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언맨은 없어도 아이언맨 자동차는 실재한다
[김종훈의 자동차 페티시] 마치 힙합스타 같았다. 관객을 가로지른 무대에서 느릿느릿 나타났다. 조명은 현란했고, DJ는 연신 흥겨운 비트를 쏟아냈다. 관객은 저마다 스마트폰으로 정적을 깨고 등장한 존재를 담기 바빴다. 신형 R8 출시 파티 모습이었다. 그루브 타듯 신형 R8이 무대 중앙에 멈췄다. 스포트라이트가 차체에 쏟아졌다. 화려한 의상 입은 스타처럼 주황색 신형 R8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출시 행사는 차량 콘셉트에 따라 달라진다. 첫 선을 보이는 만큼 어떤 이미지를 연출하려 한다. 차량 성격이나 적용한 신기술, 지향하는 이미지까지 고심해서 담는다. 특히 고객에게 선보이는 출시 파티라면 더욱. 아우디는 신형 R8을 선보이며 행사장을 클럽 파티처럼 꾸몄다. 그냥 화려하니까? 클럽 파티라는 번쩍거리고 흥분되는 분위기에 신형 R8이 어울려서다. 신형 R8이 힙합스타처럼 등장한 이유이기도 하다. 아우디의 판단은 꽤 적절했다.

아우디 R8은 고성능 자동차다. 슈퍼카라는, 고성능의 꼭짓점에 속한다. ‘슈퍼’에 어울리는 숫자도 자랑한다. 비교하기보다는 단지 보고 놀랄 숫자들. 사람들은 그 숫자에 매료돼 슈퍼카를 선택한다. 아우디 R8도 포함된다. 단 그 숫자보다 먼저 R8을 연상시키는 것들이 많다. 어떤 이미지. R8이 그려낸 이미지는 단지 숫자로만 표기할 수 없다. 오히려 숫자를 넘어 숫자를 지워버린다. 이 특징은 R8의 장점이 단점이다. 하지만 슈퍼카 루키로선 분명 장점이다.
아우디 R8의 역사는 2006년부터 시작됐다. 최근 출시한 R8은 (고작) 2세대다. 쟁쟁한 슈퍼카 브랜드처럼 몇 세대 넘나드는 역사는 없다. 하지만 그 역사와 어깨를 견주는 인지도가 있다. 아우디는 프리미엄 브랜드지만, 그것만으로 인지도를 쌓을 순 없다. R8은 보다 특별한 존재로 주목받는다. 자동차 특정 차종 이상의 특별함을 품은 자동차. 뿜어내는 출력과 적용된 기술을 몰라도 그 존재만으로 특별하다고 느낀다. 마치 유명 스타 같다. 아우디 R8의 도달한 위치다.

특별하게 느끼는 자동차에는 보통 이야기가 담긴다. 해서 클래식 모델이 주로 해당된다. 아니면 고성능을 꾸준히 추구해온 역사에서 기인하거나. 하지만 아우디 R8은 그럴 시간도 여력도 없었다. 대신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만들었다. 대중문화 속에 뛰어들어 새롭게 거듭났다. 마치 한 작품을 통해 스타가 된 배우처럼. 아이언맨의 자동차라는 별칭은 단적인 예다. 별칭이 있는 자동차는 드물다. R8은 있다. <아이언맨>이란 영화로 R8은 신분이 상승했다.
<아이언맨> 시리즈에서 R8은 여느 자동차처럼 등장하지 않는다. 용도는 비슷하다. 해당 캐릭터를 치장하고 설명하는 소품이다. 하지만 캐릭터와 소품이 더없이 어울릴 때 소품은 또 다른 캐릭터로 발전한다. <아이언맨>에 페라리가 등장했다면 이렇게 딱 맞아떨어졌을까? R8은 아이언맨 미술팀이 따로 제작한 듯 극에 녹아들었다. 그만큼 R8 자체가 미래 이미지를 품은 까닭이다. R8을 그려낸 아우디 디자인의 힘이다. 그렇게 R8은 특별한 존재로 인식됐다.

거리에서 스타를 보면 환호한다. 그 느낌과 비슷하게 거리에서 R8을 보면 눈으로 쫓는다. 특별한 존재를 본다는 설렘. R8은 후발 주자로 슈퍼카 영역에 들어섰다. 단지 성능으로만 어깨를 견주기엔 긴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R8은 미디어를 활용해 영향력을 높였다. 특별한 방식으로 특별한 존재가 됐다. 그에 합당한 성능은 차치하고, 일단 이미지를 구축했다. 그 영향은 크다. R8을 바라볼 때, 문을 열 때, 좌석에 앉아 시동을 걸 때, 모든 순간이 특별해진다.
실제로 R8을 운전해도 그 특별함이 전해진다. 일반적인 자동차 안에 있을 때와는 다른 시공간을 연출한다. 좁고, 딱딱하고, 거칠다. 전면 유리로 펼쳐지는 도로 풍경도 달라 보인다. 가속페달을 밟으면 익숙하지 않은 속도감으로 풍경을 뒤로 밀어낸다. 타기 전 특별한 존재라는 머릿속 이미지가 실체화하는 순간이다. 유니버설 스튜디오 어트렉션처럼 흥분시킨다.

아이언맨은 없어도 아이언맨 자동차는 실재한다. 농담으로 던진 문장이 아니다. 의외로 사람은 대중문화 속 이미지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그 이미지는 그 자체로 실제 영향력을 발휘한다. 이미지지만 이미지를 넘어선다. 게다가 R8의 성능은 그 흐름을 부드럽게 연결한다. R8이 아우디 고성능 자동차 모델 이상으로 특별한 이유다. 그러니까 스타 같은 자동차. 이런 위치를 획득한 자동차는 흔치 않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김종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