닛산의 물량공세, ‘황금빛 내 인생’으로 효과 좀 봤을까
‘황금빛 내 인생’ vs 닛산 (2)

[강희수·정덕현의 스타car톡] 어쩔 수 없이 자동차는 그걸 끄는 사람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특히 우리나라 같이 직급에 따른 자동차의 암묵적 차등이 존재하는 사회적 분위기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그만한 부와 지위를 가진 이들은 거기에 걸맞는 차를 끄는 게 보편적이다. 물론 그래서 요즘은 그저 가격만이 아니라 개성을 중시하는 경향도 나오고 있다. 재벌가 왕자님이라고 중후하고 묵직한 럭셔리 세단만 끌 이유가 있겠는가. 때론 자기 개성을 드러내는 스포츠카를 몰 수도 있고 SUV를 끌 수도 있을 게다. 같은 종류라고 해도 다 같은 스포츠카나 SUV는 아닐 테지만.

그래서 드라마 같은 경우 특정 인물이 어떤 차를 타느냐 하는 건 그 캐릭터를 그대로 설명해주기도 한다. 특히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KBS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처럼 금수저와 흙수저가 확실히 구분되어야 하려는 이야기와 메시지가 뚜렷해지는 드라마의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과연 이 드라마는 제대로 인물과 자동차를 매칭하고 있을까. <황금빛 내 인생>과 그 속에 등장한 닛산 차들에 대해 자동차 전문기자인 강희수와 대중문화 칼럼니스트인 정덕현이 수다를 나눴다.



(1부에서 계속됩니다)

정덕현(이하 정) : 지난 번에 얘기한 것처럼 시청률 대박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황금빛 내 인생>은 아예 대놓고 닛산 차를 도배하다시피 했다. 한국닛산은 원래 드라마 PPL에서 이번처럼 ‘물량 공세’를 해 왔나?

강희수(이하 강) : 지난 10월 1일 막을 내린 tvN 드라마 ‘명불허전’에 차량 협찬을 했는데, 이번 ‘황금빛 내 인생’과 방식이 똑 같다. 걸크러시 매력을 뽐내며 등장한 김아중이 알티마를 탔고, 엘리트 의사 유민규는 무라노를 몰았다. 또한 김아중의 선임이자 흉부외과 전문의 황 교수 역의 이대연이 맥시마를 타고 다녔다. 그나마 이 드라마에서는 봐 줄만 했던 게 재벌가 인물들은 아니었기 때문에 나름 개연성은 있어 보였다.

정 : 그 드라마에서는 김아중이 맡은 역할이 워낙 발랄하고 젊은 의사 역할이라 닛산 차들이 전반적으로 잘 어울렸던 것 같다. 우리에게 아직까지 닛산 차는 럭셔리라는 인식이 별로 없다. 인피니티는 다르지만 닛산 차와는 또 다른 브랜드로 여기는 편이고. 그래서 그랬는지 몰라도 닛산은 한 드라마에 나오는 차량을 모두 공급하는 방식을 쓰는 모양이다.



강 : 캐릭터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택할 수 있는 방식이다. 자동차 브랜드가 공급하는 다양한 라인업 중에서 나이나 지위에 맞게 맞추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윗사람은 비싸고 큰 차를, 아랫사람은 좀 더 낮은 클래스의 차를 타는 것으로 수직 계열화시키기만 하면 된다. 각 차가 갖고 있는 개성을 드라마 주인공과 연계시키려는 노력은 필요가 없어진다. 공급자도 차의 특성을 강조하기 보다는 노출 자체에 의미를 주고자 할 때 이 방식이 많이 쓰인다.

정 : 말 그대로 물량공세가 그럴 때 쓰는 말인 것 같다.



강 : 물량공세라는 말 잘 썼다. 요즘 나오는 프리미엄 브랜드들은 개별 모델 하나하나에 상당한 캐릭터를 담고 나온다. 누가 이 차를 탈 것인 지를 면밀히 연구한 다음에, 그들이 매료될 만한 요소들을 전면에 내세운다. 그래야만 ‘돈 조금 더 보태 상위 모델을 사는’ 도식적인 소비 행태를 깰 수 있고, 차가 크든 작든 상관없이 저마다 존재의 이유를 가질 수 있다. ‘황금빛 내 인생’처럼 전 라인입을 다 투입시켜 놓으면 결국은 돈 적으면 알티마 타고 돈 많으면 맥시마 타라를 얘기밖에 더 되겠는가? 알티마는 어떤 개성으로 존재하는 지, 맥시마는 또 어떤 의미를 지닌 차인지 전혀 전달할 수가 없게 된다. PPL 공급자도 특별히 이번 드라마에서는 어떤 차의 어떤 점을 강조하겠다는 계획도 없다는 얘기다. 그저 엠블럼이 많이 노출되고, 브랜드가 자주 회자되기만을 원하는 그림이다.

정 : 참 <황금빛 내 인생>이라는 드라마는 그 캐릭터들이 확실한 편인데, 어째 자동차 PPL은 그런 캐릭터들을 고려하지 않았는지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황금빛 내 인생>이 미니시리즈가 아니라는 편견과 선입견 때문에 그런 건 아닐까?



강 : 사실 주말극은 가족 드라마이어야 한다는 전제 때문에 스토리 선정에 한계가 있다. 주인공의 캐릭터 보다는 스토리텔링에 중심이 맞춰져 있어서, 자동차 PPL을 하기에는 썩 좋은 장르가 아니라는 인식이 있다. 자동차 브랜드의 PPL 담당자들이 미니시리즈를 선호하는 게 이 때문이다. 한국닛산이 <황금빛 내 인생>에 물량공세를 한 것은 어쩌면 이 같은 배경을 알고 한 것인지도 모른다.

