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헤리티지 라이브를 다녀와서 느낀 소회

[이동희의 자동차 잡학(雜學)] 지난 18일 현대 모터 스튜디오 고양에서는 의미 있는 행사가 열렸다. ‘헤리티지 라이브(Heritage Live)'라는 이름을 단 자동차 토크 콘서트로 과거의 자동차는 물론이고 당시 역사 속에서의 의미를 되새김질하는 자리였다. 자동차 마니아로도 유명한 성우 배한성 씨가 사회를 보고 이곳 다음에도 칼럼을 쓰고 있는 나윤석 칼럼니스트와 현대자동차 브랜드 전략팀의 권규혁 차장이 같이 출연했다. 입장료가 있는 유료 행사였는데도 모터스튜디오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한 사람들과 가족들까지 약 150여명이 참석해 성황리에 치러졌다. 이곳을 다녀와서 느낀 점에 대한 소회를 적어본다.



사실 이제야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지만 이 행사에 가면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 동안 현대자동차는 대한민국 자동차 대표 기업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역사와 관련된 행사를 주최하거나 클래식카와 관련된 문화를 만들거나 관리하는데 인색했었다. 2015년에 30주년을 맞은 쏘나타를 기념하기 위해 300대 한정 모델을 만들고, 현대 모터 스튜디오 서울에서 전 세대 모델을 모아 전시하고 행사를 열었던 적이 있다.

이렇게 개별 모델의 00주년 기념식은 있었지만 회사의 근본이 된 초기 역사를 이야기한 적은 없었기에 더욱이나 그랬다. 또 역사적으도 중요한 과거 모델들에 대한 자료도 관리가 되지 않고 홈페이지 어디에서도 찾기 힘든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행사 당일, 3층의 다목적 홀에 들어서는 순간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사진이나 모형이 아닌 반가운 차들이 실제로 전시되어 있었다.



행사에는 현대자동차의 고급차 시작이나 다름없는 포드 20M과 1970~80년대 독보적인 존재감을 가졌던 그라나다, 그리고 1986년 세상에 나오면서 국산 고급차 시장을 새롭게 재편한 그랜저 1세대 모델이 전시되었다. 현재는 제네시스 브랜드가 독립해 프리미엄 시장을 따로 맡고 있지만, 사실상 현대자동차 그룹에서 대중적인 고급차의 시작은 그랜저였으니 그 조상뻘인 차까지 셋을 한 자리에서 보는 것은 반가운 일이었다.

어렸을 때는 물론이거니와 박물관에서 조차 보기 힘들었던 20M을 꼼꼼하게 둘러볼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 또 1978년 데뷔 당시에 1154만 원이라는 가격표로 당시 막 지어지기 시작하던 강남 아파트 한 채보다 비쌌던 그라나다를 함께 본 것도 즐거웠다. 딱딱 떨어지는 직선으로 만들어진 차체는 지금 봐도 매끈한 차체가 멋졌다.



물론 경쟁 모델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포드 20M과 그라나다는 고급성에서 독보적이었다. 새한자동차의 레코드 1900과 레코드 로얄 시리즈가 판매량은 훨씬 많았는데 같은 2.0L급 엔진을 얹었음에도 V6였던 그라나다는 차에 붙는 세금이 높아 값이 비쌌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진짜 대형 고급차의 이미지는 그라나다가 갖게 되었다.

그랜저에는 개인적인 추억도 있다. 1세대 그러니까 흔히 각(角) 그랜저라 불리던 그 차는 우리집에서도 선망의 대상이었다. 당시 프레스토를 가지고 있었던 아버지는 취미인 낚시를 가실 때마다 친구 분의 각 그랜저로 움직였고, 중학생이었던 나는 넓은 뒷자리와 조용한 실내, 고속에서도 안정적인 차체 등에 놀랐던 적이 여러 번이었다. 그렇게 1년 넘게 그랜저를 경험했던 아버지는 결국 1989년이 되어 코드명 Y2 소나타를 사며 ‘이게 그랜저보다 실내가 더 넓다’며 좋아하셨던 기억이 난다.



◆ 현대자동차가 보유한 자동차로 직접 진행한 행사

전시된 차는 물론이고 이를 바탕으로 나누었던 이야기들도 재미있었다. 개발 뒷이야기나 성능 같은 차 자체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당시의 사회와 차가 가진 위치까지 자세한 설명이 있어 말 그대로 시간 여행을 제대로 한 셈이 되었다. 여기에 행사 참석자들의 면면이 더 특별했다. 계속 차와 관련된 이야기를 쫑알거리던 4~5세 아이들부터 분명 중고생이거나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젊은 친구들, 그리고 나이 지긋한 어른들까지 말 그대로 모든 세대가 어우러져 자동차를 주제로 웃고 공감할 수 있었다.

쉽게 이해가 가능한 다양한 영상 자료와 유명 영화 속의 장면을 자주 사용하고 중간 중간 카카오톡을 이용해 관람객들이 직접 참여해 생각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한 부분도 꽤나 신선했다. 주최 측의 세심한 배려가 돋보인, 행사로써도 아주 잘 짜여 충분히 즐거운 시간이었다.

사실 위에도 언급한 것처럼 과거의 현대자동차와 비교할 때 이번 헤리티지 라이브 행사의 의미는 남다르다. 올해 50주년을 맞은 현대자동차가 그들의 처음 시절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은 분명 달라진 모습이다. 논어에서 사람 나이 50살은 지천명(知天命)이라고 했는데, 하늘이 부여한 최선의 원리를 알아간다는 뜻이니 이번 행사를 통해 뿌리를 돌아볼 마음이 생긴 것만으로도 큰 변화가 아닐 수 없다. 특히나 전시된 차 모두 현대자동차에서 직접 보유하고 관리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꽤나 고무적이었다.



올해 초 현대자동차 본사에 헤리티지와 역사를 관리할 부서인 클래식랩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변화가 시작되었다는 생각은 했었다. 외부 인력이 아니라 내부에 사람을 뽑고 조직을 만드는 것만큼 대기업에서 어려운 일은 없기 때문이다. 물론 늦은 감이 없잖아 있지만, 이제라도 스스로 역사에 대해 이야기를 찾고 사람들과 공유할 마음을 먹고 실천했다는 건 꽤나 고무적이다.

단순히 차를 팔기 위한 마케팅이 아니라 문화를 만드는 것은 가치를 따지기 어려울 만큼 중요하다. 당장은 숫자로 보이는 효과가 없어 보여도 미래를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현장에 왔던 많은 어린이들과 학생들의 눈빛과 얼굴을 한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세대를 이어가며 공유할 수 있는 문화라는 것의 중요함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도구로써의 자동차 뿐 아니라 문화의 일부로써의 자동차는 정의 내리기가 쉽지 않다. 그간 여러 칼럼을 통해 썼던 내용이기도 하지만, 자동차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개인의 삶에 깊숙이 영향을 미친다. 어릴 적에 탔던 자동차에는 부모님을 포함한 가족과의 추억이 있고, 내가 지금 타는 자동차도 하루하루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바라기로는 헤리티지 라이브 행사가 좀 더 많은 사람들이, 특히나 학생과 젊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자주 있었으면 좋겠다. 문화는 그렇게 서로가 공감할 이야기를 나눌 때 만들어진다. 지금 40대인 부모와 10대인 자녀가 함께 공유할 이야기는 흔치 않다. 세대를 이어줄 좋은 매개체가 될 자동차를 주제로, 우리 역사와 함께 이야기할 헤리티리 라이브 행사가 꾸준히 이어지기를 기대해본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이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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