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 절실함 없이 그냥 그렇게 시장에 나온 크루즈 디젤
[나윤석의 독차(讀車)법] 참으로 유감입니다. ‘서민들의 포르쉐’라는 사랑을 받으며 ‘크루디’라는 애칭까지 받았고 일명 ‘쉐슬람’의 선봉장이었던 쉐보레 크루즈 디젤이 돌아왔습니다. 신모델임에도 구형보다도 판매량이 저조할 정도로 이상하리만큼 – 사실 이상한 것은 아니었지만 – 외면을 받아오던 올 뉴 크루즈에게 그렇기 때문에 디젤 모델의 귀환은 부활의 신호탄이요 ‘쉐슬람’들에게는 구원의 기쁜 소식이 될 거의 유일한 기회였습니다.
하지만 크루즈는 물론 크루디 조차도 이전과 같은 사랑을 받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올 뉴 크루즈가 고객들에게 외면을 받은 가장 큰 이유는 고객에게 다가가고자 하는 절실함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차는 참 좋습니다. 고집스럽다 싶을 정도로 견고한 섀시의 기본기를 중시하는 제가 보기에도 참 과하다 싶을 정도로 기본기에 집중 투자한 것은 시승을 조금만 해 보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다만 그것이 고객을 위한 것인지는 확신이 서질 않습니다. 올 뉴 크루즈의 섀시가 이처럼 훌륭한 이유가 독일 오펠의 플랫폼을 바탕으로 개발된 모델이면서도 각 시장 별로 따로 개발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기준이 가장 높은 시장을 기준으로 맞췄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신차 발표회에서도 세부 설정을 조정하는 정도가 내수 시장을 위해 개발한 전부라는 답변이 있었습니다. 즉 고객의 입장에서 고민했다기 보다는 회사 내부의 입장에서 최적의 방법을 찾았다는 뜻입니다.
그렇다 보니 본의 아니게 ‘준중형의 수준을 넘어서는 주행 안정성’을 갖게 되었고 원가도 준중형을 상회했을 겁니다. 엔진도 다운사이징 터보 엔진으로 정리하면서 원가는 이전보다 더 올라갑니다. 그래서 경쟁 차종에게는 있는 편의 장비 가운데 일부를 희생했음에도 동급 최고 수준의 가격표를 받아 들게 되었을 겁니다.

당연히 시장의 반응은 싸늘했습니다. 허겁지겁 가격을 200만원이나 내렸습니다. 가격을 내린 신속한 결단은 좋았지만 애당초 가격을 부풀렸던 것이 아닌가 하는 시장의 불신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물론 내부적으로는 수익의 감소로 단위 사업 계획을 뿌리째 흔드는 엄청나게 어려운 결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크루즈의 아이콘이자 가장 로열티가 높은 모델인 크루즈 디젤에는 회심의 노림수가 있기를 바랬습니다. 하이브리드 모델이 부족한 쉐보레의 입장에서는 당분간 디젤 엔진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트랙스 – 올란도 – 크루즈로 이어지는 1.6리터 디젤 라인업에 총력을 다할 이유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래서 신차발표회 당일에 쉐보레 담당자에게 물었습니다. ‘설마 지금까지 다른 모델들처럼 디젤 모델에 250만원 가격 상승분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돌아온 대답은 차가 정말 좋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등 흐릿했습니다. 새 차를 발표하고 시승회를 여는 날에 가격을 발표하지 않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불안감이 더욱 커졌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주 월요일 가격이 발표되었을 때 저는 농담인 줄 알았습니다. 250만원. 더도 덜도 아니고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250만원이 가솔린 터보 모델보다 비쌌던 겁니다.
결국은 올 뉴 크루즈 디젤은 그냥 그렇게 시장에 나왔습니다. 시장을 수복해야 한다는 절체절명의 위기감도, 고객의 마음을 어떻게 하면 돌릴 수 있는가를 고민하고 회사 내부를 설득한 흔적을 발견할 수는 없었습니다. 물론 회사 내부적 논리에서는 가격에 흠 잡을 구석은 없었을 겁니다. 가격 산정에 사용되는 1 마력은 얼마고 터보는 얼마고 하는 계산법으로는 올 뉴 크루즈는 절대 비싼 것이 아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소비자가 외면한다면 논리적 가격 구성도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고객은 이해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의견을 들어야 할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올 뉴 크루즈처럼 섀시가 훌륭해서 달리는 맛이 좋은 차가 참 좋습니다. 그래서 집에 구형 크루즈 디젤을 한 대 갖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제품 기획을 담당하던 시절에 ‘나 같은 사람들을 주 고객이라 생각하면 회사는 망한다’라고 자신에게 끊임없이 되뇌었습니다. 마니아는 시장에 노이즈를 일으킬 수는 있어도 판매 대수를 책임지는 대상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올 뉴 크루즈는 좋은 차입니다. 그런데 크루즈의 어느 구석을 봐도 소비자를 생각한 고민이 보이질 않습니다. 내게 마음을 써 주지 않는데 내가 마음을 써 줄 이유가 없습니다. 소비자의 마음을 잡은 필살기가 없는 제품은 소비자의 지갑을 열지 못합니다. 유감입니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나윤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