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희의 자동차 잡학(雜學)] 자동차는 상품으로 볼 때 매우 복잡하다. 일상생활과 관련이 깊은 도구이자 어떤 사람에게는 열망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한 번 물건을 산 것으로 끝이 아니라 운행하는 과정에서 세금, 기름값, 정비 및 관리 등 돈이 추가로 들어간다. 구매부터 사용, 나중에 차를 다시 팔 때까지 전 과정에서 들어가는 비용은 차를 유지하는데 큰 영향을 미친다. 게다가 때 맞춰 세금을 내거나 주차와 사고 처리, 정비 등 돈 이외에 신경 써야 할 부분도 제법 많다. 이렇게 자동차를 소유하는 것은 생각보다 여러 부분에 복잡한 일이다.

때문에 자동차 사용자 혹은 소유주가 이런 번거로움을 가능한 느끼지 않고 편하게 쓸 수 있도록 많은 방법들이 제시되어 왔다. 특히 이는 금융 프로그램으로 많이 나타났는데,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등록, 보험, 세금 등과 일부에서는 차량 관리까지 쉽게 처리할 수 있다. 차라는 물건의 소유권이나 그에 필요한 돈을 어디에서 조달하느냐, 또 직접적인 관리를 대행해주면서 별도의 수익을 얻는 회사들이 생겼다.
당장 국내만 해도 여러 금융사들이 리스나 할부 등을 제공한다. 리스는 금융사 명의로 차를 등록하고 사용자에게 임대료를 받는 형식인데, 운용 리스가 여기에 해당한다. 반면 돈을 빌려주고 그에 대한 이자를 받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금융 리스나 할부가 그렇다. 렌터카는 자신의 회사로 등록한 후 차를 빌려주는 건데, 운용 리스와 내용은 거의 비슷하지만 자동차 등록 주최가 다르다고 생각하면 된다. 때문에 렌트카 회사만 쓸 수 있는 특수한 자동차 번호(하, 허, 호)를 사용한다.
그럼에도 이런 계약에는 제약이 크다. 우선 한번 차를 정하면 기간이 길다. 짧게는 2년부터 일반적으로 3년이나 5년 동안 같은 차를 타야 한다. 또 계약 조건에 따라 기간이 만료되었을 때 그 차를 무조건 인수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역시나 계약 조건에 따라 자동차의 정비가 포함되기도, 혹은 운전자가 직접 모든 것을 챙겨야 하는 경우도 있다. 장기 계약을 통한 렌트 같은 경우, 실제 차를 구입해 보유하는 것과 비교할 때 세금 처리 등이 쉽고 총금액에서 이익을 보는 경우가 있지만 이것도 계약 기간이 길 때의 이야기다. 그래서 단순하게, 월 얼마씩만 내면 등록과 관리 등을 신경 쓰지 않고 차도 쉽게 바꿔 탈 수 있는 임대 사업이 있긴 했지만 고성능 차 등 차종이 매우 제한적이었고 비용도 고가였다.

◆ 일정 금액 내고 22개 모델 자유롭게 교체해 사용
지난 10일에 포르쉐 미국 법인이 발표한 포르쉐 패스포트(Porsche Passport) 프로그램은 이런 문제를 상당히 해결해 획기적이다. 월에 2천 달러(약 225만 원) 또는 3천 달러(338만 원)를 내면 기간에 상관없이 마음껏 차를 빌려 탈 수 있다. 출발(Launch)로 불리는 2천 달러 프로그램에는 포르쉐 모델 중 상대적으로 차 값이 싼 카이엔 기본형, 박스터, 카이맨과 마칸이 해당된다. 가속(Accelerate)이라는 3천 달러 프로그램에는 911 카레라 S와 파나메라 4S, 마칸 GTS, 카이엔 E-하이브리드 등 모두 22개의 핵심 모델들이 포함된다.
스마트폰에 포르쉐 패스포트 앱을 내려 받고, 신용도 등 사전 승인 절차를 거친 후 프로그램에 참여가 가능하다. 앱을 통해 타고 싶은 차를 고르면 집이나 직장 등 원하는 곳으로 전문 기사가 직접 차를 가져다준다. 이 프로그램에는 등록비, 보유 세금과 100만 달러 한도의 보험 등이 모두 포함되고, 정비에 대한 것까지 모두 알아서 해준다. 또 긴급 출동과 세차를 포함한 차량 관리도 함께 지원한다.

결국 오너는 앱으로 가능한 차를 예약한 후 편하게 받아서 말 그대로 ‘기름만 넣고’ 타면 된다. 차를 바꾸고 싶다면 역시 앱을 통해 다른 차를 고른 후 원하는 때 받으면 된다. 원하는 차를 마음대로 바꿔 탈 수 있으니 주말 패밀리 여행을 위해서는 카이엔을, 스포츠 주행을 원한다면 911이나 카이맨을 요구하면 된다. 일정한 돈을 주는 것으로 받는 서비스로는 획기적이다.
이는 비용면에서도 상당히 유리한 것으로 보인다. 3천 달러짜리 ‘가속’ 프로그램을 3년 동안 사용한다고 했을 때, 총 비용은 약 1억2천1백만 원이 되는데, 이 기간 동안 리스트에 있는 차들(평균 가격 약 1억 7천)을 쓴다면 직접 소유하는 것보다 훨씬 낮은 비용으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용 용도나 필요한 부분에 따라 마음대로 바꿔 타면서도 돈이 적게 든다면, 이 정도 돈을 지불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매력적이다.

또 포르쉐 입장에서도 낮은 비용으로 많은 사람들이 자사 차를 경험한 후에 판매가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도 있을 것이다. 장기적으로 쓰지 않더라도 딱 338만 원을 내고 한 달 내내 포르쉐의 거의 모든 차종을 마음대로 바꿔 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매력적인 일인지 생각해보면 이 프로그램의 가치를 알 수 있다.
아직까지는 미국 애틀랜타 시에서만 시행하는데, 이는 포르쉐의 미국 법인이 있어 직접 차를 관리할 수 있고 또 앱을 개발한 클러치 테크놀로지(Clutch Technologies)가 위치한 곳이기 때문이다. 미국 법인장인 클라우스 젤머에 따르면 일단 아틀랜타 지역에서 시행하고 다른 도시 및 시장에서 적용할지 여부는 추후에 결정할 것이라고 한다.

사실 아직까지 차를 빌려 쓰는 것과 소유하는 것에 대해 어느 쪽이 더 나은지에 대한 결론은 없다. 향후 자율 주행 기술과 전기차 등의 발전에 따라 ‘자동차’라는 공산품을 사고 쓰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로써의 교통수단(Transportation-as-a-Service, Taas)이 더 강세를 이룰 것이라는 예측이 있다. 때문에 차를 사용하는 사람이 그 ‘물건’을 소유하고 애정을 주며 관리할 것인가, 아니면 말 그대로 교통수단의 하나로 편하게 쓸 것인가 사이에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포르쉐의 패스포트 프로그램은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소유라는 개념을 완전히 제외하고, 사용자의 필요에 따라 차를 고르고 쉽게 받아 쓸 수 있게 만든 점은 매우 획기적이다. 성공 여부에 따라 추후 소유에서 사용의 관점으로 바뀌는 계기가 될 가능성도 높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이동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