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윤석의 독차(讀車)법] 재미있는 광고를 발견했습니다. 아빠가 미세먼지도 없애고 숲도 살리고 물도 깨끗하게 만든다고 심각하게 말하는 아이가 나오는 광고입니다. 선생님이 아이에게 ‘아빠가 뭐 하시는 분이셔?’라고 묻지 아이는 흥분에 숨 넘어가는 목소리로 ‘** 콘덴싱 만들어요~!’라고 대답합니다. 보일러 광고더군요. 하지만 보일러의 따뜻한 온기 말고도 가슴을 따뜻하게 만드는 것이 있었습니다. 저도 어렸을 때는 아버지가 슈퍼맨처럼 위대하게 느껴졌었다는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광고를 보다가 시쳇말로 뿜을 뻔 했습니다. ‘아, SUV 갖고 싶다’는 아가씨에게 ‘가져라. 나는 가솔리니’라고, ‘화이트도 좋고 오랜지도 좋은데’ 고민하는 이에게 ‘둘 다 가져라. 나는 투토니’라고 말하는 기아차의 스토닉 광고였습니다.
이 광고들을 처음 봤을 때는 나도 모르게 뒤에 누가 없는지 살폈습니다. 오글거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세련됨과는 거리가 멀고 B급 냄새를 풀풀 풍기는 광고에 놀랐던 겁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이 광고를 보면서 정말 오랜만에 빵 터지며 파안대소하고 있는 내 모습을 들킬까 봐 웃다가 깜짝 놀라고 뒤를 살폈다는 것이 솔직한 고백입니다.
언제부터 우리가 속 시원하게 웃는 데에도 주변의 눈치를 살폈을까요? 솔직한 내 표현보다 주변에서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더 신경을 쓰고 사는 것에 익숙해져 버린 때문일 겁니다. 사실 자동차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고객들은 제품이 아니라 이미지를 산다’는 말은 사실은 실제 제품보다 더 큰 무형의 가치를 제공한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겠지만 사실 고객들은 허상에 돈을 더 지불하고 기업은 더 큰 부가가치를 얻는다는 실상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요즘은 ‘마케터들이 차를 만든다’라는 평가를 듣는 자동차 브랜드들이 참 많습니다. 제품인 자동차와 마케팅 메시지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거나 설령 방향은 맞았더라도 그 격차가 너무나도 큰 경우가 빈번하기 때문입니다. 소형차 세그먼트이면서도 체급을 뛰어넘는 실내 공간을 자랑하고 전혀 소형차처럼 느껴지지 않는 고급스러움과 엄청난 퍼포먼스를 강조하는 문구가 넘쳐납니다. 최근 가장 핫 한 시장인 소형 SUV 시장이 가장 대표적일 것입니다.

하지만 스토닉은 달랐습니다. 처음 출시된 디젤 모델을 시승한 제 소감은 ‘청바지, 티셔츠 차림의 젊은이 같은 솔직 담백함이 좋았다’였습니다. 소형차 같은 감각이 그대로 살아있는 소형차였던 겁니다. 그런데 이게 파격적일 정도로 신선해서 좋았던 겁니다. 분명 거칠거칠하지만 솔직하고 담백한 감성이 좋았습니다. 운전을 배우기에 좋은 차였고 운전 감각이나 디자인이 젊다는 느낌을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진짜 젊은 차였습니다.
그리고 스토닉 가솔린은 광고부터 한 술 더 뜹니다. 이제는 저렴한 것이 전혀 부끄럽거나 감추고 싶은 것이 아니라는 듯 대놓고 말합니다. 차체의 색상도 갖고 싶으면 가지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합니다. 담백함을 넘어 당돌하기까지 합니다. B급 영화의 감성을, 아니 조금 과하게 비유한다면 ‘병맛’의 느낌이 있습니다. 이 ‘병맛’이라는 단어가 형편없을 정도로 맥락이 없고 어이없다는 부정적인 뜻을 갖기도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틀에 구애 받지 않는 자유분방함을 표현하기에는 어쩌면 괜찮은 단어일 수도 있습니다. 더군다나 스토닉처럼 젊은이를 위한 젊은 차라면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스토닉 가솔리니, 투토니의 광고가 주는 ‘병맛 당돌함’이 기분을 유쾌하게 합니다. 이런 것이 틀에 박힌 사회에서 느껴보지 못한 쾌감을 주는 제대로 된 대리 만족이 아닐까요?
하지만 한 가지 중요한 것이 남았습니다. 제품에도 그런 긍정적인 의미의 ‘병맛’이 깃들어 있는가 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빠른 시일 내에 시승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나윤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