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 올린 부가티 (2)
(1부에서 계속됩니다)
[황욱익의 플랫아웃] 에토레가 없는 부가티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었다. 경제 공황을 버티기에 부가티의 재정 능력은 한계가 극명했고, 유럽의 귀족들이 몰락함에 따라 그 여파가 점점 커졌다. 버질 엑스너와 롤랑 부가티가 동분서주 뛰었지만 부가티를 살리기에는 역부족이었고 1963년 공식 파산을 선언한다. 이후 부가티는 이탈리아 사업가의 손을 거쳐 현재는 폭스바겐 그룹 산하에 있다. 다행히 엔진 제작 부분은 스페인의 히스파노 스이자에서 인수해 근근이 명맥을 이었으나 히스파노 스이자 역시 1968년 프랑스의 항공업체 스네크마에 인수되었다. 상표권이 복잡했던 부가티의 이 부분은 샤프란 그룹 소속으로 현재는 비행기 착륙장치를 제작하고 있다.

◆ Automobili Bugatti S.p.A.
롤랑 부가티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자동차 회사로 부가티는 20년 넘게 표류했다. 그러나 부가티의 가치(파산 전에 제작한 자동차들의 가치)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높아졌고 이를 노리는 기업들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오일 쇼크와 경제 공황을 넘기면서 숨 고르기에 들어간 기업들은 호시탐탐 부가티 인수를 계획했지만 쉽지만은 않았다. 이때 나타난 인물이 이탈리아 출신 사업가인 로마노 아르티올리로 그는 1987년 부가티의 상표권을 인수하고 Automobili Bugatti S.p.A.를 설립한다. 하지만 이 회사는 이름만 부가티일 뿐 골수 마니아들로부터는 지금도 철저하게 외면 받고 있다.
이탈리아 모데나에 터를 잡은 로마노는 새로운 모델 구상에 들어갔다. 부가티가 추구하는 최고 성능의 차를 목표로 개발에 들어간 EB110은 1991년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EB110은 부가티 역사상 가장 참혹한 모델이 된다. 꼼꼼한 마무리와 최고의 성능을 상징했던 부가티는 이탈리아 디자이너 마르첼로 간디니가 프로토타입 디자인을 담당했지만 팬들과 컬렉터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더군다나 프랑스 고급차를 대표하는 부가티의 디자인을 피닌파리나에서 람보르기니 디자인을 담당했던 마르첼로 간디니가 담당했다는 점은 역효과로 다가왔다. 결국 부가티는 목표대수도 제대로 채우지 못한 139대의 EB110만 생산한다.

V12 쿼드터보(4개의 터빈) 엔진을 미드십에 장착한 네 바퀴 굴림의 EB110은 604마력의 출력을 냈으며 정지에서 100km/h까지 가속하는데 3.2초가 걸렸다. 다행히 이 부분은 에토레 부가티가 추구하던 부가티의 철학에(세계에서 가장 빠른차) 부합했지만 로마노가 이끌던 부가티는 1995년 또 다시 파산한다.
EB110의 손실을 만회하려던 로마노는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해 로터스 인수까지 손을 뻗쳤으나 불어 닥친 경제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부가티를 포기한다. 파산 당시 공장에는 EB110의 섀시와 부품이 남아있었는데 독일의 튜너 다우어가 이를 사들여 다우어 EB110 SS로 5대를 생산했으며 나머지는 B 엔지니어링이 인수해 에도니스로 개발되었다. E110의 EB는 에토레 부가티를 상징하며 로마노는 1996년 로터스를 말레이시아의 자동차 회사인 프로톤에 매각했다. 여담으로 로터스의 간판 모델인 엘리스는 로마노의 손녀 엘리사 아티올리의 이름에서 따왔다.

◆ Bugatti Automobiles S.A.S.
1998년 부가티의 상표권을 인수한 회사는 독일의 폭스바겐이었다. 대중차 브랜드인 폭스바겐이 부가티를 인수했다는 사실은 자동차 업계에 큰 충격이었다. 여기에 부가티의 고향이라 불리는 몰스하임에 부가티 전용 공장을 짓고 부가티의 철학을 충실히 계승하는데 초점을 두었다. 부가티 인수에는 페르디난트 피에히의 ‘고성능 주의’가 큰 작용을 했는데 지금까지도 폭스바겐이 부가티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 중에 하나다.

사실 폭스바겐 입장에서 부가티는 적자만 가득한 브랜드였다. 인수 후 7년 만에 등장한 베이롱은 양산차 최초로 1000마력과 시속 400km를 돌파했고 자동차 역사에 남을만한 기록을 여러 개 작성했지만 적자를 줄이지는 못했다. 베이롱 한 대당 폭스바겐이 떠안는 적자는 비공식적으로 60억 정도로(일본의 거품경제 시절 혼다 NSX와 닛산의 스카이라인 GTR의 대 당 손실 비용이 1,500만 원 정도) 돈 벌이가 안 되면 과감히 포기하는 독일 기업들이 추구하는 방향과는 괴리감이 있었다. 더군다나 완전 독립 브랜드가 아닌 대중차 메이커인 폭스바겐 산하에서 만들어지는 부가티는 중동이나 중국의 신흥 부호들에게 인기가 있었다는 점 역시 부가티 컬렉터들에게는 별로 반갑지 않은 일이었다.

반면 자동차 투자가들에게 부가티 베이롱은 일 년에 1억씩 뛰는 우량투자 상품이었다. 1001마력인 베이롱 16.4를 시작으로 그랜드 스포츠, 슈퍼 스포츠, 그랜드 스포츠 비테스에 왔을 때 엔진 출력은 무려 1200마력까지 올라갔다. 그 외 푸어 상 같은 스페셜 모델들을 발표하며 베이롱 가치는 천정부지로 올라갔다. 이들 모델의 가치가 높아지는데는 부가티가 갖는 상징성이 큰 작용을 했다. 카본으로 제작된 보디와 세계기록을 모두 갈아 치우는 W16 엔진의 성능, 부가티 만의 특별함은 에토레가 추구하던 자동차 철학이 21세기에 맞게 형상화 되었다.

2016년에는 1999년 컨셉트카로 등장했던 시론이 생산에 들어갔다. 500대 한정인 시론은(1500마력) 현재도 생산 중이며 베이롱이 기록한 세계 기록들을 하나둘씩 정복해 가고 있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황욱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