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암동 복수자 클럽’ vs 렉서스 (1)

[강희수·정덕현의 스타car톡] 불과 10년 전만 해도 수입차는 그 자체로 ‘럭셔리’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강남의 도로와 강북의 도로가 그 풍경이 다를 만큼 수입차가 주는 럭셔리의 이미지는 동네의 분위기마저 바꿔 놓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이제 도로에서 수입차를 발견하는 일은 너무나 일상이 되어버렸고, 수입차들은 강남이든 강북이든 어디든 굴러다닌다.

‘럭셔리’라는 의미를 소비자들은 ‘희소성’이라는 가치로 읽는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렇게 많아진 수입차들은 이제 그저 외국에서 온 차 그 이상의 특별한 가치를 스스로 증명해야 할 입장에 서게 됐다. 한때 ‘강남 쏘나타’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렉서스가 바로 그렇다.

tvN 드라마 <부암동 복수자 클럽>에 재벌가의 딸 정혜(이요원)가 타고 다니는 렉서스는 그래서 한때 ‘강남 쏘나타’로 불리던 렉서스가 지금 어떤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가를 잘 드러낸다. 자동차 전문기자 강희수와 대중문화 칼럼니스트인 정덕현이 수다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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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현의 이 드라마는 : <부암동 복수자 클럽>은 동명의 웹툰을 드라마화한 작품. 재벌가의 딸이지만 불륜 남편이 다 큰 아들까지 들여 심적 고통을 겪는 정혜(이요원), 겉보기엔 번득한 대학교수지만 술만 마시면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에게 맞는 아내 미숙(명세빈), 그리고 생선가게를 운영하며 살아가면서 갖가지 가진 자들의 갑질 횡포에 직면하게 되는 도희(라미란)가 어느 날 ‘복자클럽’을 결성해 함께 복수를 해나가는 과정을 다뤘다. 소소한 복수가 주는 카타르시스와 함께 여성들의 끈끈한 연대가 판타지를 제공하는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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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현(이하 정) : 이 코너를 하고 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최근 들어 자동차 브랜드들이 드라마 PPL에 특히 관심이 많아져서인지, 드라마 속에 눈에 띄는 자동차들이 부쩍 많아졌다. 요즘 즐겨보고 있는 tvN 수목드라마 <부암동 복수자 클럽>에서 재벌가 딸로 나오는 이요원이 타는 렉서스가 그렇다. 재벌가 딸이란 캐릭터다 보니 럭셔리한 자동차가 제격일 수밖에 없는데, 렉서스도 그런 럭셔리카로서의 이미지를 제고하는데 이 드라마의 이요원 캐릭터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강희수(이하 강) : <부암동 복수자 클럽>에서 이요원은 마치 렉서스 수집가처럼 다양한 렉서스 모델을 타고 다닌다. 대기업 회장의 막내딸이라는 설정에 맞게 LC500h를 메인 애마로 삼고 있고, 일상생활에서는 ES300h와 GS450h를 번갈아 타고 다닌다. 최근 렉서스는 드라마에 차를 많이 노출시키고 있다. 물론 최근 정말 럭셔리한 차를 출시하기도 했지만 그에 맞춰 드라마 협찬(PPL)에도 공을 들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정 : 럭셔리 신차 출시에 맞춰 하는 PPL 이상의 이유가 있다는 건가.

강 : ‘강남 쏘나타’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자동차업계에서 상당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우선은 ‘쏘나타’의 상징성이다. 한 때 쏘나타는 현대자동차의 중형 세단으로 크게 앞서거나 뒤처지지 않고, 평균적인 직장생활을 한 부장급 직장인이 향유할 수 있는 ‘성실함’의 대가였다. 그래서 쏘나타라는 이름 안에는 ‘보편의’ ‘평균적인’ ‘일반적인’의 의미도 담고 있다. 여기에 가장 일반적이지 않은 단어 ‘강남’이 붙었다. 강남은 우리나라에서 권력과 재력으로 엄격하게 자격을 심사하는, 매우 폐쇄적인 지역이다. 그런 이질적인 두 단어가 조합됐다. 대한민국의 매우 특별한 동네, 강남에서 국민차 ‘쏘나타’처럼 흔히 볼 수 있는 차가 ‘강남 쏘나타’다.

정 : 렉서스를 ‘강남 쏘나타’라고 부른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다. 렉서스가 가진 고급차의 이미지와 보편적으로 소비되는 이미지가 겹쳐진 표현 아닌가.

강 : 맞다. ‘강남 쏘나타’는 돈이 아주 많은 사람들이 쏘나타 타듯이 보편적으로 구입하는 수입차라는 의미로 확대 됐지만 이 말이 탄생하던 즈음에는 정확히 지칭하는 차종이 있었다. 브랜드는 렉서스이며, 모델명은 ES300이었다.



정 : 한때 렉서스는 국내에서도 굉장히 인기 있는 수입차였던 걸로 기억한다. 토요타가 보편적인 느낌을 준다면 렉서스는 확실히 프리미엄의 이미지가 있었다.

