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의 아우토반] 현대자동차는 지난 2016년 제네시스 브랜드를 위해 브랜드전략팀과 고급차상품기획팀이라는 별도 조직을 꾸렸다. 그리고 이 조직은 최근 4실 7팀으로 규모를 키웠다. 람보르기니에서 실력을 검증받은 맨프레드 피츠제럴드 전무를 내세워 내수는 물론 해외 시장에서 제네시스를 제대로 알리고 경쟁하겠다는 의지를 이번 조직 구성을 통해 다시 확인한 셈이다.
그리고 최근 이런 제네시스와 관련해 새로운 소식이 들린다. 유럽 시장을 공략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사실 제네시스에게 유럽은 낯설지 않다. 진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현대는 유럽에서 제네시스에 대한 제대로 된 마케팅을 한 적이 없다. ‘우리도 이런 차를 만든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고, 상징적으로 유럽 시장에 G80을 선보였던 것일 뿐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따라서 현대의 말대로라면 머지않아 이뤄질 진출이 제네시스가 유럽에서 벌일 첫 진검 승부가 된다. 이를 위해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활약한 스타 디자이너들은 물론, 브랜드 전략 전문가와 독일 프리미엄 제조사에서 활동한 최고 수준의 엔지니어들로 팀을 구성했다. 이쯤 되면 현대가 독하게 마음을 먹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유럽 시장 도전은 말처럼 쉽지는 않아 보인다. 외부보다 내부의 보이지 않는 벽에 막힐 가능성이 더 커 보이기 때문이다.

◆ G70은 과연 계획대로 나왔나?
2015년 11월 제네시스 브랜드가 출범하기 전부터 현대는 스포츠 후륜 세단을 내놓기 위한 담금질이 한창이었다. 콤팩트 세단 중 주행 성능이 가장 좋은 모델이 무엇인지부터 확인했다. 철저한 분석 끝에 선택한 것은 BMW 3시리즈였다. 현대자동차가 3시리즈의 퍼포먼스를 벤치마킹했다는 것은 업계에서 더는 특별한 얘기도 아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G70 출시를 앞두고 국내 홍보의 방향을 3시리즈가 아닌 벤츠 C 클래스로 틀었다. C 클래스보다 고급스러움에서 더 낫다는 점을 우선 강조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실제 G70의 실내 소재나 마감이 좋다는 평가들이 있다. 하지만 G70은 공간을 손해 보면서까지 주행 성능에 초점을 맞춘 모델이다. 철저하게 스포티한 세단으로 승부를 봐야 했는데 갑자기 홍보 방향이 어중간하게 둘로 갈라져 버렸다.

국내 시장에서는 ‘좀 더 부드러운 승차감’이라는 부분이 보강됐고 이에 따라 흔히 말하는 하체의 단단함은 조금 무뎌졌다. 그래서 그런지 같은 플랫폼을 통해 먼저 나온 기아 스팅어와 주행성에서 어떤 차이가 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리뷰가 나오기 시작했다. 어쩌면 좁은 2열 공간에 대한 국내 소비자들의 비판에 대한 압박, 그리고 먼저 공개된 스팅어와의 경쟁이 주는 부담 등으로 처음 가졌던 마음 그대로 G70을 밀어붙이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들리는 바에 따르면 현대는 앞으로 유럽 시장에 내놓을 G70의 경우 원래 계획했던 것처럼 핸들링 특성을 조금 더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마치 극장판과 감독 편집판으로 나뉜 영화처럼 G70은 내수용과 수출용의 주행 특성이 미세하게라도 달라지게 됐다. 디자인 역시 아쉽기는 마찬가지다. 브랜드 특성을 보여주기보다는 지금까지 늘 그래왔던 것처럼 안전한 길을 택했다.
부분마다 놓고 보면 모자라지 않는다. 아니 이목구비 하나하나 다 보기 좋은 그런 미남 배우 같다. 하지만 잘생겼지만 감흥이 없는 그런 배우를 보는 느낌이랄까? 제네시스만의 스타일을 구현하지 못했고, 익숙한 이미지의 자동차로 머물게 됐다. 좀 더 과감했더라면, 조금 더 용기를 냈더라면 좋았을 텐데 실패가, 그로 인해 발생할 경제적 손실이 두려웠는지도 모를 일이다.

