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숙성을 우선하고 큰 세단을 좋아하는 시장 취향에는 준대형 세단이 제격이다. 연비까지 따진다면 준대형 하이브리드 세단만한 차가 없다

명승부는 한쪽의 일방적인 우위에서 나오지 않는다. 양 진영의 실력이 엇비슷해서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막판까지 승부를 예측할 수 없게 만드는 경기가 재미있다. 축구라면 0대 10으로 끝나기보다는 연장 전후반에 승부차기까지 가야 볼 만하다. 야구는 9회 말 2아웃부터라는 말이 있듯이, 치고받는 막판 대역전극이 펼쳐져야 제대로 된 승부를 봤다는 생각이 든다.
자동차 역사를 되돌아보면 주거니 받거니 하는 스포츠의 명승부와 비슷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규제하려는 쪽과 극복하는 쪽의 팽팽한 대결이다. 규제하는 주체는 주로 정부 기관이나 특정 조직일 테고, 극복하는 쪽은 자동차 회사다. 대체로 공적인 명분을 위해 규제를 가하면, 자동차 회사는 기술로 이를 극복한다.
규제와 극복이 가장 드라마틱하게 주거니 받거니 하는 곳은 F1이다. 주최 측인 FIA는 안전을 위해, 흥미 요소를 더하기 위해, 기타 여러 이유를 들어 규제를 강화한다. 각 팀은 규제를 벗어나지 않으면서 성능을 극대화하기 위해 온갖 기술을 동원하고 결국에는 규제를 무력화시킨다. 그러면 또 다른 규제가 생기고. 이 과정을 반복하면서 모터스포츠 기술은 발달을 거듭하고 경기는 재미를 더한다. 물론 규제와 극복의 팽팽한 긴장이 깨져 어느 한쪽으로 쏠리면 재미없어지지만 말이다.

친환경도 대표적인 규제 중 하나다. 오염물질 배출은 줄이고 연소 효율성은 높여야 하는 어려운 과제다. 날이 갈수록 강화되는 규제에 맞추기 위해 자동차 회사들은 골머리를 앓는다. 환경보호라는 거부할 수 없는 명분이 있으니 규제를 거스를 수도 없는 노릇이다. 환경기준이 단계가 높아지면 자동차 회사들은 그것에 맞게 대응책을 마련했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도 어떻게든 가능으로 만들었다. 엔진 배기량을 줄이고 과급기를 쓰는 다운사이징도 극복의 한 단면이다. 기름을 쓰지 않고 전기로만 달리는 전기차도 궁극적으로는 규제를 벗어나기 위한 해법 중 하나다.
친환경 분야에서 규제와 극복의 대결 구도는 스케일도 크다. 규제하는 쪽은 엄청난 과징금을 매기거나, 실현 불가능해 보이는 기준을 내놓는다. 극복해야 하는 자동차 회사들이 편법을 쓰다 걸려서 전세계가 발칵 뒤집히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아예 현존하는 동력원을 뛰어넘는 새로운 방식을 개발하기도 한다. 새로운 방식 중 하나가 바로 하이브리드다. 기름을 태우는 내연기관으로는 오염물질 배출과 연비향상에 한계가 따르니까, 전기모터를 더하는 방식으로 단점을 극복한다. 뭔가 복잡해 보이지만 원리는 간단하다. 상황에 따라 전기모터가 자체적으로 움직이거나 엔진을 보조해 엔진이 가동되는 시간을 최소화한다. 엔진이 덜 움직이니 기름을 적게 먹고 오염물질도 적게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1990년대 후반 선보인 하이브리드차는 당시만 해도 ‘미래’, ‘첨단’, ‘혁신’ 등 시대를 앞서가는 기술로 인식됐다. 지금은 보편화해서 판매 차종도 많아졌고, 사람들도 일반 내연기관 자동차와 크게 다르지 않게 여긴다. 국내에서도 하이브리드 자동차 판매가 계속해서 늘고 있다. 2016년 국산 하이브리드차 판매량은 5만 대가 넘었다. 수입 하이브리드차도 1만6,000대가 넘게 팔려 전체 시장규모는 7만 대에 육박한다. 디젤 사태 이후 디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늘고, 디젤의 대안으로 하이브리드차가 떠오르면서 하이브리드차는 인기를 더하고 있다. 하이브리드차 시장이 커지면서 장점이 널리 알려지고 판매가 늘어나는 선순환이 계속된다. 2017년 11월까지 하이브리드 판매량은 7만7,000대에 달해 지난해 판매량을 훌쩍 뛰어넘었다.
하이브리드의 특성을 가장 잘 살린 차는 소형 하이브리드다. 연비가 하이브리드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볼 때 차체가 작고 가벼운 소형차가 하이브리드의 이점을 가장 잘 살린다. 올해 11월까지 국내 시장에서 가장 많이 팔린 하이브리드차는 기아자동차 소형 SUV인 니로다. 2만 대가 넘게 팔려 독보적인 1위를 달리고 있다.
국내 시장 상황을 고려한다면 하이브리드의 장점을 가장 잘 녹인 차급은 준대형 세단이다. 국내 소비자들은 큰 차를 선호한다. SUV 인기가 높아졌지만 여전히 주류는 세단이다. 정숙성은 기본이고 연비 높은 차를 원한다. 이런 시장 취향에 딱 들어맞는 차가 준대형 하이브리드다. 과거에 하이브리드차가 없던 시절에는 덩치 큰 가솔린 자동차의 그저 그런 연비가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었다. 연비 높은 디젤로 가자니 정숙성이 발목을 잡는다. 하이브리드는 이런 고민을 말끔하게 해소한다.

