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타이머에는 최신 기술로는 표현할 수 없는 기계적 감성이 담겨 있다. 최첨단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자동차가 주목받는 이유다.

[김태영의 테크 드라이빙] “자동차도 기계인데, 20년 전 자동차가 아무리 뛰어나도 지금 자동차보다 좋을 순 없잖아요. 20년 전 가전제품을 최신형과 비교하기 어려운 것처럼요.”
최신형 자동차를 좋아하는 A씨의 주장이다. 맞는 말이다. 적어도 성능이나 효율 면에서 스무 살 이상 먹은 자동차가 최신 자동차보다 좋을 순 없다. 1990년대 등장한 차를 예로 보자. 지금의 기준에서 볼 때 엔진 출력은 부족하고, 연료 효율도 크게 떨어진다. 배출가스의 양도 지금의 기준을 훌쩍 넘을 수준. 전자제어 안전장비가 거의 없으니 주행 중 자칫 위험한 상황에 처할 가능성도 크다. 편의 장비가 부족한 것도 말해봐야 입만 아프다.

옛날 자동차는 지금의 기준에선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단순하고, 조잡하다. 하지만 모순적으로 단순하고 조잡하기 때문에 좋은 점도 많다. 물론 모든 옛날차가 이런 주장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일부 옛날 차는 최신의 기술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기계적 완성도와 감성이 돋보인다. 이런 차들을 묶어 영타이머(Young Timer)라고 부른다. 전 세계 자동차 마니아가 이런 존재에 꾸준히 주목하는 이유가 있다.
일반적으로 옛날 자동차를 통틀어 ‘클래식카’로 부른다. 하지만 클래식카도 정확히 나누면‘올드타이머’와 ‘영타이머’로 나뉜다. 올드타이머(Old Timer)란 생산된 지 최소 35년 이상 된 자동차다. 이들은 정통 클래식카로 구분된다. 찬란한 자동차 역사를 보여주는 과거의 상징인 셈이다. 올드타이머보다 젊은 차 그룹을 영타이머, 혹은 모던 클래식카라고 한다. 생산된 지 25~35년(1981~1995년) 된 차로 시장에서 특별한 가치를 인정받아 꾸준히 인기를 얻는다.

포르쉐 911 터보(993), BMW M3(E30), 사브 900 등이 영타이머의 대표적인 예다. 이들은 21세기형 정밀 전자제어 기술이 자동차에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이전에 태어났다. 그래서 기계 중심적으로 발달한 것이 특징이다. 거칠고 투박하지만 살아있는 유기체 같다. 이진법으로 연산하는 컴퓨터가 제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기계의 움직임을 예상하고 조율한 특별한 감성이 녹아 있다.
어떤 기준으로 영타이머를 분류할까? 판단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확실한 것은 희소성이 높아야 하고, 시장이 그 차의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 그러니까 영타이머는 누구나 인정하는 특별한 옛날 차다. 여기서 ‘특별하다’는 것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비슷한 시대의 자동차 중 운동성능이 비약적으로 좋거나, 아니면 누구도 도전하지 않은 형태로 차를 만들었을 수도 있다. 생산량이 무척 적거나, 레이스나 이벤트에서 특별히 주목받은 차도 여기에 속한다. 그러니까 자동차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을 뿐 아니라 제품에 녹아든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래는 영타이머를 대표하는 자동차들이다.
◆ BMW M3 EVO2(E30)
1985~1992년 사이에 만들어진 E30 M3는 다양한 이유로 상징성이 높다. 하지만 이 중에서도 레이스 호몰로게이션을 위해 만들어진 특별판 에보(EVO) 시리즈가 특히 인기다. 에보2의 경우 오직 500대만 만들어졌다. 앞 유리와 범퍼의 경량화, 고 압축비 피스톤, 더 큰 각도의 캠축(264도)와 강화 밸브 스프링 등으로 기본 모델보다 20마력을 더 낸다. 플라이휠도 가벼워서 엔진 회전과 반응도 훨씬 경쾌하다.

◆ 메르세데스-벤츠 SL(R107)
1971~1989년까지 팔린 모델. R107 SL은 메르세데스 벤츠의 호화 로드스터 SL 시리즈다. 실제 모델은 SL로 팔렸지만 보디 형식 명인 R107로 더 사람들에게 더 많이 기억된다. 배기량에 따라 280 SL부터 560 SL까지 만들어졌다. 우아한 디자인으로 지금까지도 명차로 인정받는다.
◆ 포르쉐 911(964, 993)
포르쉐 911은 시리즈는 1963년 등장한 이후 거의 모든 모델이 올드타이머와 영타이머에 속한다. 그중에서도 1989~1993년 사이에 만들어진 코드네임‘964’와 1994~1997년의 ‘993’이 특히 주목받는다. 포르쉐 911 얹힌 마지막 공랭식 엔진. 걸걸거리는 엔진이 만들어내는 거친 소리와 회전 질감이 매력적이다.

◆ 사브 900
1978년~1998년까지 2세대에 걸쳐 만들어진 모델로, 1993년까지 생산된 1세대가 지금 기준에서 영타이머에 속한다. 세단과 쿠페, 해치백과 컨버터블 중 3도어 해치백 터보의 가치가 가장 높다. 아주 특별한 차였다기보다는 브랜드의 개성을 좋아하는 두터운 팬층을 가진 것이 인기의 비결.

실제로 한국에도 위에 소개한 모든 자동차가 여전히 도로를 달리고 있다. 그 차들을 직접 만나봤고, 짧은 시간 경험도 해봤다. E30 M3 에보 2의 경우 고작 220마력짜리 스포츠카였지만, 지금의 기준보다 훨씬 빠르고 정교했다. 가벼운 무게, 정교한 기계식 파워트레인에 전자제어 장치가 개입하지 않는 깔끔한 움직임으로 운전자를 사로잡았다. 그 차가 달리는 느낌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그저 설레고 흥분됐다. 차가 운전자에게 그런 느낌을 받게 했다. 물론 431마력을 발휘하는 최신형 M3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달리기는 느리다. 하지만 ‘좋은 자동차’라는 주제로 생각하면 E30 M3의 가치는 절대로 부족하지 않았다.

“날씨가 좋은 날과 비 오는 날 운전하는 느낌이 완전히 달라요. 빠르게 달리지 않아도 그런 감각을 꾸준히 느낄 수 있지요. 이게 이 차의 매력이지요.” 실제 이 차의 오너의 간결한 설명만으로도 영타이머의 가치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누군가는 과거의 향수 때문에 옛날 차를 좋아한다. 하지만 기술적으로 볼 때 영타이머 같은 과거의 차들은 최신형 차의 옛날 버전이 아니라 전혀 다른 영역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과거를 현재로 그리고 미래로 만드는 역할을 한다. 그러니 지금 우리에겐 평범한 차가 아니라 특별한 차가 더 많이 필요하다. 20~30년 뒤 그들이 영타이머가 될 수 있어야 하니까.
자동차 칼럼니스트 김태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