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패러다임의 전환은 이제 시작되었다

[이동희의 자동차 잡학(雜學)] 최근 자동차와 관련된 이슈 중에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아무래도 자율주행이다. 사람의 개입이 없더라도 자동차가 목적지까지 스스로 운전해서 가는 장면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미래를 상상하는 장면마다 항상 등장했다. 당장 퇴근 시간의 지루한 교통 정체 속에서도 피곤한 몸을 편하게 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족과의 장거리 여행에서도 도로가 아니라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며 대화할 시간을 더 많이 가질 수 있다는 것도 자율 주행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매력 중의 하나다.

무엇보다 자율 주행 기술의 발전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더 안전한 주행’이다. 교통사고를 줄여 인명과 재산의 손실을 보호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인간보다 기계가 특정한 환경에서는 실수를 할 확률이 매우 낮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우리나라만 해도 발생한 교통사고의 원인을 분석해보면 대부분 ‘인간에 의한 잘못’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교통안전공단의 자료에 따르면 고속도로 교통사고에서 졸음, 과속, 주시태만 등 운전자의 잘못에 의한 원인이 87%에 가까웠다. 타이어 파손이나 차량 결함은 9.8%로 자동차 자체보다는 사람의 실수를 줄이는 것이 사고율을 낮추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된다. 특히 빠르게 달리는 고속도로는 일단 사고가 나면 피해가 크다. 때문에 자율 주행 기술을 활용해 사고를 줄일 수 있다면 사망률을 크게 낮출 수 있어 큰 도움이 된다.



사실 미국 자동차 엔지니어 협회(SAE)가 정의한, 일반적인 완전 자율 주행 상태인 레벨 4 이상이 아니라도 사고율 감소에 대한 연구 결과는 조금씩 나오고 있다. 시내 주행을 포함한 도로 환경에서 운전자 개입이나 모니터링이 필요 없는 자율 주행 상태를 말하는데, 실제로는 SAE 레벨 2에 해당하는, 부분 자율주행 자동차 상태에서도 사고율이 크게 낮아진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미국 고속도로 교통 안전 협회(NHTSA)가 올 해 초 발표한 바에 따르면, 테슬라의 자동차에 달린 오토스티어(AutoSteer) 기능이 활성화된 경우, 차량 추돌 사고율이 40%나 줄어들었다. 테슬라의 자율주행 기술인 오토파일럿의 일부로써 자동 주차와 차선 변경을 지원하는 이 시스템은 핸들 방향을 자동으로 조절한다. 실질적으로는 자율 주행 때문이라기보다 운전자의 스티어링 조작의 실수를 막아 사고가 줄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 첨단 장비를 통해 사고 줄이고 손해율 낮추면 보험료도 내려가야

기술의 발전에 따라 사고가 줄어드는 것은 당연히 반길 일이다. 이렇게 사고율이 떨어지면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부분이 있다. 바로 자동차보험이다. 보험은 어디까지나 철저한 통계를 바탕으로 정해진 확률에 의해 결정되는 사업이다. 비슷한 경우의 수를 가능한 많이 모으고 분류를 통해 미래를 예측해 기준이 되는 보험료를 산정한다. 앞으로 발생할지 모르는 사고의 피해자에게 지급할 보험금과 보험 회사의 운영에 필요한 경비 및 수익을 계산해 보험료에 반영한다.

보험 회사 입장에서는 사고가 일어나지 않으면 받은 보험금이 그대로 수익으로 이어지지만 만약 받은 보험료보다 더 큰 보험금이 나가야 한다면 손해를 보기 때문에 많은 자료를 모으고 철저한 조사를 통해 보험료를 책정한다. 또 회사의 수익만을 생각해 너무 높게 보험료를 정하면 보험 가입자의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기준 보험료는 보험개발원에서 일괄적으로 미리 정한다.

