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로드에서 백조처럼 우아한, BMW 신형 X3

[김종훈의 자동차 페티시] 자동차나 사람이나 바라보는 관점이 비슷하다. 외모와 성격. 우선 외모를 보고 성격을 차츰 알아간다. 외모가 마음에 들어도 성격이 안 맞으면 호감도가 사라진다. 물론 반대일 때도 있다. 외모든 디자인이든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항목이 늘어난다. 성격이라면 뭐가 있을까. 조향 감각이라든가, 엔진 질감이라든가. 노면 정보를 전달하는 서스펜션 성향도 있다. 여러 색이 뒤섞여 독특한 색감을 만들어내듯 여러 항목이 쌓여 고유한 성격을 형성한다.

그 중에서 서스펜션은 성격에 꽤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승차감을 말할 때 서스펜션을 우선 말하는 까닭이다. 물론 승차감에 영향 미치는 건 서스펜션 하나만은 아니다. 차체 강도나 무게도 지분이 있다. 조향 감각이나 엔진 질감도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친다. 그럼에도 서스펜션을 첫손에 꼽는다. 노면과 운전자 사이에서 움직이는 장치이기 때문이리라. 또 설정 값에 따라 천변만화하는 존재라서 더. ‘하체’라고 부르는 것만 봐도 그 역할은 크다. 어쩔 땐 하체만으로 차의 호불호가 갈리는 경우도 있다. 그럴 수 있다. 딱 하체만으로.



최근 경험한 차량의 서스펜션이 유독 인상적이었다. 타고 나서 다른 특징을 기억하지 못할 정도였으니까. 그만큼 독특했고, 신선했다. BMW 신형 X3 얘기다. 정확하게 말하면 신형 X3 30d 모델 얘기다. 2.0 디젤 모델인 20d에는 ‘다이내믹 댐퍼 컨트롤’이 없다. 30d를 타고 20d를 타면 막이 하나 사라진 듯하다. 20d가 경쾌한 느낌은 있지만, 30d만큼 대처 능력이 출중하진 않았다. 신형 X3 30d는 마법의 막이라도 펼친 듯했다.

예전에는 하체를 물렁하거나 단단하다고 말해왔다. 두루뭉술하지만 딱히 달리 표현할 말도 없었다. 대신 분명히 나뉘었다. 연하거나 강하거나. 둘 사이에 단계가 몇 개 있을 뿐이었다. 몇 년 사이 조금 달라졌다. 연하면서 탄탄하고, 단단하면서도 나긋나긋한 감각이 늘어났다. 대부분 브랜드가 두 성향을 모두 품으려고 노력했다. 둘 다 잘하려는 건 욕심이 아닌, 기술이었다.



신형 X3는 욕심을 기술로 충족시켰다. BMW는 몇 년 동안 승차감을 조율했다. 과거에는 달리는 데 필요한 세팅에 집중했다. 그러다가 안락함을 받아들였다. 대중의 기호를 조준한 거다. 부드럽고 여유로웠다. 볼멘소리가 늘어날 때쯤 다시 조였다. 다시 과거로 돌아간 건 아니었다. 조이고 푼 경험을 살려 적절한 비율을 찾아냈다. 여유를 유지하면서 탄탄한 긴장까지 끼워 넣었다. 다층적이었다. 여러 성향을 겹겹이 쌓아 그 사이를 영리하게 오갔다.

신형 X3를 타고 온로드를 달릴 때 더없이 편안했다. 그러면서 명료한 감각도 전달했다. 속도를 높여도 넓은 품으로 차체를 안정시켰다. 어지간한 진동은 툭툭, 방어했다. 그렇지만 놀라진 않았다. 이 정도는 해야지, 하면서 운전했다. 신형 5시리즈에서도 이런 성숙한 하체는 익히 경험했으니까. 성향만 파악하고, 다소 무덤덤하게 운전했다. 더 특별한 환경을 경험하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오프로드에 진입하자 새로운 감각이 살아났다.



오프로드에서도 신형 X3는 편안했다. 물론 온로드와 같은 편안함과 성격은 달랐다. 분명히 험로 굴곡에 따라 차체는 요동쳤다. 하지만 그 혼란 속에서도 하체는 끊임없이 충격을 걸러냈다. 보호막을 펼친 우주 전투기를 타면 이럴까. 영화에서 보면 보호막을 펴고 적진을 돌파하는 우주선이 나온다. 사방에서 레이저와 운석에 부딪치지만 충격을 걸러내는 보호막. 오프로드에서 신형 X3의 하체에는 특별한 막이 하나 더 있는 듯했다.

보통 오프로드에선 승차감 운운하지 않는다. 험로를 잘 가느냐 못 가느냐로 판단할 뿐이다. 날선 충격마저 재미로 받아들인다. 운전석이 불편할수록 화끈하게 달린다고 여긴다. 하지만 이젠 다른 기준이 생길지도 모른다. 신형 X3로 오프로드를 경험하자 깨달았다. 수많은 충격을 상쇄하는 느낌이 신선했다. 오프로드를 ‘부드럽게’ 잘 달렸다. 단어 뜻 그대로 부드럽게.



신형 X3는 일단 도심형 SUV다. 출고되고 험로 한 번 안 가고 폐차될지도 모른다(성능이 아닌 구매자 성향 때문에 그럴 가능성이 있다). 그러기에는 너무 원통할 정도로 신형 X3는 오프로드에서 놀라운 승차감을 구현했다. 덜컹거릴 수밖에 없는 언덕을 미끄러지듯 헤쳐 나갔다. 백조가 우아해 보이지만 물밑에서 갈퀴를 숱하게 찬다고 했나. 신형 X3 서스펜션은 운전자가 우아해 보이도록 숱하게 움직였다. 그 영민한 움직임에 감탄했다. 딱 하체만으로 호감도가 상승했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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