강 : 렉서스는 1989년 일본의 세계적인 자동차 브랜드 ‘토요타’가 분화(스핀오프)시킨 프리미엄 브랜드다. 최근 우리나라의 현대자동차가 프리미엄 브랜드로 ‘제네시스’를 스핀오프 한 것처럼 토요타는 렉서스 브랜드를 별도로 만들어 시쳇말로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대박을 쳤다. 그 렉서스의 준대형 세단 모델이 바로 ES300인데, 이 차가 2001년 말 당시 5,000만 원 정도의 가격으로 우리나라에 출시됐다. 그리고 그 이듬해 1,885대를 팔며 국내 수입차 시장을 석권해버렸다. 국내 수입차 시장은 1987년부터 개방이 됐는데, 렉서스 ES300은 수입차 단일 모델 최초로 연간 판매대수 1,000대를 넘긴 차가 됐다. 지난 6월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가 한 달 동안 7,783대를 팔고 그 중에서도 E300 4매틱 단일 모델만 1,280대를 판 것과 비교하면 애교스러운 수준이지만 당시만 해도 렉서스의 연간 판매량은 대단한 성공이었다.

정 : 최근 수입차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렉서스에 대한 인식도 그 때와 지금은 많이 달라진 것 같다. 한때 강남 쏘나타로 불렸다는 건 그 때는 대단한 일이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렉서스의 발목을 잡는 부분일 수 있을 것 같다.



강 : 맞다. 돈 있는 사람들은 취향도 빨리 변한다. ‘동조’와 ‘차별화’라는 매우 복잡한 경쟁 심리가 작용하는데, '내가 경쟁자로 생각하는’ 옆집에서 좋은 물건을 쓰면 나도 같은 물건을 사야하지만, ‘나를 경쟁자로 생각하는’ 옆집에서 같은 물건을 사면 나는 다른 물건을 사야한다. 대외적으로 많이 노출 되는 자동차는 이러한 심리가 더 크게 작용한다. 한동안 경쟁적으로 렉서스 ES300을 구매하던 강남 부유층들은 ‘쏘나타’가 되는 순간 다른 브랜드들을 찾기 시작했다. 요즘은 BMW 아우디 벤츠 등이 렉서스의 영화를 누리고 있다.

정 : 렉서스 입장에서는 강남 쏘나타의 명성을 되찾고 싶어 할 것 같다.

강 : 렉서스를 수입하는 토요타코리아는 잃은 나라를 되찾자는 마음으로 절치부심하고 있다. 최근의 수입자동차업계 양상이 렉서스에 유리하게 돌아가는 측면도 있기 때문에 지금이 ‘실지회복’을 위한 절호의 찬스라고 생각하고 있다. 근래 몇 년간 국내 수입차 시장은 디젤 세단을 앞세운 독일 브랜드들의 독무대였다. 프리미엄 수입브랜드로 손꼽는 BMW, 아우디, 벤츠가 모두 독일 메이커이고 이들은 힘과 연비가 좋은 디젤 모델을 생산하고 있다. 그런데 폭스바겐이 디젤 차량의 배기가스 배출량을 눈속임하는 장난을 친 게 들통이 나면서 판세가 크게 요동치고 있다. 디젤 엔진이 미세먼지를 만들어내는 주범으로 낙인찍히면서 인식이 더 나빠졌다. 반면 렉서스는 승용차에는 디젤 엔진을 아예 쓴 적이 없다. 대신 가솔린 엔진의 낮은 연비를 하이브리드 시스템으로 보완하려는 노력을 했고, 지금은 ‘하이브리드=렉서스’라는 등식이 만들어졌을 정도다. 실제 국내 수입차 시장도 독일차 일변도에서 하이브리드와 가솔린 엔진의 정숙성을 앞세운 일본차가 뚜렷하게 강세를 보이고 있다.



정 : 그런 면에서 보면 <부암동 복수자 클럽>의 이요원이 연기하는 정혜라는 캐릭터와 렉서스라는 차가 이미지적으로 맞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드라마 속에서 정혜는 재벌가의 딸로 잘 나가던 인물이었는데, 남편의 외도로 마음고생을 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재벌가 사모님이긴 해도 정혜라는 인물은 자세히 알고 보면 꽤 인간적이고 개념을 장착한 인물이다. 물론 어떤 상황이 되자 굉장히 강단 있는 모습을 보이지만, 럭셔리한 이미지와 개념 게다가 강단까지 갖고 있는 이 캐릭터의 이미지가 렉서스가 상당 부분 추구하려는 이미지와 맞는 부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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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수 기자의 이 차는 : 렉서스의 세단 라인업은 LS(Luxury Sedan), ES(Executive Sedan), GS(Grand Sedan)로 구성 되는데 LS는 대형세단이자 플래그십이고 ES는 그 바로 아래 준대형 모델이다. GS는 ES와 같은 차급이지만 후륜구동 방식의 스포츠세단이다. 300, 450, 500하는 숫자는 출력의 등급을 나타내고 ‘h’는 하이브리드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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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로 이어집니다)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 x 자동차전문기자 강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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