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세단의 대명사 3시리즈는 연간 55만대 팔린다.
준수한 니어 럭셔리 세단 G70는 내년 판매 6만대가 목표다.
G70 6만대 vs 3시리즈 55만대
[김형준의 숫자 깨먹기] 다음 자동차 칼럼 연재 필진 중 한 명인 나윤석 칼럼니스트와 나는 좀처럼 대립하는 경우가 없다. 그가 나보다 훨씬 실력 있고 나이도 많은 형님이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자동차를 보는 눈, 업계 동향에 대한 생각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가끔씩 타협점이 보이지 않을 만큼 팽팽하게 논쟁을 하곤 하는데, 얼마 전 출시된 제네시스 G70를 함께 타보면서 얘기 나눌 때가 바로 그랬다. 결론부터 말해 나는 이만하면 충분하다는 쪽이었고, 그는 암만해도 아쉽다는 쪽이었다.
차 자체에 관해서라면 그도 나도 만족했다. 인테리어는 소재와 조립품질, 구성 모두 고급감이 물씬했고 주행품질과 성능은 기대 이상으로 수준이 높았다. 가볍지 않은 무게(공차중량 1,775kg)의 차체가 단단한 서스펜션을 내리누르면서 만들어내는 묵직한 승차감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뒷자리의 좁은 발 공간, 고급 내장재의 끝마무리, 파워트레인의 간헐적인 신경질 등 단점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전반적인 완성도는 이 차가 경쟁할 카테고리의 수준에 충분히 다다라 있었다.

이견은 거기서부터였다. 나는 안팎으로 준(準) 고급차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니 충분하다는 주장이었다. 반면 나윤석 칼럼니스트는 그 카테고리 안에서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뾰족한 무언가가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우리는 시승을 마칠 때까지 각자의 생각을 꺾지 않았다. 대수롭지 않은 말싸움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이는 G70라는 새로운 자동차, 더 나아가선 제네시스라는 신생 고급차 브랜드의 성패까지 가늠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제네시스 브랜드는 2015년 말에 출범했다. 한국 자동차 기업 중 처음으로 선보이는 독립 고급차 브랜드였다. 하지만 제네시스 브랜드의 독립 선언은 황급히 결정된 기색이 역력했다. 제품 출시 계획,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공개했지만 정작 중요한 판매 전략은 미정인 채였기 때문이다. 브랜드 출범과 함께 출시된 라인업도 아쉬움이 컸다. 플래그십 모델인 EQ900(G90)는 제네시스 엠블럼을 붙인 에쿠스였고, G80는 본명을 브랜드에 내주고 개명한 2세대 제네시스 세단이었다. 그에 비해 G70는 제네시스의 세 번째 제품이지만 브랜드 출범 이후 등장하는 첫 번째 완전 신형 모델이기도 하다. 제네시스 브랜드의 시작은 이 차로부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G70이 뛰어드는 무대다. 프리미엄 D 세그먼트는 소위 니어 럭셔리(near-luxury)로 분류되는 시장이며 콤팩트 스포츠 세단이라 부르는 부류도 여기에 속한다. 그리고 익히 아는 것처럼 콤팩트 스포츠 세단 카테고리는 독일 프리미엄 3사 모델, 특히 BMW 3시리즈의 위세가 대단하다. 그간 ‘타도 3시리즈’를 외치며 등장한 경쟁 모델들은 많지만 그중 성공한 사례는 거의 없다. 아니 전무하다고 해도 좋다.

그들 스스로 “3시리즈보다 잘 달린다”고 주장하는 재규어 XE의 지난해 유럽 판매량은 채 2만5,000대가 안 된다. 구형 3시리즈를 벤치마크한 캐딜락 ATS는 미국에서 한창 좋을 때 3만8,000대 가량 팔렸고 지난해는 2만1,000여 대에 그쳤다. 3시리즈? 지난해 유럽에서만 14만4,000대 이상, 미국에선 10만6,000여 대(3/4시리즈 합계)가 팔렸다. 전 세계 판매량 합계는 약 41만1,000대, 4시리즈까지 포함하면 55만 대에 육박한다. 제네시스 G70의 내년 판매 목표는 한국에서 1만5,000대, 전 세계 통틀어 6만대 가량이다. 갓 태어난 G70가 3시리즈와 정면 승부?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우리는 G70의 성격이 3시리즈보다는 C 클래스 쪽에 가깝다고 결론 내렸다. 스포츠 성향보다는 합리적인 고급, 즉 니어 럭셔리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줘서다. 이는 G70과 같은 신생 브랜드가 시장에 안착하기에 유리한 방향이기도 하다. 차의 면면은 국내에서 3,000만원 중후반의 폭스바겐 골프부터 3시리즈, C 클래스, A4 주력 모델의 수요까지 흡수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해외 소비자에겐 G70라는 존재만 각인돼도 성공이다. 그만한 자질은 충분히 갖추고 있다.

하지만 후발주자다운 모험심은 찾아보기 어렵다. 일본 대중차 회사들의 프리미엄 브랜드들과 달리 제네시스에겐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브랜드 론칭이 뒤늦기도 했고 자동차 세상이 빠르게 자율주행-커넥티비티-전동화의 시대로 달려가고 있어서다. 나윤석 칼럼니스트가 아쉬움을 토로한 까닭도 여기 있다. 제네시스가 번듯한 프리미엄 브랜드로 성장했을 즈음이면 기존 프리미엄 브랜드들은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저만치 달려 나가고 있을 터다. 재규어는 이미 전통적인 방식으로 더 이상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고 빠르게 태세를 전환해 전기자동차 분야에 공을 들이고 있다. 포뮬러 E 경주에 누구보다 먼저 뛰어들었고, 1년 뒤면 크로스오버 SUV i-페이스가 고객 인도에 들어간다.
나는 여전히 후발주자인 G70의 보편타당한 고급함을 지지한다. 바짝 날을 세우거나 파격을 감행하는 건 어느 정도 기반이 다져졌을 때 효과가 더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햇병아리 브랜드 제네시스가 G70라는 차를 다루는 방식, 그리고 G70를 통해 표현한 브랜드 색깔이 오래된 유럽 프리미엄 브랜드보다 더 전통적이고 다소곳한 걸 보면 언제 커서 제 앞가림하고 살려나 싶긴 하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김형준 (모터트렌드 편집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