◆ 신형 G80 많이 달라질 거라는데...
얼마 전, 제네시스 유럽 진출이 내년 말 (2018년 말)에 본격 시작될 것이라고 한 보도가 나왔다. 또 제네시스가 내놓을 새로운 SUV가 유럽 진출의 선봉장이 될 것이라는 예상들도 있었다. 일단 시기적으로 내년 말 진출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이미 해외 언론에서는 2020년 전후로 진출이 얘기된 상태다. 독일 주간지 슈테른은 “2019년 말과 2020년 초에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포트폴리오를 얻게 됩니다. 그다음 우리는 (유럽 진출을) 시작할 겁니다.”라는 맨프레드 피츠제럴드의 발언을 소개하기도 했다.
여기서 말하는 새로운 포트폴리오의 핵심은 신형 G80과 SUV GX80이다. 그중 먼저 출시될 예정(대략 2019년 말)인 신형 G80이 중요하다. G80에 담긴 성능과 이미지가 곧이어 나올 제네시스 첫 SUV GX80(가칭)에 그대로 담길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G70까지 포함된 라인업으로 유럽 시장에 뛰어들 가능성이 현재로는 가장 높다. 그렇다면 G80은 어떠해야 할까?

현대는 G80 신형의 디자인이 지금까지 제네시스 디자인과는 많이 다를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근거는 지난 4월 공개된 바 있는 GV80 콘셉트 카에서 찾을 수 있다. 디자인을 책임지고 있는 루크 동커볼케는 GV80의 디자인 요소와 그 특성을 앞으로 제네시스 브랜드에서 볼 수 있다고 했고, 맨프레드 피츠제럴드 역시 GV80 콘셉트가 제품 포트폴리오를 확장하는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GV80이 말하는 제네시스 디자인의 가장 큰 변화는 어디서 볼 수 있을까? 우선 크레스트 그릴이라 부르는 전면 그릴이 양산형에 반영될 가능성이 있다. 또한 위아래로 좁게 나뉜 헤드램프 역시 관심 대상이다. 디자인의 호불호를 떠나 기존에 시도된 적 없는 이런 헤드램프 형태가 신형 G80에 적용될 수 있다면, 제네시스는 적어도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점에서 평가받을 것이다.
히든 도어 손잡이도 적용될 가능성도 있다. 레인지로버 벨라를 통해 히든 도어 핸들이 날렵한 측면 스타일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은 확인이 됐다. 그리고 실내 디자인 역시 크게 바뀔 필요가 있다. 인간공학적 설계도 중요하지만 브랜드의 이미지, 그 가치를 위해서는 고급 소재나 마감 그 이상의 새로운 시각적 충격과 신선함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제네시스만의 감성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 조직 혁신과 도전 마인드 외면해선 안 돼
누차 이야기하지만 프리미엄 딱지는 그냥 붙여지지 않는다. 기술 혁신이 필수 조건이다. 하지만 이 부분은 여전히 현대에겐 숙제다. 당장 수십 년 동안 기술로 시장을 주도한 다른 프리미엄 브랜드와 대등한 수준이 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어쨌든 기술에 대한 투자는 소홀해선 안 된다. 독일 자동차 기업이 매년 기술 개발에 투자하는 비율이 독일 제조업 전체 투자의 20% 수준에 달한다는 자료를 본 적 있다. 국가별로 봐도 단연코 1위가 독일 자동차 제조사들이다.
이런 곳과 경쟁을 하기 위해서는 최소 비슷한 비율로 기술에 돈을 쏟아 부어야 한다. 디자인의 경우 현대자동차그룹이 가장 빨리 개선을 이룬 영역 중 하나다. 하지만 프리미엄을 표방하는 제네시스는 지금까지 현대가 보여준 수준과는 달라야 한다. 유럽의 까다로운 운전자에게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어야 한다. 자기 색깔을 내지 못하면 이미 자기 정체성을 확실히 한 선도 업체들을 따라잡을 수 없다.
지금까지 현대자동차는 실패 없는 길로만 달려왔다. 영리한 패스트 팔로워로 승승장구했지만 말이 좋아 패스트 팔로워지 안전한 길로만 간 것이다. 이제는 더 과감해져야 한다. 실패하면 잘린다는 공포보다, 실패를 통해 더 나은 성공의 길을 만들 수 있다는 도전의 기업 문화로 바뀌어야 한다. 이런 간절함과 열정 없이는 강자들과의 경쟁에서 제네시스는 살아날 수 없다. G80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등장하게 될까? 과연 그 안에서 우리는 새로움과 도전 정신을 발견할 수 있을까? 확인의 시간은 그리 멀지 않았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이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