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유신의 업 앤 다운] 요즘 들어 캐딜락 소식이 자주 들린다. 예전과는 다르게 판매 대수 관련 내용이 늘었다. 이제 드디어 캐딜락도 하위권 탈출에 성공하는 때가 왔는가 보다. 계속 지켜봐야 하겠지만 상황이 변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확실하다.

자동차 브랜드의 최우선 목표는 ‘많이 팔기’다. 수익을 내야 회사도 운영하고 비전도 이룰 수 있다. 끊임없이 신차를 내놓고 신기술 개발에 매진하는 이유도 잘 팔기 위해서다. 각 브랜드의 바람대로 모두가 많이 팔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장사를 잘 하는 브랜드가 있는가 하면, 바닥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곳도 꼭 나온다. 바닥권 브랜드를 부정적으로만 평가할 수도 없다. 판매량에는 ‘지역’이라는 변수가 작용해서다. 자기 나라에서는 아주 잘 나가는 브랜드도 해외로 나가면 죽 쑤는 경우가 허다하다. 반대로 자국에서는 별 볼 일 없는데 물 건너가기만 하면 펄펄 날기도 한다.
국내 자동차 판매 순위도 각 브랜드의 해외에서의 명성과는 차이가 난다. 어느 정도는 일치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꽤 된다. 시각 차이가 어떻든 간에 하위권 브랜드가 국내에서 존재 가치를 찾으려면, 많이 팔아서 상위권으로 탈출해야 한다.
2000년대 초중반만 해도 하위권 브랜드가 많았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해서 상·하위권의 격차가 컸다. 하위권은 아니더라도 그저 그런 수준에서 정체 상태인 곳도 좀 있었다. 포르쉐, 캐딜락, 재규어, 랜드로버, 마세라티, 푸조, 볼보 등이 그랬다. 시간을 최근 몇 년 전까지로 당기면 피아트나 시트로엥도 이들 대열에 합류한다.

시간은 흘러 여러 업체가 하위권에서 졸업하고 상위권으로 도약했다. 몇 년에 걸쳐 ‘잘 돼서 떠나기’가 유행처럼 번졌다. 경품 추첨에서 한 명 한 명 선물 받아서 나가듯 하위권에서 벗어났다. 가장 드라마틱한 모습을 보여준 브랜드는 단연 포르쉐다. 스포츠카 브랜드인 포르쉐는 많이 팔리지 않는 게 정상이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포르쉐의 국내 판매량은 두 자릿수에 불과했다(심지어 그 전에는 한 자릿수기도 했다). 그러던 포르쉐가 2005년 세 자릿수를 넘기더니 2011년에는 네 자릿수(1,301대)로 올라섰다. 2015년에는 3,856대로 4,000대 가까이 팔았다. 지난해에는 좀 떨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3,000대 수준을 유지한다.
포르쉐의 이변은 SUV 카이엔의 공이 크다. 수입차 인기의 지표가 되는 서울 강남 여성들의 선호도에서 한동안 카이엔은 최고 자리를 지켰다. 911 같은 납작한 스포츠 쿠페만 있었다면 아마도 포르쉐는 여전히 중하위권을 맴돌았을지 모른다. 때마침 벤츠나 BMW에 질린 사람들이 포르쉐로 눈을 돌린 것도 상위권 도약에 큰 영향을 미쳤다. 포르쉐의 도약은 ‘포르쉐도 이만큼 파는데…’라는 비교 기준을 낳았다. 일반 양산차 브랜드가 스포츠카 브랜드인 포르쉐보다도 못 팔면 되겠느냐는 뜻이다.

포르쉐 이후로 ‘매력적인 신차 출시+강남권 인기+독일 빅3에 질린 고객 유입’ 공식에 맞춰 상위권으로 도약한 브랜드가 생겨났다. 랜드로버가 그랬고 마세라티도 뒤를 이었다. 랜드로버는 고급 라인인 레인지로버가 인기를 끈데다가 브랜드 전체적으로 인지도와 선호도가 급상승했다(지난해 1만 대 넘게 팔았다). 마세라티는 엔트리 세단 기블리가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 공식에 따르지는 않더라도 여러 브랜드가 격변의 성장세를 이어갔다. 재규어와 푸조는 기복이 좀 있지만, 이전에 비교하면 놀라울 정도로 성장했다. 볼보는 럭셔리 이미지를 강화하고 신형 XC90부터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이면서 최근에 가장 핫한 브랜드로 떠올랐다.

오랜 동지들을 다 떠나보내고 남은 브랜드는 캐딜락이다(피아트와 시트로엥은 국내 도입이 그리 오래지 않았으므로 제외한다). 2015년까지 연간 판매량이 세 자릿수를 넘기지 못하다가 지난해 처음 1,102대를 기록했다. 그래 봐야 한 달에 100대가 채 되지 않고, 수입차 베스트셀링 모델의 한 달 판매량에도 한참 미치지 못한다. 다들 결혼해서 솔로에서 탈출했는데 여전히 솔로 신세랄까.

그래도 희망은 보인다. 올해 10월까지 판매량은 1,512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 842대에 비해 2배 가까이 늘었다. 지난 5월에는 215대를 판매해 국내 시장 진출 이래 최다 판매량을 기록했다. 9월에는 216대를 팔아 비록 1대 차이지만 5월 기록을 깼다. 잘 나가는 브랜드의 수치와 비교하면 보잘것없지만, 캐딜락만 놓고 본다면 의미를 부여할 만하다. 캐딜락 성장세의 주역은 대형 세단 CT6이다. 크기 대비 가성비 높고 성능이 괜찮아서 잔잔히 인기를 얻고 있다.

그러면 캐딜락이 앞서간 동지들처럼 하위권을 졸업할 날이 올까? 앞으로 나올 모델과 각 모델의 상품성, 국내 마케팅 상황 등을 고려하면 당장에 대박이 터질 확률은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그렇지만 변수는 언제나 존재하는 법. 앞서 급성장한 브랜드들처럼 대박의 기회가 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 단지 그 기회가 어떻게 올지 예측하기 힘들 뿐. 로또 당첨으로 인생 역전하듯, 의외의 차생 역전이 이뤄질 수도 있다. 이런 게 수입차 시장을 관전하는 재미다. 지난 십수 년 동안 여러 브랜드가 크고 작은 재미를 줬다. 이제는 캐딜락이 큰 재미를 줄 차례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임유신(evo 한국판 편집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