국내에 판매되는 준대형 하이브리드차는 4종류다. 기아자동차 K7 하이브리드, 현대자동차 그랜저 하이브리드, 렉서스 ES 300h, 링컨 MKZ 하이브리드다. 체급은 같지만 4차 4색이라고 할 정도로 개성은 판이하다.
객관적인 제원에도 차이가 난다. 배기량은 ES300h 2.5L, K7과 그랜저는 2.4L, MKZ는 2.0L 순이다. 엔진출력은 K7과 그랜저가 159마력, ES 300h 158마력, MKZ 141마력으로 K7과 그랜저가 근소하게 앞선다. 엔진 최대토크는 ES 300h 21.6kgm, K7과 그랜저가 21.0kgm, MKZ 17.8kgm 순이다. 하이브리드는 전기모터가 힘을 더해 전체 힘을 키운다. 전기모터 힘을 합친 전체 출력은 ES 300h가 203마력, MKZ는 188마력(미국 기준)이다. K7과 그랜저는 따로 발표된 수치가 없다.
각 회사의 하이브리드 시스템 구성과 지향점에 따라 엔진 배기량과 전기모터의 힘, 배터리 용량 등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ES 300h와 MKZ는 전기모터가 2개를 쓰는 직병렬식이고, K7과 그랜저는 전기모터가 하나인 병렬식이다. 중요한 점은 구성 요소들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느냐다. 어떤 방식이 더 우수하다고 딱 단정 지어 말하기 힘들다는 뜻이다. 객관적인 수치인 공인연비만 놓고 보면 K7이 복합 기준 16.2km/L로 가장 높다. 도심과 고속도로는 각각 16.1과 16.2km/L로 큰 차이는 없다(파워트레인이 같은 그랜저는 K7과 연비가 같다). ES 300h는 복합/도심/고속도로 연비가 각각 14.9/15.5/14.3km/L이고 MKZ는 15.8/16.2/15.3km/L다. 주행환경이나 운전자의 운전 습관 등도 변수로 작용하기 때문에 공인연비가 절대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하이브리드차의 연비가 일반 차보다 높다는 점은 차종 불문 확실하다.

준대형 세단은 패밀리 세단으로 주로 사용한다. 하이브리드의 높은 연비와 친환경성 못지않게 패밀리카의 기본기도 중요한 선택 요소로 작용한다. 길이는 네 차 모두 5m에 육박한다. K7 4970mm, 그랜저 4930mm, MKZ 4925mm, ES 300h 4900mm 순이다. 실내 공간의 여유를 가늠하는 기준인 휠베이스는 K7이 2855mm로 가장 길다. MKZ 2850mm, 그랜저 2845mm, 렉서스 2820mm로 순으로 이어진다.
국산차와 수입차는 절대 가격으로 비교하기는 무리가 있다. 국내에서는 대체로 국산차의 가격 대비 성능이 높다. 특히 안전편의장비 등에서 강세를 보인다. 렉서스 ES의 가격은 5270만 원에서 시작하고, MKZ는 5900만 원이다. 기아 K7은 3590만 원에서 시작하고 풀옵션 모델의 가격도 4000만 원대 중반이다. 그랜저 또한 K7과 비슷한 가격대를 형성한다. 편의 장비와 각종 첨단기능 등 면면을 살펴보면 가격 대비 성능은 국산차가 월등히 앞선다. 그랜저나 K7은 국산차 중에는 고급차에 속하기 때문에 상품성 또한 높은 편이다.

가장 최근에 신형 모델을 내놓은 차량은 K7으로, 이번달 초에 2018년 형을 선보이며 고속도로 주행 보조(HDA), 차로 이탈방지 보조(LKA), 운전자 주의 경고 기능(DAW) 등을 추가했고, 휠 디자인을 변경하는 등 상품성을 더욱 높였다.
준대형 하이브리드는 한때 수입차의 전유물로 여겨졌었다. K7 등 국산 준대형 하이브리드가 등장하고 성능과 상품성을 인정받으면서 수입 준대형 하이브리드와 대등한 경쟁을 펼친다. 수입 준대형 하이브리드 세단의 대표 격인 ES 300h는 올해 들어 11월까지 6936대가 팔렸다. 그랜저는 1만6190대, K7은 5725대가 판매됐다. 이제는 국산 준대형 하이브리드차가 더 많이 팔릴 정도로 시장의 형국이 바뀌었다.

친환경과 효율성을 요구하는 시장 분위기는 더 강해질 전망이다. 하이브리드차에 대한 관심은 커질 수밖에 없고, 국내 시장 특성을 고려하면 이는 준대형 하이브리드의 인기로 이어진다. 이 급에 여러 종류의 선택지가 있다는 점은 참 다행이다. 그중에서도 상품성과 가격 대비 성능을 따진다면 K7 같은 국산 준대형 하이브리드도 꽤 괜찮은 선택이다. 한쪽만 잘하면 경기가 재미없듯이, 자동차 시장도 경쟁이 이뤄져야 발전도 하고 소비자에게 혜택도 돌아간다. 수입차가 강세이던 준대형 하이브리드차 시장에서 국산차가 치고 올라왔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예측하기 쉽지 않을 정도로 경쟁은 치열하다. 누구 편을 떠나서 주거니 받거니 경쟁해야 더 재미있는 법이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임유신(evo 한국판 편집장)

