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주의, 실용주의, 독특한 개성을 가진 프랑스 자동차 (6)
자동차를 기반으로 다양한 운송 기구를 생산한 르노 (1)

[황욱익의 플랫아웃] 올해로 설립 119주년을 맞이한 르노는 우여곡절이 많은 자동차 회사이다. 푸조가 속해 있는 PSA 그룹과 함께 프랑스를 대표하는 자동차 기업인 르노는 보다 다양한 자동차를 생산하며 몸집을 불려왔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국영화 되었다 1994년 민영화되기까지 르노는 승용차를 비롯해 전차, 버스, 트럭, 트랙터 등 바퀴가 달린 거의 모든 것을 생산했다. 현재는 미쓰비시와 닛산, 르노 삼성 등 굵직한 글로벌 자동차 회사를 거느린 거대 자동차 기업으로 자리를 잡았으며, 전기차와 차세대 이동 수단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1898년 루이, 마르셀, 페르낭 등 르노 3형제가 설립한 르노는 대중적인 유럽 자동차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회사이다. 호기심 많은 엔지니어였던 루이 르노는 우연한 기회에 친구들과 내기를 했고 게임을 위해 만든 부아트레가 가파른 언덕을 오르내리며 내기에 이기게 된다. 우연치 않은 기회였던 이 내기가 프랑스를 대표하는 거대 글로벌 자동차 기업의 시발점이 된다. 내기에서 이긴 루이 르노는 곧장 12대의 부아트레를 주문 받았고 이때 생산된 부아트레가 르노 역사의 시작이다.



1898년부터 1903년까지 5년 동안 생산된 부아트레의 타입은 무려 8가지나 됐다. 최초로 만들어진 타입 A는 루이 르노가 1898년 직접 디자인 했으며 타입 B는 1899년 등장했다. 타입 A를 기반으로 지붕과 두 개의 문을 달아 지금의 세단 형태를 갖춘 타입 B는 부아트레 최초의 세단이라 불리기도 한다. 1900년에 나온 부아트레 타입 C는 르노의 첫 번째 4인승 차였다. 최초의 세단 설계와 함께 르노는 당시 자동차들의 구동계에 사용하던 체인 전달 방식을 기어를 이용한 직접 전달방식으로 바꾸기도 했다. 이후 부아트레는 타입 D와 타입 E, 그리고 타입 G, 타입 H, 타입 J까지 나왔다.

르노가 자체 엔진을 제작한 시기는 1903년부터며 1905년에는 대량 생산 체재를 갖췄으며, 버스와 화물차를 비롯해 항공용 엔진과 탄약, 탱크까지 제작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춘다. 미리터리 마니아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TF-17은 최초의 회전식 포탑을 채택한 탱크로 이 역시 르노에서 제작한 것이다.

AG1의 등장은 프랑스의 자동차 문화를 바꿔놓는 시발점이 되었다. 르노가 눈을 돌린 시장은 택시로 쓰이던 파리의 렌트카였다. AG1은 렌트카 업체를 통해 무려 1,500대가 공급되었으며 1891년 고안된 택시미터가 장착되었다. 미국에서도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대도시 뉴욕에서 르노의 인기는 애초 르노가 생각했던 것 보다 높았고 1908년 한 해에만 무려 3,575를 생산해 10년 만에 프랑스 최대 자동차 회사로 성장한다.



◆ 모터스포츠 진출과 다양한 라인업 확보

대량 생산 체재를 확립한 후 르노는 모터스포츠로 눈길을 돌린다. 유럽을 중심으로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한 모터스포츠는 자동차 메이커의 기술력 경쟁의 장이 되었다. 1903년 열린 파리 마드리드 레이스에 르노는 루이와 마르셀 두 형제가 참가했는데 안타깝게도 경기 도중 마르셀이 사고로 사망하게 된다. 루이 혼자 나머지 일정을 소화하며 첫 레이스의 우승을 거머쥔다. 1906년에는 또 다른 형제인 페르낭이 건강상의 이유로 회사를 떠나고 르노는 루이가 이끌게 된다.



르노는 같은 해 르노 자동차로 회사명을 변경하고 승용차와 상용차, 탱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라인업을 선보인다. 르노가 자동차를 기반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요인에는 대량 생산 체재가 있었는데 루이는 이 시스템을 매우 효율적으로 사용했다. 또한 엔지니어링 기반의 다품종 생산 체재와 결합하면서 르노는 다양한 소비자들의 요구에 부합하는 회사로 성장한다.



1914년 9월 1차 대전이 발발하자 르노는 심각한 경영난에 직면하게 된다. 고민하던 르노는 당시만 해도 매우 비쌌던 탄피 만드는 기계를 저렴하게 고안해 프랑스 정부군의 75㎜ 포탄을 제작해 납품하면서 경영난을 극복했다. 1918년 르노 FT 탱크를 대량 생산하기 시작했으며 루이 르노는 1차 대전이 끝난 1918년 이후 사업 영역을 다양한 분야로 확장했다. 특히 탱크 제조에서 얻은 기술 노하우를 농업에 활용해 전쟁 후 유럽 각국이 농업증산에 적극 나섰다.

1922년에 루이 르노는 회사명을 ‘쏘시에떼 아노님 데 쥬진 르노(SociétéAnonyme des Usines Renault)’로 변경했다. 1년 뒤인 1923년에는 르노의 차를 보다 쉽게 알아볼 수 있게 처음으로 차체 전면에 로고를 부착 했고, 가운데 르노라는 이름이 들어간 원형 그릴을 채택했다.



1927년 등장한 비바식스 PG1은 합리적인 스포츠카로 주목을 받게 된다. 가벼운 차체에 6기통 3,180㏄ 엔진을 장착해 뛰어난 성능을 자랑했다. 이 엔진은 2차 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 그랑프리 경기에서 사용했으며, 1931년에는 디젤 엔진을 상용차에 처음 적용했다.

1930년대 중반 대공황이 프랑스에 찾아오면서 모든 자동차회사가 어려움을 겪는다. 르노는 항공, 군수, 농업 부문으로 다각화해 대공황을 극복했으나 이후 항공사업 부문은 매각하고 자동차 사업에 집중하게 된다.

(2부로 이어집니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황욱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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