정 : 하지만 최근 주말극도 공식이 깨져가고 있다. 특히 이번 <황금빛 내 인생>을 쓴 소현경 작가는 과거 <찬란한 유산>으로 연속극과 미니시리즈를 접목했다는 평가를 받았던 작가이기도 하다. 주말드라마에 대해 이럴 것이다 라는 편견과 선입견이 <황금빛 내 인생>의 자동차 PPL의 안이함을 만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오히려 미니시리즈가 아닌 <황금빛 내 인생>에 닛산이 물량 공세를 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얘기인가.



강 : 사실 닛산은 요새 안팎으로 곤경에 처해있다. 일본 내에서는 ‘무자격 검사 스캔들’로 브랜드 신뢰성에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일본의 닛산자동차는 완성차의 안전성을 검사하는 일부 공정을 무자격 사원에게 맡겼다가 들통이 났다. 닛산은 일본 내 6개 공장에서 무자격 사원을 투입해 안전성 검사를 해 온 것이 들통나 116만대의 차를 리콜했다. 그 동안 쌓아온 품질 제일주의의 신뢰가 한꺼번에 무너져 내렸다. 국내에서는 지난 해 닛산의 ‘캐시카이’가 배출가스 배출량을 조작해 인증을 통과한 사실이 드러나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최근 알티마는 주행 중 시동꺼짐 사례가 자주 보고 되고 있고, 대시보드나 시트 아래, 트렁크와 도어 내부 등지에서 녹이 발생해 차량 소유주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기도 했다. 이런 곤경을 오히려 더 활발한 마케팅 활동으로 정면 돌파 하려는 모습으로 해석 될 수 있다.

정 : 연이은 악재로 이미지에 타격을 입은 닛산이 오히려 물량공세로 그 이미지를 바꿔보려 한다는 건데, 이런 연이은 악재가 닛산차 판매량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나?

강 : 꼭 그렇지는 않다. 다른 모델은 몰라도 알티마는 대박을 터트리고 있다. 작년 4월 출시 된 알티마가 디젤 게이트로 독일차가 주춤하고 있는 틈을 타 승승장구하고 있다. 알티마의 선전에 힘입은 한국닛산은 올해 10월까지 누적 판매량이 전년 대비 16%나 증가했다. 알티마가 히트한 데는 뛰어난 상품성에 파격적인 가격정책이 한 몫 한 것으로 분석 되고 있다. 한국닛산은 작년에 알티마의 부분변경 모델을 내놓으면서 가격을 종전 모델보다 400만 원이나 내렸다. 가장 낮은 트림의 가격이 2990만 원대에 형성 돼 수입 중형 세단 최초로 3000만 원대를 깬 차가 됐다. 여기에 무단변속기(CVT)가 조합 돼 연비도 뛰어나다. 배기량 2.5리터 모델의 경우 복합연비가 12.5km/l나 된다. 이런 요소들이 알티마의 높은 판매량을 이끌고 있다.



정 : 보통 논란에는 드러내는 것보다는 피하는 게 더 이미지에는 나을 수 있지 않을까.

강 : 어떤 브랜드가 스캔들에 말려 있으면 최대한 브랜드의 대중 노출을 꺼리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한국닛산은 오히려 드라마 PPL을 활발히 하며 난국의 정면 돌파를 시도하고 있다. 알티마가 기대 이상으로 잘 팔리고 있는 것이 정면 돌파의 배경이 되고 있다. <황금빛 내 인생>의 대성공으로 덩달아 기세가 올라 있는 한국닛산을 보면 PPL의 성공 여부는 인간계의 손길을 떠나 있다는 게 또 한 번 진실처럼 다가온다. 동시에 캐릭터 연구 없는 물량공세가 주는 나쁜 예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정 : 그 점은 이번 <황금빛 내 인생>에서 박시후가 얻은 이미지 효과와 비슷한 이야기인 것 같다. 사실 큰 스캔들 때문에 이미지 회복이 어려울 것이라고 해서 한동안 작품에 나오지 않았던 박시후였다. 이번 작품에도 사실 그 캐스팅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컸다고 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작품이 화제가 되면서 상당부분 이미지 회복을 한 셈이 됐다. 물론 닛산이 이번 드라마로 이미지를 어느 정도 회복할 지는 알 수 없지만.



epilogue. 제 격에 맞아야 제 옷이 된다

사실 가격이 그걸 사용하는 사람의 품격이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금수저, 흙수저 논란을 잘 들여다보면 물론 제 아무리 노력해도 잘 살기 어려운 흙수저의 아픈 현실과 함께, 금수저라고 해도 그 사람의 품격이 ‘황금빛’은 아니라는 뉘앙스가 은근히 깔려 있다. 금으로 도배를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의 인생이 ‘황금빛’이 되는 건 아닐 게다. 오히려 자신의 인생을 소중하게 여기는 그 제 격에 맞는 삶이야말로 ‘황금빛’의 자기 인생이 아닐까. 그래서 <황금빛 내 인생>이라는 드라마의 제목에서 방점이 찍히는 건 ‘황금빛’이 아니라 ‘내 인생’이다. 뭐든 제 격에 맞아야 제 옷이 되는 법이니까.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 x 자동차전문기자 강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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