 음식물은 꼭 캠핑장과 거리가 있는 식당 주변에 두어야 한다. 외부와 단절된 환경이고 모든 것이 불편하지만, 그 어떤 곳에서도 느낄 수 없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다음날, 루비콘 트레일에서 나오는 길에는 레이크 타호를 만날 수 있다. 특히 서쪽에 위치한 '에메랄드 베이'의 호수 빛깔은 감탄을 자아낸다. 레이크 타호 주변의 능선을 차로 달리며 호수를 바라보고 있으면 대자연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알 수 있다. 여기에선 어떤 순간이든 오만(傲慢)이 허락되지 않는다. 아무리 뛰어난 자동차와 실력있는 운전자라도 대자연이 딱 허락한 만큼만 갈 수 있다. ‘최고의 오프로드 코스’라는 수식이 아깝지 않은 곳이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김태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