물론 자동차보험은 엄청나게 다양한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 자동차의 종류에 따라 사고의 비율이 달라지는 것은 물론이고 피해 정도의 차이도 생긴다. 예를 들어 무겁고 덩치가 큰 SUV는 차에 탄 사람이 다치는 경우(자기신체 손해)는 적겠지만 상대방 차(대물)나 다른 사람(대인)은 손해를 입을 가능성이 크다. 때문에 이런 부분에서 기준 보험료를 더 높게 책정한다. 여기에 차의 용도, 운전자의 나이 및 성별과 직업 등도 통계적으로 사고율이 다르기 때문에 매우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또 자동차 보험을 ‘종합 보험’이라 부르는 이유는 하나의 보험 증권으로 여러 가지 담보를 묶었기 때문인데, 의무 보험과 함께 대인/대물/자기신체손해/자기차량손해와 무보험차 상해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여기에 자동차에 달린 안전 장비도 보험료를 깎아주는 요인이 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보험료 할인이 적용되었던 것은 자동변속기와 ABS 할인이었다. AT를 단 차가 사고율이 낮은데다 ABS가 교통사고 감소에 효과가 있어 시행했지만 자동변속기가 일반화되고 ABS가 의무화되면서 모두 폐지되었다. 현재는 에어백이 달린 경우에 자기 신체 손해에 대해 운전석은 10%, 조수석 에어백이 있다면 추가로 10%를 더 할인해 주고 보험사에 따라 사이드 에어백이 있다면 추가 할인을 해주기도 한다. 전체 보험료를 할인해주는 건 블랙박스 할인이 있다. 보험사에 따라 3~5%까지 할인이 되는데 이는 증거 자료 확보나 보험사기 예방 등 교통 사고율의 감소보다는 손해율을 낮추는 효과가 더 크기 때문이다.

자율 주행 기술을 활용해 보험 할인에 반영한 사례는 해외에서 찾을 수 있다. 올해 3월, 미국의 스타트업 보험사인 루트(Root)에서는 3월부터 자사의 앱을 통해 고속도로 주행 때 테슬라의 오토스티어가 작동하는 주행거리를 측정한 후 이에 비례해 지정된 만큼 보험료를 할인해주는 방식이다. 오토스티어를 활용해 주행하는 거리가 늘어날수록 당연히 더 많은 할인을 받는 식이다. 물론 루트는 미국에서도 9개 주에서 밖에 적용되고 있지 않아 영향력이 크지 않지만 최초라는데 의미가 컸다. 물론 비슷한 기능이 있는 다른 브랜드의 차에도 확대하겠다는 계획은 발표한 바가 있다.



여기에 동참한 것은 영국 최대의 자동차보험 회사인 다이렉트 라인(Direct Line)이다. 역시 테슬라의 오토스티어 기능에 대해 5%의 할인을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 세계에서 두 번째이긴 하지만 자율 주행 기술을 안전하다고 인정하고 할인에 적용한 전통적인 오프라인 보험사이기 때문에 실제 보험업계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결국 어떤 종류의 자동차 신기술이라도 실제로 사고율을 줄이거나 손해율을 낮출 수 있다면, 이를 장착한 차에 대해서는 해당한 보험료를 깎아 주는 것이 맞다. 여기에는 전자식 주행 안정화 장치(ESC)나 차선 이탈 경보(LDWS), 후측방 경보(BSD), 자동 긴급 제동 보조(AEB) 등이 대상이다.

국내에서는 자율 주행 관련 기술이 보험 사고에 미치는 영향은 아직까지 국내에서는 관련 자료를 수집 중으로 가시적인 할인 요율 등은 발표된 바가 없다. 자율 주행 기술은 단순히 상상 속의 산물이 아니다. 말 그대로 자동차와 관련된 생태계에 영향을 미치고 바꾸고 있다. 하루 빨리 관련 법규가 정비되어 소비자가 혜택을 누릴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이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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